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16
매주 일요일 오전, 나는 어린이 센터에 봉사활동을 간다. 예전에 하도 심심해서 유기견 봉사센터, 동물원, 그리고 어린이 센터에 봉사활동 지원했는데 그중 당일에 바로 연락 와서 갔던 어린이 센터. 이곳에서 일하는 게 신의 한 수였다. 가장 빠르게 연락 주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만약에 이 센터에서 일을 안 했으면 왠지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자녀계획을 진지하게 생각했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휴, 천만다행이다.
한국은 저출산 저출산 하는데, 미디어나 내 주위 한국인들 중에도 아기 낳은 사람이 꽤 있다. 아이를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둘째 셋째를 갖거나 계획 중인 사람도 많고. 그래서 사실 저출산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근데 사실 나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니 옛날 같았으면 애 셋은 낳았을 나이에 주변에 아이 하나 둘 있는 거면 저출산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옛날엔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
하지만 지금도 아이 키우기는 정말 힘든 것 같다. 부모 중 하나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도 힘들고 맞벌이라 아이를 맡기기도 힘들고 매일매일 휴일도 없이 아이를 키워내는 부모님들이 정말 정말 대단하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부모들도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나 힘든데, 이미 태어나 있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고, 제대로 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올바르게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간극이 내 눈에 점점 더 뚜렷하게 보인다.
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만약 아이가 있다면 이럴 것이라는 간접체험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던지고 뛰어다니고 방치돼서 노는 아이에게는 아이가 아닌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부모가 있다. 그 혼돈 속에서도 집중해서 노는 아이는 아이와 함께 계속 대화하고 소통하는 부모가 곁에 있다. 아빠와 함께 와서 아빠가 놀고 있는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못해 답답해하고, 아이가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본전을 뽑겠다고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부모는 아이가 인형 같아 보여 안쓰럽다. 억압받고 놀이에서도 정답을 강요당한다면 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하지 말란 것이 분명한 부모는 아이를 방치하는 것보다 낫긴 하지만... 아이가 재밌게 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안전하게 놀려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과 그 미세한 부모의 차이에 따라 아이들의 행동이 결정된다. 조용히 훈육하는 부모도 있고 아이를 통제 못하고 끌려다니는 부모도 있고. 거의 정글이다. ㅋㅋㅋ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아이들을 보며 너무너무 예쁘다고 느끼지만, 매번 봉사시간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나는 아이가 없음에 안도한다... ㅜㅜ 나는 고작 일주일에 하루 몇 시간만 보지만 그 아이들과 매일매일 살라면 절대 못하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예쁘게 웃고 귀여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들은 이런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어 부럽다는 생각.
만약에 내가 유기견센터에서 봉사 활동했다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입양했을 것이다. 아이든 동물이든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나에게 삶의 원동력을 주는 존재가 되어줄 것 같다. 물론 한 생명으로서 존재 자체로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하고, 그에 더해서 나에게도 큰 안식을 줄 것 같다. 뭔가 그런 환상이... 하지만 지금은 내가 아무 준비도 안돼 있다. ㅠㅠ
센터에서 봉사활동하면서 정말 다양한 부모를 본다. 그중에서도 정말 기억에 남는 부모의 유형들이 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며, 항상 질문하고,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대화로 풀어가는 부모들.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아이들이 부모가 뒤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면 더욱 집중해서 잘 논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알고, 부모에게 말로 표현한다. 말로 표현해도 부모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대화가 될 것이라는 믿음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들은 아무리 사고를 쳐도 부모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부모가 제지하지도 않아 그게 허용된다고 습득하는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소리 지르고 떼를 쓴다.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태어나서 보고 자란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로 갈등을 해결해간 경험이 없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교류가 없어서 함께 놀이하는 법을 몰라 친구를 때리고 장난감을 빼앗고 욕심을 부린다. 가만 보면 아이들은 진짜 몰라서 그런다. 그 짧았던 인생에 소리 지르고 떼를 써야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배운 게 참 안타깝다.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우리가 성인이 된이상 우리는 스스로 선택을 해야지 언제까지 부모탓만 할 수는 없다. 물론 유아기의 양육방식이 지금 나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겠지만, 성인이 된 이상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극단적인 예지만 소년병들도 성인이 되었을 때 탈출하지 않으면 전쟁범으로 분류된다. 일평생 살아온 곳이 전쟁터인데 그곳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란 상상도 못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부모세대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고 더 좋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성인이면 선택할 수 있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도 있다.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고 자신의 선택도 중요하다.
아무튼 매번 갈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고 오게 된다. 나는 아이가 없어서 부모의 마음, 아이의 마음을 사실 잘 알지는 못하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부모로서의 자신의 마음과 자식으로서의 마음, 자신의 부모에 대한 마음 등등 정말 많은 감정이 들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험이 쌓이면서 배우는 교훈이나 생각들이 참 많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시부모님을 여전히 모시는 사람들의 애증의 감정을 모르지만 자식을 키워본 부모로서 자식과 부모의 마음 양 쪽을 다 이해하며 그 사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않을까.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이나 아이가 아플 때 느끼는 감정들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인생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그 사람이 있는 거겠지.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다. 영웅들이다.
이 날은 구름이 많이 껴 흐릿하고 비 소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든 생각은 와 공원이나 바다로 못 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센터로 오겠네 오늘 사람 넘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흐린 날에도 아이들이 놀 실내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 모든 것이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있는 건데 그리고 나도 그래서 봉사활동하는 건데. 나도 모르게 눈앞에 닥칠 힘든 시간들이 먼저 다가왔다. 내가 원해서 봉사활동하는 건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지 ㅠㅠ 아무튼 이 날은 정말 역대급으로 정신없었고, 내가 정신없었던 만큼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니 나도 뿌듯했다.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어린이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방송에서 말해서 그 부모의 양육방식이 조명을 받았었다.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아이가 아빠에게 나도 태어나서 좋아 행복해라는 말을 해서 감동받는 장면이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https://link.inpock.co.kr:443/loveyour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