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광 Jun 27. 2020

고욕망 사회

제 막내딸이 이번에 고3을 마치고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대학을 여러군데 지원해서 그 중에서 입학허가를 받으면 자기가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해서 등록을 하면 입학 절차가 마무리 됩니다. 저희 아이도 몇군데 입학허가를 받았는데 최종적으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사립대학교로 결정했습니다. 반액 장학금을 제공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대학 학비가 워낙 비싸기에에 그냥 자기가 사는 주의 주립대학을 가거나 아니면 장학금을 주는 곳으로 선택하는게 일반적입니다. 어제는 제 아이가 자기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실력으로는 아이비 리그 명문을 갈수 있었지만 그냥 아이오와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큰 욕심이 없고 어차피 부모님과 친척들이 다 아이오와에 살기에 그냥 아이오와에서 장학금 받으면서 학부를 다니는게 편하고 나름 괜찮은 교육을 받을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아이오와 대학의 프로그램이 전혀 부실하지 않고 나중에 본인이 원하면 대학원을 명문 대학으로 가면 되니 현명한 선택인것 같다고 하였는데 제 딸도 동의하였습니다.


한국은 그보다는 대학 서열화도 심하고 그와 관련된 부작용도 많은 편입니다. 제 딸내미 친구처럼 실력에 비해 욕심이 없어서 그냥 지역의 대학을 진학하는 사람보다는 실력에 비해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입니다. 한마디로 고욕망 사회인 것이지요. 그러한 고욕망 사회가 다이나믹 코리아의 원천이기도 하고, 그 에너지로 촛불 시위로 정권도 교체하는 긍정적 역할도 했지만 또 많은 부작용을 수반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이나 인구문제도 그러한 고욕망 사회로 인한 부작용이라고도 볼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그토록 고욕망 사회가 된 원인중 하나를 뽑으라면 성공에 대한 과도한 보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들어 학벌이나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과도하기 때문에 이에 목을 매는 것입니다. 명문대학 출신과 비명문대학 출신이 받는 대접이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차이가 많이 나기에 한국사람들이 더욱 학벌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성공에 대한 과도한 보상은 곧 성공하지 못한것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처벌과도 연결됩니다. 한국의 갑질문화는 고욕망사회의 어두운 단면이고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는 이런 갑질들이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기 보다는 어느 정도 용인된다는 면이 사람들로 하여금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수단화하여 고욕망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함으로써 갑질문화가 더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알코올 중독자의 비율이 통계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삶이 힘드니 술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더욱 자기 삶을 가난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지요. 저는 브런치 같은데에서 힐링이나 값싼 위로를 주는 감성적인 글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도 이런 학습된 무기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싸구려 감성팔이 글들을 왜 읽을까 싶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한국에 가짜 힐링이라도 받고 싶어하는 수요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감성팔이 글들이 자기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데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상처를 잊고 스스로를 위로하는데는 도움이 될텐데 그런 류의 글들이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한국이 그만큼 상처받을 일이 많은 고욕망 사회임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근 공정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러한 공정이라는게 성공 시스템을 공정하게 하는 것으로 국한되면 이러한 성공에 대한 과도한 보상을 합리화 하는 방편이 될수 있기에 이는 잘못된 문제제기 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것은 이러한 자유주의적 승자독식 시스템을 공정한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성공 보상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굳이 롤스의 정의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얼마만큼 보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최소극대화 문제야말로 국가가 고민해야할 진정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이 풀수 없고 정책 결정자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국정 지도자가 그러한 책임을 외면하고 불평등한 구조적 현실에서 단순히 공정을 강조하는 것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이를 더욱 심화시킬 뿐입니다. 예를 들어 명문대 졸업생이 갖는 과도한 사회적 보상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보다 명문대 입시를 어떻게 공정하게 치룰지를 논의한다면 잘못된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책임있는 리더라면 공정에 대한 소모적 논란을 소비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승자독식의 구조를 해체하고 사회적 불평등과 긴장을 완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당부터 승자독식의 오만함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에서는 아직 요원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하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