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내가 미국 유학과 2년 남짓한 직장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것은 2002년 2월이었다. 3월부터 개강이니 그전에 돌아가서 집도 구하고 이사도 하고 한국에 정착해야 했다. 직장은 한국외대인데 통계학과는 (학과명은 정보통계학과였음) 용인 캠퍼스에 있었다. 서울 이문동에 있는 캠퍼스는 부지가 작아서 인문 사회 계열 위주로 있었고 대신 이공계는 용인의 제법 넓은 부지에 자리 잡았다. 용인 캠퍼스는 나름 예뻤는데 대중교통이 별로 좋지 않아서 차로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용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분당 구미동 (분당 남쪽 끝자락임)에 전셋집을 구했다.
학과에는 전임 교수님이 나포함 6분이었으니 아주 작은 규모였다. 외대는 학교 재단이 강력하지 않아서 재단의 횡포는 없었는데 대신 재정이 그리 좋지 않아서 봉급도 많지 않았고 교원 정착비 같은 개념도 없었다. 개인 연구실은 주었지만 연구실에 필요한 컴퓨터 같은 것도 내 돈으로 사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이런데가 있나 싶었을 텐데 그 당시는 그냥 교수가 되었다는 거 하나로 그냥 만족했던 것 같다. 학과 교수님들은 막내가 왔으니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학교가 많은 지원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마음도 읽혔다.
대학원 과정도 있는데 석사 과정생이 풀타임으로 대략 20명 정도 있었고 박사 과정생이 10-20명인데 대부분 직장인이었다. 그래서 직장인 박사 과정생을 위한 야간 수업도 열렸는데 그걸 내가 맡게 되었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저녁은 서울 이문동 캠퍼스로 가야 했는데 용인에서 이문동까지 멀기도 하고 또 출퇴근 시간이라 막히기까지 해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시니어 교수들은 야간 수업을 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결국 막내인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학부 과목 두 과목과 대학원 과목 2과목(석사용 1과목과 박사용 야간 과목 하나) 이렇게 첫 학기에 강의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학기에 어떻게 4과목을 가르칠까 싶었는데 그때는 원래 그런 건가보다 하고 강의를 했다. 모두 처음 강의하는 것이니 강의 준비를 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강의 준비하고 밤늦게 퇴근하기 일수였다. 일 년을 그렇게 사니까 이런 식으로는 연구에 큰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강의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학과 교수님께 불평을 했더니 어느 한분은 "한 학기에 5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시는 것이었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래도 학생들과는 잘 지냈던 것 같다. 학생들은 일단 젊은 교수가 오니까 가깝게 따르려고 했던 것 같고, 또 그때만 해도 내가 교수보다는 학생에 가까운 외모라서 친근감도 느껴졌을 것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착했다. 아주 우수한 학생들은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 성실했고 자신감이 좀 없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밝았다. 학생들 따라서 MT도 따라가고 제주도 수학여행도 따라가서 밤새도록 게임을 하면서 놀았는데 여학생들이 나를 취하게 만들려고 술을 먹이려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밤새워 젊은 친구들이랑 놀고 또 낮에도 같이 돌아다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체력도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