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기적
때는 2001년 초반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논문을 쓰고 있었다. 나는 미국에 남는거에 별 관심은 없었고 몇년 경험을 쌓고 한국에 돌아가 살고 싶었기에 연구 실적을 채워서 한국 대학에 지원할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내가 샘플링에 올인하기로 결심한 주된 이유가 샘플링을 하는 사람이 한국에 거의 없으니 내가 이 공부를 해서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것이었기에, 내가 한국행을 염두에 있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었다.
그런데 또 그 당시에 코스타(KOSTA)라는 행사가 매년 열렸는데 그건 북미주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유명한 목사님이나 기독교 사역자들을 초청하여 일주일간 집회를 하는 것인데 미국 전지역에서 많은 유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참석을 하는 행사이다. 그 코스타 운동을 처음 시작하신 멤버중 한분이 지구촌 교회의 이동원 목사님이었고, 따라서 지구촌 교회는 코스타 행사 준비와 관련된 일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2001년 초반에 코스타 준비 사역팀이 출발했고 나도 엉겹결에 그 팀에 합류했다. 이는 마치 대학교에 막 입학한 학생이 아무것도 모르고 선배따라서 골수 운동권 모임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도와주게 된것과 비슷할 것이다.
약 20명 가까운 준비모임 멤버들이 각자 헌신적으로 일을 했는데 내게 부여된 사역은 등록이었다. 그 당시에는 온라인 등록이 아니라 우편으로 신청서를 보냈는데 그 신청서에 기재된 사항들(이름, 나이, 성별, 주소, 전공 뿐만 아니라 가족 사항이 있었다)을 데이터 베이스에 입력해서 최종적으로 조편성을 할때 이를 바탕으로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등록 작업을 내가 혼자 하게 된 것인데 문제는 분량이 엄청났다는 것이다. 대략 1천통의 우편물이 도착했는데 그걸 교회 컴퓨터에 입력하는데 하나당 대충 10분 정도가 걸렸다. 1만분이 걸리는 작업인 것인데 50분 입력하고 10분 쉬는걸로 계산하면 200시간이 걸리는 분량이다. 200시간이면 하루에 4시간을 일한다고 하면 50일 걸리는 작업이다. 나는 풀타임 사역자도 아니고 직장인이니 회사 끝나고 나머지 시간을 따로 내어서 일을 해야했다. 실제로 이 일에 거의 꼬박 3-4달을 매달렸다.
당연 나는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죽어라고 연구를 해도 될까말까한 상황에서 연구와 전혀 상관없는 일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도 되는건가? 물론 이런 상황을 다른 간사님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였지만 그들 역시 너무 바빴기에 도와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로 나자빠지면 전국 단위의 컨퍼런스 준비에 큰 차질을 줄것이 너무 뻔했기에 그렇게 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애타는 상황에서 기도를 하던 중에 나는 어느 순간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 이제 포기하겠습니다. 제가 연구를 포기하면 다 해결되는것 같으니 기꺼이 포기할테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던가 알아서 하세요. 나는 이제 연구 깨끗이 포기합니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내게는 정말 큰 결심이었다. 내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안가도 되는 군대까지 다녀오고, 아이오와에서 그 죽을 고생을 했었는데, 이제 추수하는 시점에서 그 추수를 포기하겠다는게 정말로 아까왔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아들을 제단에 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의 내가 연구를 포기한다는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처럼 가장 하기 힘든 결단이었다.
그리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을 예전에 듣고 웃었었는데 그게 진짜였다. 나는 깨끗이 포기하고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먹고 교회에 잠깐 가서 2-3시간 작업을 하고 또 주말에 가서 하루종일 작업을 해서 무사히 모든 서류를 기간 안에 다 입력할수 있었다. 워낙 성령충만한 시절이라 모든걸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집사람은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첫째 아이를 돌보느라 바빴고, 또 나랑 가끔 같이 산책을 하면서 편안한 생활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코스타는 무사히 치루어졌고, 또 둘째 역시 무사히 태어났다.
그런데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났다. 그렇게 공부할 시간도 없이 코스타 일에 전념하다시피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해에 연구 실적이 제법 좋았다. 이상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했는데 몇가지를 소개한다. 하나는 갑자기 지도 교수님이 연락을 주셔서 우리 하던 연구 주제와 비슷한데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연구 아이디어를 페이퍼로 정리하시고 시뮬레이션 해달라고 하셨다. 교수님이 대부분을 쓰고 나는 시뮬레이션만 해서 논문이 완성되었다. 이전 논문은 내게 엄청나게 많은 것을 요구하셨는데 갑자기 이번 논문은 내가 별로 기여한 것도 없이 한편을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 황당하다. 회사의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Randy Sitter 라는 젊은 교수를 만났다. 그 사람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Simon Fraser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인데 샘플링을 전공하셔서 Westat 에서 여름 방학동안 컨설턴트로 일을 하시는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교수가 나와 연구하는 분야가 비슷해서 대화가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0분 정도 대화를 하면서 연구 아이디어가 2개나 나왔다. 그 교수는 너무 좋아하면서 자기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초청할테니 밴쿠버에 방문해서 일주일 정도 머무르면서 자기와 논문 작성 작업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회사에 휴가를 내고 11월인가에 가서 5박 6일간 머물면서 그 분과 논문 작업을 했는데 너무 호흡이 잘 맞아서 5일만에 논문을 완성했다. 나는 수학을 풀고, 그 사람은 영어로 쓰는 완벽한 분업이었다. 5일 논문 완성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단시간 완성 기록이다.
게다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 (imputation 보고서)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여러 imputation 방법론을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당시에 샘플링 분야에서는 하버드 대학의 루빈 교수가 제안한 multiple imputation 에 대하여 뭔가 수상한 점이 있는데 그게 왜 그런건지 명확히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걸 제대로 알아냈는데 그 과정에서 두 편의 괜찮은 논문을 쓰게 되었다. 하나는 이론 논문으로 나중에 Annals of Statistics 에 단독저자로 실리게 되었고, 다른 하나는 팀원들과 공저로 해서 JRSS-B 에 실리게 되었다. 둘다 톱 저널이다. 통계학의 4대 톱저널이 위의 두 저널이랑, JASA 그리고 Biometrika 인데 나는 몇년에 걸처 이 4대 저널에 모두 논문을 싣게 되었는데 그게 당시로는 굉장히 놀라운 기록이었다. 4대 저널 그랜드 슬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통계학 하는 사람들은 다 동의하는 것일텐데 나는 그걸 연구자 시절 초반기에 이루었으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