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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Jul 15. 2020

정규분포와 파레토 분포

이제 달력을 보니 여름 방학이 한달 정도 남았습니다. 이번 여름은 참으로 특별한 여름입니다. 코비드 때문에 모든 학회가 취소되어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계속 집에만 있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학회를 3-4군데 참석하면서 바람도 쐴텐데 이번 여름은 한군데도 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예전보다 많은 시간을 연구에 쓸수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예년보다는 성과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코딩도 직접 하기도 했고, 또 예전같으면 엄두를 내지 못할 새로운 분야를 들어다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브런치도 이번 여름부터 시작을 했네요.


연구라는걸 20년 가까이 꾸준히 해보니 이게 복리로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해도 늘지 않고 진전이 눈에 보이지가 않는데 어느 단계가 지나고부터는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시행착오와 경험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축적이 되는 것이기에 하나의 무형 자산이 되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때 기존 지식과 상호작용을 통해 훨씬 더 많이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연구에도 정확하게 적용될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연구 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적인 분야가 다 그러할 것입니다. 외과의사가 수술을 하는 것도 초보시절에는 뼈아픈 실수도 하겠지만 그걸 냉정하게 분석하고 복기를 하면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교정을 할 것이고 그런 시간들이 축적이 되면 명의 소리도 들을수 있을 것입니다. 운보다는 실력이 좌우되는 분야에서는 이런 복리효과가 더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실력보다 운이 더 작용되는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의 능력은 긴꼬리 분포를 갖는 파레토 분포를 갖습니다. 통계학에서 나오는 파레토 분포는 오른쪽으로 긴꼬리를 갖는 확률 분포를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되는 모형인데요, 그 속성이 복리효과를 갖는 사건들에 대한 확률 모형이 될것입니다. 파레토 분포를 갖는 첫번째 이유는 성과에 복리효과가 반영되기 때문일텐데 여기서 개개인의 학습능력은 이자율에 해당되는 파라미터 값으로 서로 다를수가 있겠지만 그 파라미터 값이 어느 정도 비슷한 경우에는 결국 시행횟수(노력 및 경험)의 차이가 성과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라도 다 똑같은 전문가가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의 학자와 초보 박사는 하루아침에 극복할수 없는 엄청난 격차를 갖습니다. (물론 천재는 파라미터 값 자체가 다르니까 특정 영역에서는 젊은 시절부터 엄청난 두각을 나타낼수 있겠습니다. ) 


긴꼬리 분포를 갖는 또다른 이유로는 협업을 하는 경우 생기는 "마태효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되는 것인데 초반에 남들보다 조금 앞서면 그 유리한 출발선 때문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기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전문 경험을 쌓을수 있게 되어서 나중에 가면 더 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명문대학 교수가 되면 우수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되어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그에 해당하는 것일텐데 실증 분석에 의하면 실제로 그렇다고 합니다. 초반에서 다 고만고만한데 약간의 차이가 나중에 큰 격차를 벌리는 것인데 많은 일들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 하는 것이고 그러한 경우 유능한 협업 파트너를 얻는 것이 운보다는 본인의 현재 실력에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 자체는 파레토 분포를 갖는게 아니라 정규 분포(normal distribution)를 갖습니다. 정규분포는 인간의 키나 몸무게처럼 생물학적 속성을 기술하는데 적합한 분포입니다. 성인의 경우 키가 제일 큰 사람과 제일 작은 사람의 비는 5배를 넘지 않습니다. 그래서 희노애락의 기본 감정이나 성욕이나 식욕과 같은 본능적인 욕구는 정규분포의 속성상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지 않고 거기서 거기입니다.  즉, 우리의 본성은 정규분포이지만 우리의 훈련된 지식과 능력은 파레토 분포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이점을 이해하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결론을 얻을수 있습니다. 첫째, "나는 다르다" (또는 저 사람은 다르다) 는 생각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틀린 이야기일 확률이 크다는 것입니다. 둘째, 어떤 전문영역에 대한 것은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경륜을 가진 사람들의 전문적인 의견들이 경청되고 그 지혜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좋습니다.  지나친 정치과잉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치논리로 재단되고 이를 매장하는건 현대판 분서갱유와 다를바 없습니다. 정치가 다른 영역을 침범하기보다 신뢰하고 존중할때 사회적으로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경제학 원론과 싸워서 이길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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