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졸업
센서스국에서의 생활은 즐거웠지만 일년 계약이 거의 끝나감에 따라 나는 다음 직장을 구해야 했다.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서 또 이사가기도 싫었고 그 지역이 워낙 살기 좋았기에 그 지역에 있는 회사를 찾았는데 Westat 이라는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다. Westat 은 그 당시 40년 전에 통계학자 3명이 창립한 샘플링 전문 통계 컨설팅 회사였는데 풀타임 직원이 1500명이나 될 정도로 컸다. 미국의 지식산업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수 있는데 미국에서 Westat, NORC, RTI 이렇게 3개가 가장 크고 그 외에도 수많은 회사들이 있다. NORC 는 시카고 대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RTI 는 노스캐롤리나 대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지식산업이 정부기관이 발주하는 서베이 용역을 하고 이와 관련한 수많은 연구를 수행해 주면서 발달한 것인데 워싱톤 DC 는 당연 그런 지식산업 관련 회사들이 자랄수 밖에 없는 곳이다.
Westat 은 처음에는 규모가 작았는데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미국 국방비 예산이 줄어들고, 대신 보건과 교육 쪽으로 예산이 엄청 늘어나면서 NHAINES 나 NAEP 같은 대규모 조사가 생겼고 이와 관련된 통계적 파트를 대신 수행해주면서 규모가 커졌다. 샘플링이라는 것이 정부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된것은 불과 1950-60년대부터인데 그 당시로는 대단한 혁신이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모리스 한센이라는 분인데 이분은 당시 센서스국에서 일하면서 주요 조사에 확률표본 이론에 기반한 샘플링 기법을 도입하여 서베이 조사의 과학화를 통해 미국행정부가 증거기반 정책을 실현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모리스 한센이 주도한 센서스국의 혁신이 다른 정부 기관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확률표본이 공식통계를 위한 자료수집의 기본 규범으로 확립되었으니 샘플링의 아버지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분이다. 그 분이 은퇴를 하자마자 Westat 이 부회장으로 스카웃을 해갔다. 그러니 Westat 에 여러 정부기관으로부터 온갖 샘플링 관련 의뢰가 들어온 것은 말할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샘플링 전공자인 내가 Westat 을 직장으로 선택한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연봉은 6만불 중반 정도였던것 같았는데 싸인업 보너스라는 것도 받았다. 연봉이 높지 않아서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많이 배울거라고 기대하며 오퍼를 승낙했다. 일단 아직 졸업을 못했으니 2000년 8월 초에 졸업을 하고나서 8월 중순부터 일하기로 했다. 센서스 국에서는 내가 떠나는게 아쉬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보내주고 대신 별도의 계약을 Westat 과 맺어서 내가 센서스 국의 컨설턴트의 형태로 일을 할수 있도록 했다. 취업을 하면서 외부 용역을 따온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거기 취업후에는 일주일에 3일은 Westat 에서 일하고 2일은 센서스국에서 일했다.
그렇게 취업이 확정되고서 나는 다시 아이오와 에임스로 돌아가서 졸업 논문 마무리 작업을 했다. 졸업논문은 3개의 paper 를 묶어서 만들었는데 첫번째 페이퍼는 꿈에서 문제를 푼 페이퍼이고, 두번째 페이퍼는 원래 풀러선생님과 작업했던 페이퍼이고, 세번째 페이퍼는 센서스국에서 실무를 하면서 얻어낸 주제로 만든 페이퍼였다. 첫번째 페이퍼는 Survey Methodology 라는 저널에 그 다음해에 출간되었고, 두번째 페이퍼는 JASA 에 보냈다가 리젝을 먹고 Biometrika 라는 저널에 실었고, 세번째 페이퍼는 4번의 revision 을 거쳐서 몇년 뒤에 JASA 에 실었다. 에임스에서 졸업논문 마무리 작업을 한달반 정도 걸쳐서 했는데 마라톤의 마지막 라운드를 돌때 젖먹던 힘까지 다해 완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졸업식은 제법 그럴듯했다. 각 교수님들이 자신들의 모교 가운을 입고 등장하고 박사 후보 한명씩 불러서 총장이 졸업장을 주면, 지도교수가 후드를 입혀주고, 지도교수님과 악수를 하는 것이다. 졸업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같이 축하를 해주는데 나는 한국에서 부모님까지 오셔서 축하를 해 주셨다. 내 이름이 호명되어서 단상 위로 나가니 총장님과 지도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총장님께 졸업장을 받고, 지도교수님과 악수를 하는데 나를 보시며 웃으시면서 "You made it!" (해 냈구나) 하고 말씀하시면서 내 손을 굳게 잡으셨다. 지난 6년간의 모든 고생이 보상되는듯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