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 (9)

by 김재광

2007년 후반기에 되니까 상황이 더욱 안좋아졌다. 먼저 같은 학과의 임요한 교수가 서울대로 떠났다. 임요한 교수는 내가 연대에 오고 나서 다음해인 2005년에 부임했는데 스탠포드 대학에서 확률론으로 박사를 받고 텍사스 A&M 에서 조교수를 하다가 연대로 온 실력파 교수이라 우리 학과에서는 참으로 귀한 인재였는데 서울대로 간 것이다. 연대 응용통계학과에서 연구에 열정이 있는 사람은 나하고 임요한 교수, 그리고 박상언 교수 정도였는데 임요한 교수가 떠나니 그 학과의 앞날이 상당히 비관적으로 느껴졌다. 임요한 교수같은 실력파 교수가 확률론이나 이론통계 과목을 맡아주고 내가 방법론 쪽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면 그나마 학과가 제대로 돌아갈텐데 임박사가 떠나게 되니 한쪽 날개를 잃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임요한 교수 입장에서는 박사과정이 훨씬 탄탄한 서울대를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으니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였고 오히려 축하해줄 일이었다.


연대는 정말 한심했다. 그 당시 총장이 정창영 총장이었는데 한번은 "연세와 노벨과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크게 주최했다. 노벨상 수상자를 여러명 초청해서 공개 강연 같은걸 하는 것이었는데 그 비용을 대학원 장학금 예산에서 빼다가 쓴 것이었다. 결국 총장이 노벨상 수상자들 만나서 폼 잡고 신문에 기사 올리려고 대학원생 장학금을 줄인 것이니 내 입장에서는 한심하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화가 났다. 연세대는 말로는 연구중심대학이라고 했지만 내가 관측한 바에 의하면 그냥 강의중심대학이었다. 연구중심대학이 그런 식으로 대학원생 지원을 줄인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과 교수 중에서도 한심한 분들이 제법 있었다. 한분은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시고 나머지는 부동산을 보러 다니셨다. 그 당시에는 부동산 붐이 제법 일어났으니 그분은 발품을 팔아서 서울 경기지역 부동산을 알아보고 투자하는 것이 본업이었고 대학교수는 거의 부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그 교수님이 나보고 본인이 부동산으로 돈을 번 것을 자랑하시면서 "김박사도 주말에 괜히 연구실에 나와서 연구하지 말고 부동산을 보러 다니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참으로 힘빠지는 이야기가 아닐수 없었다. 학교가 강의 시수를 6학점으로 줄여준 이유가 교수들 연구하라고 배려한 것일텐데 그 교수는 이러한 배려를 악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는데에 전념한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그런 선택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런 것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한분은 더 한심했다. 부교수 승진에 연구실적이 모자라서 한번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연대는 2번의 기회가 있다) 그러면 좀더 열심히 공부해서 논문을 쓰는게 정상일텐데 그 분은 본인이 논문 쓰는건 아예 포기하고 다른 교수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려서 free-ride 를 하는 방식으로 논문 점수를 높히고자 했다. 논문 쓰는 재주는 없지만 사람 구워삶는 재주는 있는 편이라 그 교수는 몇편의 논문을 그런 식으로 해서 승진 점수를 채웠다. 그 내용을 다 아는 나로서는 그걸 모르는척 묵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은 2007년 가을에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에 내가 학과 교수님 몇분들에게 이건 좀 아닌것 같다는 의사표명을 했고 그게 나중에 당사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나는 그 당사자에게도 실망을 했지만 그걸 당사자에게 알려준 사람에게는 극도의 분노감을 느꼈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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