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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Nov 04. 2021

가능성에 대한 망상

11/3/21

두 번째 심리상담 후기 - 영상통화


온라인으로 문의했던 곳 중 가장 답장이 빨리 왔던 곳. 심지어 원장님께서 직접 카톡 상담까지 해주시는 느낌적인 느낌이... 빠른 답변을 주셨다는 사실 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예약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예약하길 너무너무 잘했다!!! 이제까지 상담받은 경험 중 최고로 만족함.


참고로 이곳은 단기성 상담이 아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부모와의 애착관계 등을 보며 정기적으로 상담받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걱정이었는데 내가 직접적으로 지금 고민하고 있는 부분으로 바로 넘어가 주시고 그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상담해 주셔서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




상담 전 설문지에 유년시절에 관한 문항을 답변하고 나서 했던 고민들


나는 왜 마국까지 와서 살면서 자꾸 한국을 그리워할까? 나는 왜 어렸을 때는 9시 10시까지 교복 입고 야자 하던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왜 수능 스트레스까지도 멋져 보였을까? 막상 내가 수능을 봐야 했다면 잘하지도 못했을 거면서;; 한국이 유토피아도 아니고 사람 사는데 다 똑같은데 왜 자꾸 내가 어느 나라에 살던 그 나라보다 한국이 훨씬 더 좋아 보였을까? 내가 한국 가면 어마 무시하게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곳 생활과 비슷하거나 더 나빠질 수도 있는데 나는 왜 자꾸 한국이 가고 싶을까? 나는 왜 지금 여기의 내 삶에 집중하면 되는데 한국생활에 자꾸 미련을 가질까?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살았을 때의 그 어린 시절이 상당히 미화되어 기억나고, 그 시절에 멈춰있는 것 같다. 어쩌면 한국생활이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더더욱 좋아 보일 수도 있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한 미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건 이제는 한국에서도 적응 못하고 어중이떠중이가 된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그렇게 동경했으면서도 막상 한국에서 살면 제대로 소속되지 못했다. 항상 한국에 돌아갔다가 해외로 회피했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뭐하는 짓인지;;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너무 외국식으로 외국에서는 또 한국적이고. 어쨌든 내가 여기서 계속 살려면 이곳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러면 내가 그렇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한국 문화나 정서가 사라짐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한국사람과 이야기할 때 분위기 파악 못하게 되고 눈치 없고 센스 없고 공감능력도 없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둘 다 포용하고 이해하고 상대에 맞춰서 행동하기가 나에게는 너무 어려울 뿐 ㅠ 내가 현명하게 양국의 문화와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이곳에 백퍼 적응해서 그냥 현지인처럼 살아가야 하나? 


나는 나의 뿌리가 한국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 친정도 없고 굳이 한국에 갈 일도 없는데 나는 왜 자꾸 한국에 목을 매지? 실상 가족이 있는 곳이 내 집이고 고향이면 우리 가족들 다 뿔뿔이 흩어지고 친구들도 지금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해외에 사는 친구도 많고... 내 고향, 내 뿌리, 내 추억을 둘 데 없어 한국이라는 두리뭉실한 이상 국가(?) 고향(?) 으로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논 것 같다. 


나의 한국 여권 한국 인종 한국인의 피 한국의 세련된 모습 한국의 자랑스러운 모습 난 그냥 국뽕에 취해있는 걸까? 한국에서의 고된 직장인 삶을 살거나, 야자나 야근도 안 해본 내가? 한국에서 나고 평생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진정한 한국인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헬조선 탈출하고 싶어 나를 부러워할 수도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한국에 집착할까? 당연한 줄 알았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거였다!


특정 메신저나 SNS는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나 보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 이민을 고민하고, 결혼도 고민하고, 아기는 없고. 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고 외로움도 사라졌다. 그리고 실제 만난 사람들 좋은 사람들과 헤어지기가 싫었나 보다. 나는 너무 외로웠으니까 ㅠㅠ


최신 유행을 선두하고 잘 나가는(?) 한국인들도 부러워 보였다.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그렇게 살고 싶었던 모습 같아 보여 좋았나 보다. 그런데 내가 점점 하와이 촌사람이 되면서 그런 도회적이고 새련된 모습과는 멀어져 가고 ㅠㅠ 그냥 나의 이상형처럼 유니콘처럼 느껴지고 나는 못하지만 충분히 서울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느꼈었나 보다. 내가 원한 건 세련된 도시인인데 주의 가장 중심가에 살면서도 한국 시골 동네 느낌이라 내가 자꾸 서울을 그리워하나... 


아니, 지금 여기 이곳에서 내가 이렇게나 열심히 사는데 왜 한국에 두고 온 삶을 또 그리워하고 미련 가질까? 뭔가 흠 지금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나? 지금 나는 거의 일생일대의 전성기인데;; 최상의 상태이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데!!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고 사랑하는 남편에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그래 내가 갖지도 못하는 서울과 그 단톡방이 대수랴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 더 어울리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계약직에 프리랜서 일만 들어왔다면 여기는 정년 보장되는 첫 정규직 직장을 가졌고, 한국에서는 어리바리 해대고 진상 민원 상대하면서도 팀장님은 네가 참으라고 여기 사람들 안 겪은 사람 없다고 했는데, 이곳에서는 뭐 쪼끔만 하면 상까지 주고 우쭈쭈 해주고 칭찬일색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시위한다고 본관 점령한다고 그 유리 건물 안에 유리 못 깨게 직원들 밀어 넣었는데;;; 이곳에서는 진상고객님 오면 바로 경찰 부를 수 있고 (이게 젤 좋음) 


앗, 그럼 이곳이 나의 데스티니였나...? 남편을 바꾸려고 집착하다가 있는 그대로 그를 인정해버리니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는데, 내가 한국에 집착하면서 미련 갖고 있다가 그냥 나는 여기 스타일인가 보다 하고 인정하면 이보다 더 승승장구하려나?




흠, 또다시 생각해보니 왠지 한국은 살기 편했다고 느껴졌다. 시스템의 편리성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동의하는 기준이 있어서 그것만 잘하면 인정받는 사회가 나한테는 편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학생 때는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노오오력을 하면 뭔가 이루어지고 나는 열심히 하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정답이 정해져 있어서 좋았다. 정해진 일만 하면 되니까 그게 편했다.


반대로 이곳은 다들 각자의 삶을 산다. 자신이 원하는 삶.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 정확하게 모른 채로 와서 더 헤맸던 것 같다. 그리고 갑자기 생긴 시간과 여유를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동동거렸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이렇게 좋은 시간을, 이렇게 좋은 공간을 나는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마음이 콩밭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너무나도 평범한 1인이라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특별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가서 다시 정답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손에 쥐고 싶었나 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걸 잘 모르니까, 진짜 한국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진짜로 한국에 가서 내가 대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일단 대피처로 한국에 자꾸 미련이 남았나 보다. 그 아직 시도도 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에 미련이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게 명확해지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나서 다시 생각해봤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이곳이 오히려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정해진 틀이 있어 그 틀 안에서만 가능성을 실험해야 한다면 이곳에서는 뭘 하든 자기 맘이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들은 글쓰기 수업도 이곳에서는 교수님께서 방법론적인 가이드를 해주시지만 내가 원하는 주제로 원하는 연구로 자유롭게 작성하고 피드백도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을지 의견을 나누는 형식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 수업에서는 정해진 틀에 벗어나면 아무 설명도 없이 삭제당하는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돌아가 그 규칙에 딱 맞춰서 산다면 내가 성공했다고 느낄 수 있을까?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느길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지만 그 무한한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냥 내가 상황 파악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더더 잘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이곳에서 잘 살 수 없다고 나 스스로 축소해서 생각하다 보니 한국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인 걸까?







상담 중 노트필기


1. 생각의 문제 : 보다 합리적인 생각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앨리스의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EBT): 비합리적 신념의 치료

2. 표현의 문제 :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내 의사를 표현 방법은 무엇인가

*** 아론 벡 인지행동치료


- 나를 돌아보기

나 역시도 부정적인 패턴을 쓰고 있음 -> 타인이 나를 보고 인식

성숙도가 높으면 더 나은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음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면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미해결 된 과제가 있을 수 있다0


*** 선생님의 해석

내가 문제라고 느끼는 상황의 본질은 상대의 행동이나 태도가 아니라 내가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껴졌기 때문


- 내가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느낀 이유는 그 상황이 불합리하고 민주적이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 나의 참여 권리에 대한 침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단체의 목적을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음. 규칙이 많았던 곳을 떠나 자신이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들과만 어울리기 위해 만들어진 그 사람의 공간이었는데 내가 몰랐음. 


*** 경직된 사고, 당위적 사고, 보편적 원칙,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 대안적인 / 합리적인 사고, 유연한 사고로 전환 필요


- 내가 힘들 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엄청난 위안을 주었고, 그때 만난 사람들과 정이 들었기 때문. 하지만 나의 상황/생각이 극적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연결되어있다고 느끼질 못함.


*** 정서적 연결감을 추구했지만, 융화/화합하지 못함 -> 단절 경험 -> 부정적 감정

대인관계 문제 - 기능적 역할 

단체 속에서 한 개인으로서 얼마나 융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지 못하는 나의 모습


***자신의 가치관의 기준/원칙/규범/신념 이 강함 -> 생각을 가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강도가 너무 세면 갈등이 생김


- 어렸을 때부터 한국과 외국에서 번갈아 가며 살면서 외국의 문화/정서에 적응하다가 귀국하면 한국사회에서 나한테 쓰인 강제적 의무를 겪음 -> 그리고 다시 외국 나가면 천천히 그쪽에 적응할만할 때쯤 다시 한국 와서 한국식 문화의 극단으로 끌려감;;


*** 그런 경험의 반복으로 인해 신념이 내제화/형성 


- 한국에서는 이래야 한다는 개념. 부당한 걸 알지만 나에게 강제되고 내가 일개 개인으로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 강도가 더 크게 다가옴


- 내가 깨달은 점은 외국인에게는 용인/유연할 수 있는데, 한국인들에게는 다른 기준을 갖고 있음.  


*** 외국인은 인정/이해해버리는데 한국 사람들에게는 왜? 고쳐야 할 점이라는 사실을 인지.

나로서는 맞는데 상대는 내가 아님. 정경이 아닌 배경으로 물러서서 필터링하려는 노력 필요. 


- 그 상황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다고 생각함. 하지만 화가 났는데 표현을 안 하니까 더 답답하고 억울하게 느껴짐


*** 프로이트 무의식 의식

상처 받은 감정이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치유가 된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내재화되어 저장되어있음.

사긴이 지난다고 해결되지는 않고 그때 상처 받은 감정들에 자극을 받으면 현재의 감정과 융합 -> 폭발적 반응

안정적인 대화법을 통해서 표현을 해줘서 해소해야 함.


***로지스 인간 중심이론

인간은 자기 자아실현 경향성이 있어서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내적 열망을 모두 가지고 있음

내담자에 대한 내적 자원을 믿음.

아는 것을 실천하고 그러므로 인해 성장할 수 있다.




상담 후기


상담을 준비하면서 나는 사실 내 감정이 많이 정리가 됐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잘 들어주시는 게 정말 정말 큰 위안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표현하고 그걸 지적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일상의 자잘한 일들을 심리학 이론에 대입해서 설명해주시며 내 감정과 사고를 인정하여 주셔서 완전 쏙쏙 들림. 지금은 내 생각을 인정받고 해결책을 제시해주시는 방식. 


내가 작년에 겪은 상담의 첫 경험은 내가 무슨 말만 하려 하면 바로 끊고 그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제하고, 상담자가 원하는 말을 나보고 하라고 시키는 등 상당히 거부감 느껴졌었음. 그런데 이번 상담은 내가 딱 원했던 방식이었다!!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시면서 이미 해탈했다고 이미 하루 만에 큰 발전이 있었다고 이해해주심. 더해서 선생님께서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생각이며 만약 문제라고 느껴진다면 이것은 기능적 문제일 뿐 불치병이나 나의 잘못이 아님을 말씀해 주심. 


그리고 상담을 쭉 하면서 중간중간 나 스스로도 깨달은 게 이게 사람만 바뀌었지 내가 남편과 갈등이 있었을 때 보았던 똑같은 양상의 문제와, 똑같은 방법의 해결책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내가 남편과 그렇게 힘들게 문제를 겪고 해결하는데 노력을 했는데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정신 차려야지 클나겠다


한 가지 더 깨달은 점은 심리상담 용어 중에서 "합리적"이라는 단어의 정의이다. 내가 이제까지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것은 옳은 것, 타당한 것, 즉 경직된 사고였다면,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합리적"이라는 단어는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것. 즉 내가 생각했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합리적인 해결방법이라는 것이었다. 


다음에 무슨 일이 또 생기면 이 의사 선생님께 상담받을 재방문 의사 100 퍼!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왠지 옛날에 받았던 상담은 내가 들을 준비가 안돼 있어서 오히려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상담사 잘못이 아니라 내가 못 들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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