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10)

by 김재광

연대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나서 제일 먼저 연락한 분은 아이오와의 지도교수였다. 교수님께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고 미국 아이오와에 교수채용에 지원해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말씀은 기억나지 않지만 졸업한지 7년이 지났으니 이제 모교 졸업생 채용 금지 원칙에는 자유롭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은 기억난다. (여기서는 모교 박사 졸업생을 교수로 채용하려면 박사 받은후 7년이 지나야 하는게 원칙이다.)


그리고는 아이오와의 다른 교수 몇분한테 이메일을 받았다. 네가 지원을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뭐 도와줄거 없냐, 네가 꼭 와서 샘플링 연구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메일이었다. 풀러 교수님이 은퇴하시고 샘플링 연구소를 이끌어갈 사람을 찾았는데 시카고 대학의 월터 교수가 소장으로 왔다가 2년후에 돌아가고, 또 중진 교수 한명이 잘 있다가 이혼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해서 아이오와에서는 샘플링을 제대로 전공한 교수를 꼭 구해야 하는 처지였다. 한국에서도 샘플링 전공자가 드물지만 미국 역시 드물었기에 나는 운 좋게도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학과에 지원을 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그냥 이메일에 지원서 커버 레터 하나와 이력서 한장을 첨부해서 보내면 끝이었다. 지원하는 커버레터에는 테뉴어를 받는 조건으로 지원을 하고자 한다고 명시했다. 테뉴어를 받지 않으면 굳이 미국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력서 하단에 추천인 3명 이름을 넣는게 있는데 나는 풀러 교수와 라오 교수 그리고 Westat 의 칼톤 박사 이름을 넣었다. 샘플링 분야의 당대 최고 3명이 나의 추천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서 나머지는 아주 물흐르듯이 매끄러웠다. 인터뷰를 하고 다음주에 오퍼 레터를 받았다. 그 오퍼에는 당연히 테뉴어도 포함되었다.


지원을 할때에는 꼭 떠나겠다는 생각으로 한것은 아니였고 그냥 일단 지원을 해보고 결과를 보고 판단하려고 했던 것인데 막상 오퍼를 받으니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일단 연대 측에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 오퍼를 받은걸 가지고 연대에서 2년정도 휴직을 받은후 2년 뒤에 최종 결정하는 옵션을 추진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당시 학과장님이 그게 별로 탐탁지 않았는지 아니면 이 기회에 잘가라고 생각하신건지 별로 적극적이지 않으셔서 그냥 사직하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굳이 나 아니어도 연세대에 오겠다는 사람은 많을테니 그런게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였다.


개인적으로는 아이오와의 그 자리는 무척 영광스러운 자리였기에 욕심도 났다. 은퇴하신 지도교수의 후임 교수 자리이니 아무나 가는 자리는 분명 아니였고 또 지도교수님과 학문적인 대화를 나눌수 있고 성장할수 있으니 좋은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연대에서는 박사과정이 부실하지만 아이오와 주립대는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니 그곳이야말로 학문의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이고 따라서 내가 거기에서 박사들을 배출하며 학자로 평생을 사는 것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 느껴졌다. 어차피 한국의 명문대 교수생활도 해보았고 한국생활의 단맛쓴맛 다 보았으니 이렇게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아서 최종적으로 오퍼를 수락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가려고 하니 여러 장벽이 있었다. 하나는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집사람은 이제 한국에 정착해서 편안해질만 했는데 왜 다시 미국에 나가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나는 일단 아이들 교육 문제로 설득을 했고 또 미국을 가면 내가 술마시고 늦게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좋지 않냐고 설득했다. 집사람도 아이오와 생활이 어떤지 뻔히 아는지라 결국엔 승낙을 했다. 부모님도 당연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셨다. 그 좋은 직장을 놔두고 왜 미국을 가려는 것인지 말리셨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고 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원래 없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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