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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Nov 17. 2021

어른에 대한 망상

11/15/21

오늘 쓰는 어제 일기. 또 밀렸지만 그래도 쓴다.


난 짱구인가.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의 하루. 근데 뭔가 계속 한 게 없는 것 같다. ㅜㅜ 매일매일 출근하고 이것저것 하는데 왜 그렇지 생각해보니, 내가 일상에 의의를 두지 않고 뭔가 계속 특별한 것 재밌는 것 다른 의미 있는 것들을 쫓고 있었다. 그러니 매일 같은 하루하루가 의미가 없게 느껴진 것 같다.


다시 일상에 의미를 찾자.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 입을 옷을 잘 고르고,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일하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보낼 줄 알아야 하고, 퇴근길에 공원까지 걸어가서 강아지들 모임 하는 것도 보자. 하루에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안부도 물어보고, 저녁에 운동도! 하면 좋은데 그건 남편 바쁜 일 끝날 때까지 내가 저녁식사 담당이라 일단 상황 봐서 ㅎㅎ


내가 만약 포지션이 주부라면 집안일에 내조만 잘하면 되는 거고, 학생이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고, 직장인이면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면 되는 거고, 부모면 아기만 잘 키우면 되는 거고, 작가면 글만 잘 쓰면 되는 건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방황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해외에 거주하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한국인 조심하라"는 말. 사실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객관적인 평가는 어렵겠지만, 한국인 조심하라는 말이 분명 한국인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사기꾼은 나라 국적 인종 언어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에든 있으니까. 사실 비율로 보자면 외국인 사기꾼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단지 내가 당하지 않았을 뿐이지.


한국인 조심하라는 말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을 너무 그리워해서 한국 사람들에게 마음과 정을 쉽게 줘버리니 나를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한국인 믿지 말라는 말은 사실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쉽게 신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었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각자 개인사가 있고 의견이나 감정이 다르니 존중해야 한다는 이 단순한 진리이다.


내가 한국인에게 더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은 사실 그 사람이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만큼 나를 생각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하는 정이 있을 우리의 관계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설마 한국인이, 한국인인데 어떻게! 이런 마음이 들면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들이 더 크게 나에게 다가오니까. 




어제 대화를 하면서 또 잡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우리 나이쯤 되면 어른이 아닌가. 나는 어른에 대한 환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어른이라면 이렇겠지? 막연하게 멋있어 보이고 능력 있어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어른이라면 생각도 깊고 성숙한 인격체가 될 수 있겠지? 어른이라면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고 그에 따르는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겠지?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 숫자만큼 내가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고, 그 기회를 잡은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는 그런 내용의 글을 보았다. 인터넷에서 본 글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 데 아무튼 요새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얼마나 성숙했을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을까? 내가 얼마나 그 기회를 잡아서 성장했을까? 내가 모르고 놓쳐버린 기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내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싶다. 성선설 성악설 까지는 아디더라도 그냥 굳이 그렇게 나쁘게 생각할 건 없지 않나 싶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나 보다. 어떤 사람은 무엇을 볼 때, 그게 사람이든 상황이든, 장점을 보는 사람 긍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아예 별 신경을 안 쓰는 사람도 있고 신경이 쓰여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단점부터 보이는 사람도 있고, 약점만을 잡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고, 부정적인 면에만 집착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근데 나는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도 못했다. 마치 내가 남편이 이럴 것이라 생각도 못했던 것처럼! ㅋㅋㅋ 와 진짜 세상에는 별 사람이 다 있고 실제로 만나도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없구나 첫인상이 아무리 좋아도 그게 다가 아니구나 하는 이 엄청난 깨달음. 몇 년을 연애하고 결혼한 남편 속도 나는 모르는데 남이라고 내가 얼마나 잘 알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공감하고 인정하고 존중해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아무튼 나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그냥 별생각 없다가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려고 했더라도 그냥 나는 설마 사람이라면 그런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할까? 굳이? 무엇을 위해서? 하는 생각에 그 사람이 원하는 반응을 안 했었던 것 같다. 상대가 어떤 의도를 주더라도 그냥 내가 상처 안 받기로 선택한 것은 알고 그랬던 모르고 그랬던 어쨌든 그 당시에 내가 견딜 수 있는 엄청난 힘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며 엄청 많았다는 사실에 충격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걸 내가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는 게 더 충격이긴 하지만... 이제 한국사람들과 대화도 못하는 건가 ㅠㅠ 일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속뜻이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던데 작년과 올해 내가 겪은 바로는 한국어도 비슷한 거 같다.ㅠㅠ


남과 비교하고 남을 깎아내리고 남을 조종 통제하는 것 자체가 사실 무슨 소용일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 수가 있을까? 그런다고 나에게 잠깐의 위안이나 우월감을 줄까? 근데 어차피 남이 뭘 하든 내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왜 굳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발언을 하는 것과 간극이 참 클 텐데. 나는 누가 힘든일 있으면 그 사람이 얘기해줄때까지 기다리는 편인데 그걸 일부러 들추는 사람이 잇다는 걸 내가 상상을 못햇던 것. 그래, 내가 몰랐다.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이 사고를 내지 않은 건 자신이 베스트 드라이버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운전자들이 방어운전을 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었다. 사회는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배려로 유지되어 간다. 서로 난폭해져서 서로 물어뜯으면 진흙탕 개싸움 밖에 안되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누구에게든 단점이 있고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걸 강점으로 만들고 장점으로 활용하는 것이 진정한 능력일 것이다. 각자 살고 싶은 삶을 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서로를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하면 참 좋을 텐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맞춰간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상대에게 맞춰 자신을 희생하거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행동에 대한 양면을 모두 인정하는 것. 인정만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 닥치면 눈앞에 보이는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장단점이 있듯이 그에게도 단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준다면 나의 시야가 달라진다. 그에게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이게 진짜 말로는 쉽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와 실천으로 옮기기가 어렵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생 나는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안다. 그는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분명 그만의 이유가 있으며 그 행동의 결과를 안다. 내가 모를 수도 있고, 그에게도 장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더욱 우아하고 품위 있게 반응할 수 있다. 진흙탕 개싸움으로 같이 치닫자고 아무리 미끼를 던지고 초대장을 보내도, 내가 거절할 수 있다.




사람이 구석에 몰리고 조급해지고 당황하면 자신이 원하지 않은 모습이 나온다. 물론 그런 상황에 자신을 처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를 분리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사실 원치 않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은 언제 어디서 그럴지 아무도 모르니까. 오죽하면 그럴까 이해는 간다. 정말 어찌할 수 없어 답답함에 간절히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품고 갈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본받고 싶다.


어른이라면 분별력 있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은 사실 나의 기대였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그런 기대를 넘어서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사랑으로, 배려심으로, 공감능력으로, 강한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주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속단하지 않고 편견 갖지 않고, 정말 진심을 다해 상대를 대하는 사람들! 정말 멋진 어른들. 진정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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