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은 Position Responsibility Statement (PRS)라는 것이 있어서 내가 강의와 연구와 또 서비스에 얼마의 비중을 둘 것인지를 학과장과 면담하여 결정을 한다. 예를들어 학과 내에서도 연구에 중점을 두는 교수와 강의에 중점을 두는 교수 등으로 구분해서 그 PRS 에 따라 강의 부담도 다르게 주고 매년 평가 및 테뉴어 심사에도 반영하게 되는데 한국 대학에서는 외대 뿐만 아니라 나중에 연대에 가서 보아도 그런 개념이 없었다. 모든 교수가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를 받았고 평가 시스템 역시 엉성했다.
내가 외대에 들어가서 한학기 지나고 내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그 홈페이지에 내가 나의 PRS 를 적어 놓았다. 나는 강의에 1/3, 연구에 1/3, 그리고 사회 봉사 및 참여에 1/3의 비중으로 일을 하고자 한다 라고. 강의는 등록금을 내는 학생에 대한 의무이고, 연구는 학자로서의 의무이고, 사회에 대한 참여는 사회의 혜택을 받은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샘플링을 전공한 이유도 통계학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큰 기여를 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었기에 내 전공을 통한 사회 기여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에 샘플링을 전공한 사람이 워낙 없었고, 내가 이 분야의 대가 교수에게 제대로 공부를 하고, 또 관련 실무 경험도 갖춘 상황에서 만약 한국의 여러 기관의 도움 요청을 외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만 편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사실 이기적인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강의로 바쁜 상황이었지만 이런 저런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자문회의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가 국민은행에서 발주한 부동산 통계 관련 프로젝트였는데 (주택가격 지수개발 프로젝트) 제법 대규모였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올때 미국 빚이 있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삼천만원을 찾아서 미국 빚을 다 갚고 은행 잔고 마이너스 삼천만원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했는데 국민은행 프로젝트에서 받은 돈으로 그걸 다 갚을수 있었다.
통계청에서도 내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2002년 2학기에 간단한 용역을 하게 되었는데 도시가계 동향조사에서의 무응답 가중치 조정 관련 용역이었다.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데이터도 재미있고 연구 주제도 흥미로왔는데 워낙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고 연구기간이 짧아서 원하는 만큼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일을 하면서 윤연옥 박사님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고 (공무원 답지않게 통계에 대한 애정도 많았고 아주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었다) 그 분이 나를 통계청 통계 쪽에 관심을 갖게 하시려고 수고롭게 과제를 만들어서 일을 진행 했다. 그때에는 내 통계학적 내공이 별로 높지 않아서 별로 신통치 않은 방법으로 했었지만 그래도 그런 경험을 쌓는게 한국의 실정이 어떤지에 대한 이해를 높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강의에 프로젝트에 일이 많으니 정말 바쁘게 지냈던것 같다. 하루에 해야할 일이 평균 3개 정도여서 서커스에서 3개의 공을 던지며 저글링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대학원생들도 내가 가져오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실제 데이터를 다루는 경험과 통계적 개념들이 실무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산교육을 배우는 것이라 열심히 했다. 대학원생들 데리고 다니면서 밥사주고 일시키고 하면서 2002년 가을을 보냈던것 같다. 그때 회식을 하다가 곱창의 세계에 처음으로 눈을 떴다. 술안주로도 좋았고 고소한 맛이 정말 별미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한국에 돌아온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