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21
요즘 백신 부스터 샷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그리고 올초 백신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정말 정말 흥미롭게도 사람들의 반응이 굉장히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CDC 가이드라인을 무조건 따라서 접종 자격이 안된다고 생각하면 자신 포함 다른 사람들에게도 맞을 수 없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약국이나 병원에 직접 연락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 내가 인터넷에서 본 글의 내용이다. 미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사람들, 미국 시민권자나 이민자들이 백신을 우선으로 맞아야지 비자도 없이 관광객으로 오는 사람들이 백신을 맞는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고. 그리고 그 글을 포함 '백신 자격'에 대한 논란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등판한 병원 관계자. 미국 연방정부에서 거주자격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접종 가능하다고 했는데 왜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끼리 이런 언쟁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는다면 그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 이익이라고.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ㅠ 부스터도 현재는 high risk에 있는 사람들과 65+ 연령대만이 대상이다. 그런데 사실 약국에 전화해서 부스터 맞고 싶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그냥 가서 맞으면 된다. 맞고 싶은 사람 맞을 수 있는 사람은 맞으면 된다. 그런데 아직도 인터넷이나 SNS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내 경험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한국인 사이에서만 들린다.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백신 기부까지 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데, 왜 이렇게 전전긍긍할까?
이렇게 우리나라는 뭔가를 할 수 있는, 그게 아무리 기본적인 것이라도, '자격'이 필요하다. 구체적이고 반박 불가인 그런 자격이 없으면 인정도 못 받는 것 같다. 팬도 찐 팬이 되려면 뭐뭐 정해진 활동을 해야 하고, 내가 아무리 청소나 정리를 잘해도 민간 정리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30대 정도 되면 명품백 하나는 있어야 하고, 결혼이라도 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하고... 뭐든 '찐'이 되려면 갖춰야 하는 게 많아 보인다.
이렇게 나를 증명해야 할 자격이 많아지는 이유는 그만큼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어떤 특성이 특별하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으면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라 평범한 것이니까. 그래서 취업할 때도 3종 스펙이 원래 고스펙이었는데 너도나도 3종 정도는 따니까 갑자기 5종으로 늘고 7종에 9종에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런 자격 경쟁은 한국이 아직은 비교적 닫힌 사회이기에 가능해 보인다. 정해진 인구 내에서 한국인끼리 경쟁하면 경쟁자가 분명하니까. 그리고 대기업 공기업 등은 한정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원하는 게 같으니까. 그 안에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만약 우리나라가 조금 더 개방되어있어서 대기업 공기업에도 외국인이 한국인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채용될 기회가 주어지거나 한국인도 해외 취업 등이 쉬워진다면, 불필요한 스펙 쌓기에 경쟁하기보다 각 직종별로 맞춤형 개인 고유의 특별한 경험이 더욱 빛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누구나 다 특별하다.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꿈을 꾸고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특별하고 싶지만 그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가 있을 수도 있다. 다른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 특별함이나 다양성보다는 단결과 협동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더 효율적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우리나라는 겸손이 미덕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게 어쩌면 자격을 증명하는 데 익숙한 한국인의 눈에는 정말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궁극적인 자존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내가 이만큼 할 수 있다는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
나는 왜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왜 자격증이 있어야 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왜 자기 홍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왜 칭찬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에게조차 그 정도의 자격을 주지 못하는 걸까?
직장을 다닌다고 하면 커리어를 쌓는 여성이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집단에서는 엄마들 모임에 명함 돌리는 게 눈살 찌푸리는 일일 수 있다고 한다. 남편 벌이가 시원찮아서 여자까지 일해야 한다고 불쌍하다고 낮춰 생각할 수도 있다고;; 티비에 소개된 일화인데 직업이 한의사인 여자분이 자녀 학부모 모임에서 명함을 나눠줘서 아이가 왕따 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그 모임의 리더 격인 학부모의 가족과 부모님, 시부모님을 한의원에 초대해서 풀서비스(?) 해주어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줬다는...
또 다른 일화는 결혼한 새신랑이 결혼해서 좋다고 행복하다고 아내에게 사랑받는다는 표현을 아내 때문에 숨 막힌다거나 이런 거 저런 거 해서 귀찮다는 식으로 돌려(?) 말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대접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과시하려는 방법이 그렇다는 것인데... 결혼에서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사랑받는다고 얘기하는 것이 자랑으로 들릴 수 있으니까 듣는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얘기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듣는 사람들은 그냥 자신의 자격지심에 열등감 때문에 그렇게 꼬아서 듣는 거지, 그런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을 돌봐주기 위해 나의 행복을 왜곡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행복하다는데 팔불출이라고 또는 고작 그거 가지고 만족이 되냐고 비꼴 수도 있지만, 그 비꼬고 험담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인생에서 불만족하는 부분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나는 그런 상황에서 자꾸 내 생각을 방어해야 한다고 느껴졌었다. 나는 그게 아닌데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하지? 하지만 이제 와서 깨달은 점이 있다. 상대는 그렇게 듣기로 선택하고 그렇게 말하기로 선택하였으므로 내가 어떻게 말하든 내가 어떻게 대처하든 내가 어떻게 고쳐서 또는 바꿔서 행동하든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이게 그동안 내가 뭘 잘못했을까 뭘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고민을 대폭 해소해준다.
나는 항상 진실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앞과 뒤가 같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최선을 다해서. 그렇기에 상대도 나에게 진실되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믿음일 뿐. 나는 왜 사람이 진실해야 한다고만 생각할까? 사실 그건 그냥 근거 없는 믿음이다. 진실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타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일 수도 있을 텐데. 그리고 그 방법이 나는 진실한 태도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은 정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나도 왔다 갔다 한다. 나도 내가 특별한 존재였으면 했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되지만 알면 알수록 내가 평범해지는 것 같다. 특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고민들, 나는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어서 해탈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너무나도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이미 이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깨달음을 얻으신 분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그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정말 대단하고 존경심이 든다는 점. 결국 내 깨달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하고 쭈구리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갈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은 타인과는 상관없이 나에게는 굉장한 경험이었다. 끝.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된다. 괜히 남과 비교하고 나를 위축시킬 필요가 없다 그분도 굉장한 경험을 하셨구나. 대단하다. 끝. 여기까지만.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누군가의 특별함이 나의 특별함을 퇴색시키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빛나고 그분은 그 분대로 빛난다.
나는 아직도 배울 게 많다. 내가 남편을 만나 고민했던 수많은 생각들이 이미 옛날부터 수많은 석학들이 연구했고 학문으로도 정립했고 의사 선생님들께서 진단 내렸었다고 해서, 내가 한 고민들이 의미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혼자 고민해서 그 결과로 갔으면 나 좀 대단한 건가? 내가 만약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제대로 된 상담을 초기에 받았더라면 더 빨리 깨우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렇다면 그 책도 나오지 않았겠지? 일단 지금 상황은 이러니 과거에 연연하는 것도 의미 없다. 그런데 ㅠㅠ 괜히 까불면서 책까지 냈나 싶기도 하고ㅠㅠ 갈팡질팡이다.
남편이 한 말 중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는 말이 자꾸 맴돈다.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에게 기능과 효용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강점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의 가치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 존재 자체로도 소중하게 여겨줄 줄 아는 사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가치가 사라져도, 내가 지닌 외적 효용성과 값어치가 사라진다 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해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사랑해줄 그런 사람. 남편이 옛날에 나에게 했던 그 말의 의미를 천천히 깨닫는다.
누구나 다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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