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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Jun 22. 2020

공부하는 삶

제가 전공하는 통계학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기는 하지만 이것이 학문으로써 연구되기 위해서는 추상화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추상화가 얼마나 많이 되었으냐 아니냐의 차이로 통계학은 크게 이론통계와 응용통계로 나뉘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높은 산에서 올라가서 아래를 보는 것이랑 낮은 산에서 올라가서 조감하는 것이랑이 차이로 이해할수 있을텐데요, 더 높이 올라갈수록 추상화 과정을 높히게 됩니다. 그런 추상화는 많은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한다는 면에서 큰 장점이 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현실문제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문제는 추상화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불규칙성과 일그러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처음에는 통계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수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통계학을 수학적으로 접근해서 이해시키려는 대학교육은 왜 내가 통계학과에 왔는가를 회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배울거면 차라리 수학과에 가서 수학이나 실컷 배우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중 제가 한줄기 희망을 발견한 것은 샘플링이라는 과목을 공부하면서였습니다. 샘플링에서는 IID ( Independently and Identically Distributed) 라는 것을 가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IID 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것인데 확률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서 편의상 가정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 익숙해지다보면 IID 가 당위어야 할것처럼 느껴지고 그렇지 않은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수 있습니다. 그건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통계학의 인식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건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통계학의 문제인 것입니다. 암튼 저는 이러한 희망을 발견하고 아이오와 주립대학에 유학을 가서 샘플링 전공으로 통계학 공부를 했는데 그 곳에서도 이론적으로 깊이 공부하지는 못했습니다. 샘플링 분야가 추상화를 고도로 하기에는 너무 현실과 밀접한 분야이기도 하고 지도교수님도 수학적으로 기교가 뛰어난 분이 아니라서 저는 이론통계에 관한 기법들을 별로 배우지 못하고 박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계속 연구를 하면서 필요에 의해 이론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Large sample theory 관련하여 기본적인 확률론 기법등을 공부하고, 좀더 지나면서는 Nonparametric regression 이나 semiparametric inference 에 관련된 이론적 테크닉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했다기 보다는 응용 및 방법론 연구를 하다 보니 관련 이론 지식이 필요해서 좌충우돌식으로 독학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최근에는 기계학습에서 필요한 function approximation 과 관련한 내용까지 공부하게 되었으니 제법 이론적으로 난이도가 있는 내용까지 소화하게 된 셈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이론적인 것을 먼저 배우고 그걸 바탕으로 응용을 써먹는게 일반적인데 저는 거꾸로 응용을 하다가 이론이 필요해서 그걸 찾아서 공부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런 방법이 힘들고 비효율적인것 같지만 오히려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라 필요한 것을 찾아서 써먹는 수준의 공부로는 더 효과적인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론과 실천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지식의 세계를 넓혀갔기에 크게 흥미를 잃지않고 꾸준히 할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통계학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부라는 것은 결국 우리의 머리속에 일종의 관념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 건설하고자 하는 자기의 관념세계는 지나치게 이론적이 되면 현실과 유리되고 공허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경험되지 않는 이론이라는 것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기에 매우 허약한 뿌리를 갖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경험 위주로 이루어진 세계 역시 부실하거나 독단적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는 타인의 세계와 만나서 공감되고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보편성이 결여된 것이라면 맹목일수 있습니다. 일찌기 칸트 선생이 "개념 없는 지각은 맹목적이고 지각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그 말이 이 상황에 적용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지각)은 이론(개념)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이론 역시 공허할수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공동체적 존재라는 전제하에서 주장되고 있는 모든 가치가 개별적 존재 속에서 구현되지 않으면 공허한 것입니다"라는 김훈 선생의 인터뷰 주장은 그런 면에서 크게 동의하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을 구원할만한 커다란 가치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게 자기 삶에서 구체적으로 발현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 링크입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822636?sid=001&fbclid=IwAR0-u_1TwE7yNwigDJeScBqfOWW38kiVDzH9xPaT3skBfBQdi4OWf0V8r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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