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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30. 2021

1. 합법인 듯 불법 아닌 조건부 체류자

1) 천조국에서도 존재하는 헬 2) 콤보카드를 기다리며

우여곡절 끝에 약혼자 비자를 받아서 미국으로 입국했다. 그리고 나는 공식적으로 유부녀 타이틀과 이민자 신분을 얻었다. 나의 이야기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아직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 


누군가에게는 으이구, 미국까지 가서 그러고 사냐 하면서 한심할 수도 있는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와, 나도 이민 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하면서 부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 우리 엄마에게는 우리 딸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주는 이야기. 


그렇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 법적으로도 나는 현재 시민권자 남편의 아내로만 조건부로 존재하는 지금, 나를 찾아가고 싶어서 쓰는 이야기이다. 남편의 도움 없이,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닌, 남편의 나라에서 내 힘으로 이룩한 것들을 내가 기억하고 내가 읽고 싶어서 쓰는 나의 이야기이다. 



1) 천조국에서도 존재하는 헬


미국은 정말 나라도 너무 크고 인종도 국적도 종교도 정치색도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 그렇기에 정상이라던지 상식이라던지 사회적 통념이라던지 하는 정서적인 기준이 너무나도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선택, 개인의 자유가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법으로 정해진 것이라도 지키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 법도 주마다 다르고 관할권과 사법권마다 다르고 범죄의 분류나 처벌의 기준도 전부 다르니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게다가 세상 일이라는 게 합법과 불법으로 양분화되지는 않으니까,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 정할 길이 없다.


내가 한국에서 거주할 때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안타깝고 마음 아픈 사건들도 정말 많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상상도 못 할 판결이 나올 때도 잇기도 하다. 나도 법원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전국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건이 지금도 재판이 진행되고 판결이 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도 정말 큰일이 아닌 이상 아주 드물고, 범죄자에게 800년 형이 내려졌다거나,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준 그런 정의로운 판결들, 심지어 한국에까지 알려질 만한 사건들은 이 커다란 대륙의 50개 주에서 수백만 건 중 단 한두 개일 뿐이다. 


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미국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일들은 이게 21세기인 현재 시점에서 일어난 일들인가? 싶을 정도로 심각한 일들도 많다. 하지만 결국 20세기든 21세기든 숫자만 바뀌었을 뿐이지 어차피 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결국엔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지 않던가.


아메리칸 드림은 옛날 옛적 이야기이고 맨몸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공정한 기회의 제공, 무계급 사회와 평등한 대우, 자유로운 개인이 만드는 이상적인 사회... 마치 북한의 핵무기 해체와 그에 따른 평화로운 남북통일과 경제번영이나 탈레반이 비폭력 저항과 종교적 평화주의를 추구하는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만큼 비현실적이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만큼 이민자로서의 삶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외로움과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 인종차별, 언어문제 등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이민의 장벽 자체가 높아져서 비자 승인이나 영주권 시민권 취득 등이 더욱 어려워진 실정이다. 어떻게 보면 사실상 계급으로 사람이 명확하게 나뉜다. 신분이 특권이 되는 세상인 것 같다. 미국 시민권자라며 대놓고 지참금을 요구하며 매매혼을 조장하는 경우도 많고, 영주권이나 취업비자를 스폰해주니 정당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신분문제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문제도 크다. 특정 인종을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고 묻지마 폭행 같은 혐오 범죄에 매일 노출되어 있으면, 그에 따르는 정신적 압박감이나 위협감에 하루하루의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민자들에게 보이는 게토 정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일평생 투쟁해야 해서, 살아 남기 위해 또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 남들보다 두배 세배 노력해야 하고, 그만큼 지금 이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해낸 성공한 분들의 노력이 더욱 대단해 보인다.


두려움이 전제된 시작이니 출발선부터 다르다. 그리고 나는 어쩌다가 그 사회에서 이민자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2) 콤보카드를 기다리며


약혼자(K1) 비자로 입국하는 경우 입국일로부터 90일 동안 비자가 유효하다. 그 90일 이내에 혼인신고를 하고, 이민국에 신분 조정을 신청하여야 한다. 신분 조정 신청이 접수되었다는, 즉 영주권이 신청되었다는, 안내문을 받으면 그 안내문이 내 공식 신분이다. 그리고 영주권을 신청할 때 취업허가와 여행허가를 함께 신청해서 그린카드(영주권)를 받기 전 콤보카드(취업, 여행 허가)를 받으면 취직도 할 수 있고 해외로 여행도 할 수 있다.


약혼자 비자나 배우자 비자는 처음 영주권을 신청할 때 조건부로 2년짜리 임시 영주권을 받고, 2년 후에 10년짜리 영구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진실된 결혼생활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즉 영주권만 받고 도망가려고 악용하는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건부로 2년을 받는데 사실 이게 2년이 아니다. 그 임시 영주권이라도 받는데만 1년~1년 반 정도가 소요되고, 임시 영주권의 조건 해제를 승인받는 데 2~3년이 걸리니, 최소 5년은 신분문제가 지속된다.  


아무튼 내가 이민 와서 가장 힘들고 불안하게 느껴졌던 시기는 바로 합법도 불법도 아닌 거주자격을 심사 중인 신분일 때였다. 나의 비자는 단수비자, 즉 입국 1회 용 비자였기 때문에 미국 밖으로 나가면 다시 이전의 같은 신분으로 들어올 수 없어서 사실상 어디도 갈 수 없었다. 설사 한국에 무슨 일이 터져도 가보기 어려운 상황이며, 여행허가를 긴급으로 신청해도 최소 3일이 걸리니, 만약 큰일이라도 있었다면 정말 답답한 상황일 것이다.


나는 콤보카드가 나올 때까지 할 일이 없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심심하고 할 것도 없고 친구도 없고 딱 한 명 아는 사람인 남편은 일하느라 바쁘니까, 내가 망망대해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외로웠다. 백수로 지내면서 돈만 쓰고 내가 왜 여기서 뭐하나 싶은 허무함도 있었다.


그나마 나는 간간히 한국에서 소개받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영/영한 번역으로 책 두 권을 작업했고 보수도 받았다. 열정 페이였어도 뭔가 내가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고 내일도 할 일이 있다는 게 좋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면서 작업하니 심심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소리 낸 적이 없었던 날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 일이라도 있어서 그 길고 긴 반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책 작업이 끝나고는 봉사활동을 나갔다. 내가 무상으로 일해드리고 싶고 나는 정말 열심히 일 할 자신이 있었는데 봉사활동은 구하기도 정말 어려웠다. 지역사회에 활발히 활동하거나 평판이 좋고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당연히 선호할 테니, 대부분이 지역 학교에 소속된 고등학생이거나 은퇴하고 소일거리 하고 싶은 어르신들이 이미 많은 일들을 도와주고 계셨다. 


그래도 나는 계속 지원서를 넣었다. 노동=돈/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내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무급으로 봉사활동을 신청하는 이유를 적었다. 그래도 생판 모르는 외지인이 일시켜달라하면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대부분 성사되지 않았고 어느 초등학교에서 통번역이 필요한 경우 가끔 가고 나머지 날들은 한량처럼 놀았다.


그래도 내가 계속 지원서를 보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내가 돈을 안 받고 일한다고 해도 이렇게 일자리를 찾기가 힘든데, 내가 돈을 받고 일하고 싶으면 정말 정말 구직이 힘들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봉사활동이며 이벤트며 이리저리 찾아다녔던 날들이 나의 취업에 실제 도움을 주었다.


학력은 국적무관 인 것 같고, 합격 시 최종학력 성적표 원본 요청했다. 경력은 정확한 평가기준은 모르겠지만, 서류의 경우 한국/해외에서 일했어도 영어로 업무를 하는 환경이었다면 인정받은 것 같고, 면접의 경우 미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경력을 선호하는 듯 하다.


내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곳에서는 reference가 정말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객관적인 수치로 자격증이나 어학점수 같은 나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곳에서는 그것보다도 더 가치를 두는 것이 추천인이다. 어떻게 보면 인맥이 정말 중요한 사회인 것 같다. 내가 미국 사회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실제 어디서 어떤 일을 했다는 경험적 사례를 원하는 것 같다. 


내가 면접을 보러 다닐 때, 회사에서는 경력증명서 보다도 그들이 실제로 연락해서 확인할 수 있는 이전 회사의 연락처를 더 원했다. 그리고 내가 본국에서 뭘 했는지보다 이 곳에서 잘 할 수 있는지를 더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부서장 연락처 등 상세 정보를 적어 낸 2년 동안 일했던 한국 사무실 보다도 미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 갔던 총 10번도 안 갔던 봉사활동지와, 한두 달 다녔던 파트타임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셨었다. 


그렇기에 만약 취업이 목적이라면, 그리고 지금 바로 취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지에서 하는 봉사활동이나 NGO단체, 지역단체 등에서 무급으로라도 활동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영어점수보다도 내가 서툰 영어로라도 어떤 일을 해낸다는 사실을 더 좋게 보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사람의 '말'보다는 객관적인 증명서나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실전 업무능력이나 위기상황 대처법을 NCS나 SSAT 같은 시험으로 보기도 하지만 글로 공부하는 것과 실제상황에서 우러나오는 경험과는 다르기도 하니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토플 토익 점수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낯가리는 성격이라 처음 본 사람과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우면 스몰톡도 하고 친절하게 서비스해야 하는 업무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지적으로 우수하고 다양한 능력이 많은 검증된 직원을 뽑는 것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낀 점은 취업은, 특히 내가 원하는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은, 어느 곳이든 어렵다. 그냥 내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들 입맛에 평가기준에 맞춰서 노오오오오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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