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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Nov 07. 2021

직장에 대한 망상

11/6/21

오랜만에 쉬는 날, 아니다. 사실 쉬는 건 맨날 쉬는데 ㅋㅋㅋ 오랜만에 집에 있는 날, 이곳에서의 일상을 돌아봤다. 요새 이리저리 나다니느라 깔끔 병인 내가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다시 한번 나의 집을 돌보며 느낀 점. 중심을 잡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이곳에서 내 삶의 본거지. 우리의 작은 집. 내가 매일 돌아오고 잠드는 곳.


그리고 내가 평일에 매일 출근하는 직장. 나는 이 직장에 합격한 게 정말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옛날에는 몰랐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지난 몇 년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쳐준 건 남편도 아닌 바로 나의 직장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도 물론 처음에는 싫은 점도 많았다. 그런데 다니면 다닐수록 장점이 더 많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코로나라는 위기 때문에 직장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금은 우리 회사에 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감사하다. 




내가 일하면서 배운 점 1. 안정감의 중요성


어쩌면 이게 정말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지켜지지 않는 곳이 정말 많다. 일단 우리 회사는 잘릴 걱정 없고 정년도 없어 내가 선택하는 은퇴시기까지 고용이 안전하다. 법으로 차별이 금지되어 있어 인종차별 등에서 안전하다. 회사 건물에 경비와 경찰이 곳곳에 있어 위협에서도 안전하다. 악성 민원에 직접적으로 대처할 의무가 없고 직원들의 권리를 제대로 지켜주니 정신적으로도 안전하다. 코로나가 심했을 때에는 재택근무를, 이후에는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일처리 방식을 조정하고 내부 규정에도 시기별로 맞춘 변화를 주어 신체적으로도 안전하게 느낀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니 심리적으로도 안정적이다.


안정된 상태에서 일하니까 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내가 실수하면 어떡하지 비난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전전긍긍하는 상태에서는 사실 안 할 실수도 하게 된다. 내가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면 민원 전화를 받을 때에도 친절한 목소리로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민원인도 대부분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그런 상태라면 공감도 더 잘할 수 있고 안 되는 것도 최대한 도와주고 싶다. 즉, 회사가 직원을 제대로 대한다면 직원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엄청난 선순환이 발생한다.




내가 일하면서 배운 점 2. 두 번째 기회의 중요성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알면서도 실수할 수 있고 의도하지 않아도 실수할 수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을 것이고 재미로 그랬을 수도 있고. 이곳은 작은 실수는 충분히 반성하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예를 들어 경범죄로 재판을 받는 경우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고, 벌금형 봉사활동형 수업형 등을 통해 징역형을 면하게 해 준다. 그리고 사회에 돌아가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특정 기간이 지나면 범죄기록도 삭제될 가능성이 있다. 


흉악범이나 중범죄가 아닌 경우에도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낙인이 찍히는 사회에서는 어쩌면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과속이나 음주운전을 했거나 모르고 사유지를 침범했거나 의도치 않게 사유재산에 피해를 입혔다면 또는 의도는 좋았으나 사고나 폭행 등이 있었거나 또는 재미로 약물을 사용할수도 있고... 사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공포감에 범죄가 적어질 수도 있지만 사람 심리가 지나치게 압박받고 강제당하면 반발심이 생기게 마련인 것 같다. 실수를 했어도 용서받을 자격이 있고 체포 기록이 있어도 재판받은 형량을 채웠다면 다시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일 수도 있다. 물론 충분한 반성이 전제되고 같은 범죄를 지으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우리 사무실은 그런 사건들을 담당하는 부서라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중 사건이 종결되어 기록 삭제 신청을 한 사람들이 가끔씩 연락이 온다. 자신의 무범죄기록을 제출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진짜로 기록이 없는 게 맞는지 사건 종결 보고서를 받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재범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들 또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사람들이 두 번째 기회를 어쩌면 세 번째 기회도 받을 수 있도록 사회 체계가 잡혀 있다는 사실이, 한 번의 실수가 인생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내가 일하는 매일매일 증명되고 있다.




내가 일하면서 배운 점 3. 포용력의 중요성


나는 외국인인데도 불구하고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귀화를 하지 않은 순수 외국인이지만 채용과정에서는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큰 장점이다. 이곳은 나는 나, 내 개인의 능력과 실력을 평가한다. 나의 출신이나 인종, 성별, 배경을 보기보다 내가 얼마나 직업적인 윤리를 갖고 일할 수 있는지를 봐준다. 내 국적은 국적인 거고, 내 직업은 직업인 거고. 물론 국가안보가 필요한 곳에서는 미국 시민권자만이 지원할 수 있은 직종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그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다. 알쓸신잡에서도 설명된 게이지수. 어떤 지역의 번창 혹은 몰락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로 한 도시에 과학기술, 재능, 그리고 포용성이 높은 곳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제일 마지막까지 차별을 받는 소수집단을 포용하는 곳. 다양성을 배척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시선과 평가에 얽히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만큼 각자의 장단점들이 있을 것이다. 포용력이 높은 곳은 그들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단점이나 약점에 집중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지만 시각을 달리하여 강점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빨리빨리 하는 사람은 디테일이 부족하지만 추진력이 있을 수도 있고, 느릿느릿하는 사람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꼼꼼한 작업을 할 수도 있고.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며 각자 최선을 다해 장점만을 모아 시너지를 내는 그런 공간일 것이다. 




내가 일하면서 배운 점 4. 시간적 여유의 중요성


빨리빨리의 민족으로 신속 정확만이 정답인 줄 알았던 나에게 이 느릿느릿하고 여유로운 업무환경은 사실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이 직장을 다닌 지 몇 연차가 된 지금, 시간이 줄 수 있는 것이 정말 정말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단순 업무는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누군가가 어떤 상황을 인지하고 반성하는데 필요한 시간, 누군가가 자신의 의지를 증명하는 데 걸리는 시간, 누군가가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 시간이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충분히 시간을 가지면 사람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고 그렇게 바뀐 사람들이 같은 사건도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가 만약 한국 회사를 다녔더라면, 현지인과의 교류가 전혀 없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졌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미국인과 미국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냥 남편이 어메뤼칸이라서 이상하다 하고 말았을 수도 있는데, 내가 2년 넘게 매일매일 상대하는 사람들도 남편이랑 똑같아서 아니 대체 왜?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께서 잠깐 방문하셨던 적이 있는데 그 때 들은 뒷 이야기... 그 분께서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셨을 때 만났던 고객님(?)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셨고 지금 행복하게 아주 잘 살고 계신다고 한다. 항상 유쾌하고 잘 웃으시고 옛날 사무실 동료들까지 잘 챙기시는 분인데 이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욱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범죄 경력, 체표 경력 등등 모든 것을 알고도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마음이 대자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것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믿음으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된 분들도 분명 있다. 


안정감, 두 번째 기회, 용서, 포용력 등이 당연한 곳이 있다. 장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곳이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더 이해심이 넓은 사람으로 용서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꿔나갈 수 있다. 시야를 넓히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남편의 나라에 대해 더 잘 이해할수록 바르게 잘 큰 남편에게 고맙다. 예전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남편의 행동이, 오히려 내가 법을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덕분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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