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교수생활 (5)

by 김재광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오와에 가서 처음 3년은 그냥 씨뿌리는 시기였던것 같다. 그때는 학생들도 미숙했고 나도 미숙해서 시행착오를 많이 했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니까 그 다음 3-4년은 성장기가 왔다.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고 조금씩 인정받는 시기였다. 우수한 학생들이 이때부터 내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내 연구실의 성장기는 2011년 가을부터라고 할수 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성장기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된 귀인을 2011년 가을에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Shu Yang 이었는데 20대 중반의 젊은 중국인 여학생이었다. 몸도 호리호리해서 공부를 할 체력이나 있을까 싶은데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친구였을 것이다. 중국의 북경사범대 수학과 출신인데 통계학으로 유학을 나오려고 지원했는데 잘 안되어서 일단 수학과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나와서 수학 박사 공부를 하면서 통계학으로 이중 전공을 했다.


그 친구의 지도교수는 원래 내가 아니라 Zhu 선생이었는데 그 학기에 Zhu 교수가 안식년을 떠났고, 나는 그 학기에 missing data analysis 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를 하면서 책을 쓰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샘플링을 전공으로 10년 정도 연구했었는데 아무래도 샘플링은 점점 인기가 떨어지는 사양산업화 되는 면이 있었고 대신 missing data 는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 전공을 갈아타려고 강의를 개설한 것인데 그 과목을 그 친구가 신청을 해서 내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몇번 숙제를 보고 중간고사를 치루고 나서 나는 이 친구가 아이오와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레벨의 능력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 역시 논문을 많이 쓰고 싶어했고 어차피 지도교수는 안식년으로 호주에 가 있는 상황이라 나에게 연구 토픽을 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연구 아이디어를 주고 같이 해보기로 했는데 워낙 열심히 하고 피드백이 빨라서 그 학기가 끝나고나니 페이퍼 초안이 4개나 완성하게 되었다. 이 친구가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닫는걸 보고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이 친구 추천서를 쓰면서 내가 존경하는 제자라는 표현을 했었다.)


지도교수인 Zhu 교수는 돌아와서 그 상황을 보고는 그럼 나와 같이 공동지도교수로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나와는 missing data 관련하여 논문을 쓰고 Zhu 교수와는 spatial data 와 관련하여 논문을 썼는데 3년후 졸업을 할때 보니까 나와 쓴 논문이 총 8편인가 되었고 Zhu 교수와도 몇편을 썼을 것이다. 그 친구는 졸업을 하고 하버드 포닥을 2년 했는데 그 포닥 과정에서도 나와 연구를 계속해서 지금까지 아마 20편 가까이 논문을 쓴것 같다. 파레토 법칙에 상위 20%가 전체 80%의 일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친구가 그런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 이친구는 노스캐롤리나 주립대학 통계학과에서 조교수를 하고 있는데 미국 통계학계 전체에서도 떠오르는 스타 소리를 들으면서 잘 나가고 있다. 그런 친구를 박사 제자로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나는 스승복 뿐만 아니라 제자복도 있는 행운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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