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가다
2001년 가을에는 911 사태가 일어났다. 아침에 TV 뉴스에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인가 싶어서 믿기지 않았다. 회사를 갔더니 모두 침통한 표정이었고, 팬타곤 건물에도 피해가 있었으니 이 동네 분위기가 더욱 안좋았다. 그 당시 외국인에 대한 혐오도 느낄수 있었고,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동네 어느 쇼핑 몰인가에서는 총격도 있었다. 공포스러운 시기였다.
회사에서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뭔가 배울만한게 있었으면 계속 있을텐데 한 6개월 지나고 나서는 그다지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을 갖지 못했다. 내 보스도 유대인인데 내가 일보다는 연구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것을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다. 너무 완벽주의로 하지 말고 적당한 수준에서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별로 달갑지 않은 이야기였다. 회사는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니 연구를 하는건 회사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번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더욱 그 회사에 있기가 싫었고, 오라는 곳이 있으면 빨리 떠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은 교수 채용에서 논문 기본 점수가 있는데 나는 톱저널을 위주로 투고해서 막상 당장의 논문 점수는 약했었다. 실제로 내가 JASA 에 투고한 논문은 2001년에 처음 투고했지만 최종 출간된 것은 2006년이었다. 첫 리뷰 받는데 거의 8개월 걸렸고, 첫 revise 는 6개월 걸려서 했고, 그걸 다시 심사 받는데 6개월, 다시 revise 하는데 3개월, 다시 심사 받는데 3개월 이런 식으로 해서 총 4번의 심사를 받아서 최종 accepted 되는게 2005년이고 출간은 2006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표준화된 점수를 바탕으로한 한국 교수 채용 시스템은 나같은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무척 불리한 것이었다.
다행히 그해 10월인가에 Biometrika 에서 논문이 accept 되었다는 소식을 받아서 겨우 지원 자격이 되었다. ( 한국은 accept 를 인정하지 않는데 그래도 지원서에서는 그 내용을 언급할수는 있었다.) 몇군데 지원을 했고 그중 한국외대에서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학과 심사를 통과하고 총장 면접을 해야 하니 비행기 타고 오라고 했는데 비행기 값은 주지도 않으면서 오라고 했다.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갔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사장 면접이 있다고 또 비행기 타고 오라는 것이었다. 마치 포카 칠때 이미 들어간 돈이 많아서 어쩔수 없이 call 을 하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또 비행기를 타고 면접을 보고 한국외대의 교수 채용에 합격을 했다. 그 당시 카드빚이 1만불 정도 있었는데 그렇게 한국행 비행기를 몇번 타니 빚이 거의 2만불로 늘어났었다.
암튼 그래도 내가 선택한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오퍼를 받아들였다. 오퍼를 받으면서도 오퍼에는 봉급이 얼마인지 명시되지도 않았다. 임용되었으니 그냥 와라 이런 식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의 나는 다른 선택지도 없었고, 집사람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해서 7년 반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1994년 8월에 홀홀단신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서, 2002년 2월에 와이프와 아이 둘을 데리고서 한국외대에 전임강사 2년차로 (박사 1년 경력 인정 받음) 부임을 하게된 것이다. 한국행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지난 7년반을 돌이켜 보는데 이제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만감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