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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May 20. 2020

천재 살리기

저는 요즘 방학을 맞이하여 연구 삼매경에 빠졌는데요 어제는 기분이 제법 좋았었습니다. 차원이 높은 자료에서의 모형 선택과 관련한 통계적 추론에 대한 내용을 무응답 자료에서의 대체법 개발에 적용하는 연구를 하는데 최근에 큰 진전이 있었고 어제는 특히 그 내용을 연구 세미나에서 발표하면서 이제 새로운 분야에 내가 진출하는구나 하는 뿌듯함과 기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프린스톤 대학의 Fan 교수가 2001년에 쓴 논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는데 그걸 자세히 공부하면서 키가 훌쩍 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혼자서 끙끙거렸더라면 평생 해결하지 못했을 텐데 Fan이라는 천재의 도움으로 한결 수월하게 이 문제를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고마움이 너무 커서 그 교수에게 이메일이라도 보내어서 그 논문을 써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6년인가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 저는 연세대에 있었는데 석사과정 학생을 몇 명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석사논문을 써야 졸업을 할 수 있기에 각 석사과정 대학원생들에게 논문을 주고 읽어보고 시뮬레이션해보고 대충 정리해서 석사 논문을  쓰게 하는 일이 주된 일중의 하나였습니다. 석사과정이라는 게 사실 애매해서 대충 연구가 어떤 거구나 하고 맛보기 정도 하는 식으로 논문을 쓰는데요, 저는 어떤 학생이 제법 똘똘한 듯하여 제가 당시에 흥미 있게 연구하고 싶었던 분야의 논문을 주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논문 지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디어도 좋았고 시뮬레이션 결과도 괜찮아서 이걸 좀 다듬어서 저널에 투고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 친구가 초안을 만들어서 가져오게 한 후에, 다시 제가 좀 더 그럴듯하게 다듬어서 논문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수정한 논문을 읽어보더니 그 친구는 저에게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교수님, 정말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 웃겼던 것이 본인이 연구를 조금 경험해 보니 이렇게 논문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난이도를 이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럴듯한 논문을 만들어내는걸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학생 시절 지도교수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으니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해나 무지에 기반한 존경보다는 충분한 이해에서 얻어지는 존경이  값진 것입니다.


사실 보통사람은 천재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재는 뛰어나지만 그들은 언제나 소수이기에 사회적으로는 약자에 가깝습니다. 또한 천재의 생각을 일반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라는 것은 사실 자신의 수준에서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수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여서 소수의 천재들을 조롱하고 그 싹을 짓밟고자 할 위험이 있습니다. 서양 역사에서 니체나 고호 같은 천재들이 당대에 그런 대접을 받았었고, 중국의 역사를 보아도 뛰어난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하기보다는 숨어서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일신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한 시기가 적지 않았습니다. 봉건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일수록 천재는 숨기 마련인 것입니다. 천재를 살리는 사회가 아니라 천재를 죽이는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Fan 교수는 중국 후단대 수학과 출신인데 마침 중국이 등소평의 개방으로 인해 그가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갈 수 있었고 그리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자리를 잡아 그의 천재성이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미국으로 나오지 않고, 중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그는 지금처럼 뛰어난 업적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고, 그 혜택을 저 같은 사람도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천재의 고마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그 사회에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를 알면 그 천재성이 자라날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재성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풍부한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일찍이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설파했듯이 천재는 자유를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비난하는 사회에서는 천재는 침묵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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