유학 스토리 (12)

by 김재광

미국 중서부 캠퍼스 타운과 미동부 워싱톤 DC 근교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내가 살던 아이오와 에임스는 한국 식당 하나 없는 곳이었고, 당시에는 동양 식품점 하나 달랑 있어서 그곳에서 식재료랑 한국 드라마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보는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면, 워싱톤 디씨 근교는 정치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도 제법 발달해서, 한국음식 식당도 많았고, 미장원, 당구장, 한국책 서점, 빵집, 순대 전문점 등등이 있었고 심지어 바다 근처라 회도 싱싱했다. 게다가 그 동네에는 블루 크랩이 많이 잡혔는데 100불어치를 사면 한 양동이 가득 사올수 있어서 그걸로 여러 가족이 모여서 크랩 파티에 맥주 마시면서 즐겁게 놀수 있었다. 바다 낚시도 놀러갈수 있었고 또 원하면 등산이나 트레킹을 할 곳도 근처에 제법 있었다. 그런 생활을 경험하면서 중서부 대학에서 박사 받은후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과 그 와이프에 대한 깊은 연민이 생겼다 ㅋ

회사에서는 여러 젊은 친구들과 오피스를 같이 썼는데 그중 한 친구는 칼리지를 졸업하고 (미국은 칼리지라고 공부 못하는게 아님, 명문 칼리지는 의대나 명문 대학원을 진학하는데 훨씬 좋은 커리큘럼을 제공하기에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감) 대학원을 가기 전에 1-2년 경험삼아 일을 하게된 유대인 친구였다. 나는 그전에는 유대인에 대해 잘 몰랐는데 동부에 와보니 유대인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미국의 학계, 재계 등의 최상부에 많이 포진해 있는데 인구는 세계 인구의 3% 미만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20%를 넘는다고 하니 유대인들이 갖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 역시 대단히 재미있고 똑똑했는데 간단히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일단 그 친구는 말하는걸 아주 좋아했다. 호기심이 넘쳐서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그걸 왜 해야 하는지, 그게 어떤 역사적 맥락을 갖는지 등등 계속 질문을 했다. 하도 귀찮게 질문을 해서 내가 언성이 약간 올라갈 뻔한 적도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가 내게 아침에 태어났는지 밤에 태어났는지 물어봤다. 나는 아침 10시에 태어났다고 대답했더니 다시 내게 공부를 낮에 하는 편인지 밤에 하는 편인지 (아침형 인간인지, 올빼미형 야간에 일을 하는지) 물었다. 그 친구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설이 하나 있는데 그건 아침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체로 아침형 인간이고, 밤에 태어난 사람은 대체로 야간형 인간일 것이다 라는 가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가설이 맞는지 궁금해서 여기 저기 물어보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걸 왜 궁금해 할까? 싶기도 했는데 그런게 유대인 문화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기를 즐겨하는 문화가 있고 그런 문화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흥미로운 가설을 만드는게 장려되는데 보다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를 데이터로 찾아서 확인해야 할테니 이미 과학적 사고가 몸에 배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친구의 부친은 무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모친은 American Institute for Research (AIR) 이라는 회사의 부사장이었다. 그 회사는 교육 정책 관련하여 많은 정책연구와 자문을 하는 회사였는데 따라서 교육 통계도 많이 다루었다. 그 친구가 나에 대해 좋게 이야기를 했는지 AIR 회사에서 나를 초청해서 job 인터뷰를 했는데 그 친구 엄마 오피스에 갔더니 탁자에 빌 클린턴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이었다). 그만큼 인맥이 대단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회사에서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어떤 통계 담당 간부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이런게 있다면서 설명해 주었는데 보니까 내가 전에 고민했던 문제라서 그 자리에서 그에 대한 보다 쉬운 해결책을 알려 주었더니 깜짝 놀라면서 나를 뽑고 싶어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에는 그쪽 책임자가 그 자리에서 내게 잡 오퍼를 하면서 수락을 종용(?)했었다. 결국 그 오퍼를 수락하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그 친구는 나중에 코넬대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했었고 나는 한국에 돌아가는 바람에 소식이 끊겼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 친구는 프린스톤 대학의 사회학과 정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이름은 Matthew Salganik 인데 사회학자들은 대부분 알 정도로 유명해 졌으니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알고보니 그 친구가 2006년에 재미있는 실험을 해서 Experimental study of inequality and unpredictability in an artificial cultural market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출간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 논문은 일반 교양서적에도 많이 인용되는 내용이다. (대중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인기가 소셜 네트워크의 특성 때문에 초반의 평판에 따라 많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가상 세계를 여러개 만들어서 실험을 통해 밝힌 내용임.) 평소에 호기심이 워낙 많고 수다떨기를 좋아하다보니 흥미로운 가설이 생겼고 그걸 확인하려고 실험을 하고 놀랄만한 결과를 얻어내서 일약 스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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