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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Nov 05. 2021

관계에 대한 망상

11/4/21

관계란 무엇일까? 대인관계, 한국인의 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 사랑 우정 의리, 그 고유 학고도 특별한 인연. 나에게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정말 많았나 보다. 


관계중심이었던 한국사회에서 관계의 중요성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n포 세대가 포기하는 것들 중 연애결혼 출산 집 경력을 다 포기하고도 인간관계까지 내려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불필요한 기름기를 쫙 빼고 자신에게 필요하고 유용한 살코기만 남은 최소한의 인간관계. 필요한 것 이상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 와든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어느 한 명의 영향력이 가져오는 결과는 각양각색이니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는 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 부정적인 에너지에 정말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니까.


나도 상당히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꿈과 희망보다는 현실과 겉모습에 집착한 적도 있고, 상대의 마음과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식대로 해석해서 괴로워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당시에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게 당연한 것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느끼기에 그 당시 나는 모두를 적으로 두고 있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동료와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두며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공유하지 않으려고 꽁꽁 싸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자비로 구입한 자료를 무상으로 공유하고 진심으로 상대를 응원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하면 서스름 없이 물어보시는 게 아닌가! 그분을 보고 정말 티 없이 맑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속이 베베 꼬인 나와는 달랐다. 밝고 사랑스러웠다. 사실 우리는 적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쩌면 한 팀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와 생각하면 정말 창피하게도 나는 그 자료를 받고도 내 자료를 공유드리지 못했다. 내 욕심이었다.


그분을 만난 뒤로 나도 그분처럼 누군가에게 밝은 영향력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보여줬다. 비자 준비 자료, 해외 취업 자료, 결혼 정보, 자격증이나 공부 자료 등등. 모두 정말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받아주셨고 나도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했었다. 


내 이력서와 자소서를 공유드린 분께서 합격소식을 알려오거나, 비자 자료를 공유드린 분께서 비자 승인 소식을 알려주시면 정말 내 일처럼 기뻤다! 그 힘든 여정을 알기에 좋은 결과를 얻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이 든다는 사실이, 내가 진심으로 그렇게 밝은 기분을 느낀다는 사실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결국 남편도 그랬겠구나 그래서 타인을 도와주려고 했었구나 느껴졌다. 


그런데 물론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서,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의 도움만 받고도 속으로는 나를 싫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내 감정이 상했다. 하지만 그 도움을 준 사람은 나고, 누가 강제한 게 아니라 내가 자발적으로 도움을 준 것인데, 상대가 나를 좋아하던 싫어하던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었다. 그가 나를 싫어하지만 내 자료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가도, 상대는 필요한 것을 취하고 그 이상을 원치 않을 수도 있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는다.


차라리 대놓고 말하면 좋을 텐데 왜 앞과 뒤가 다른 행동을 하실까?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들이 그렇게 불편했다면 왜 나와 만나고 왜 굳이 굳이 책을 찾아 샀을까? 왜 본인의 에너지를 싫은 사람에게 쏟을까?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왜 앞에서는 아무 말씀 없으시고 심지어 칭찬을 하셨을까? 그게 사실은 칭찬으로 포장한 비난이었을까? 그런데 내가 못 알아들었나?


단점을 보는 건 본능이지만 장점을 보는 것은 재능이라고 한다. 생존을 위해 단점을 과장되게 기억해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나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 처음 갔던 장소에서, 처음 겪은 상황에 장점보다는 단점에 집착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의식적으로 장점을 찾으려 하지만 여전히 문득 단점이 눈에 확 들어올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단점도 사실이고 장점도 사실이다. 둘 다 사실이다. 그러니 단점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차라리 장점을 극대화해서 그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도 단순하게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외부의 부정적인 에너지에 잠식될 필요도 없고, 내가 부정적인 기운을 뿜어낼 필요도 없다. 긍정적인 면을 찾아 최대한 받아들이고,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아직도 조금은 혼란스럽다. 차라리 대놓고 솔직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서로 간에 오해 없을 텐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 적정선이 어느 정도 일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같은 상황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으니.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크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고 다음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면 결국 나만 각박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은 마음을 고백받았을 때 더 먼저 손 내밀어주지 못한 것에 후회가 된다면?!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방식이 예상치 못한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또다시 생각해보면 굳이 신경 쓸 거 없이 내 인생 내 할 일 열심히 하면서, 나와 잘 맞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를 알아볼 사람들은 알아볼 것이고 나를 무시할 사람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무슨 행동을 다르게 했던 무시할 것이다. 


진정한 멋진 삶이란 무엇일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Serenity Prayer 평온을 비는 기도

Karl Paul Reinhold Niebuhr 라인홀트 니버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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