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탈의 나날들 2) 외노자로 레벨 업하기 위한 퀘스트
나는 전공자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고 관련 경험도 없지만 법원 사무직으로 일한다. 그리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왜 법원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는지, 왜 전공 쪽으로 일을 안 하는지, 어떻게 하면 법 관련 직종으로 갈 수 있는지 등등. 나의 대답은 굉장히 간단하다. 내가 법원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는 나를 합격시켜준 곳이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ㅜㅜ)
나는 취업허가를 받자마자 파트타임이며 풀타임이며 구분 없이 이력서를 뿌렸다. 그중에서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합격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일하며 계속해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력서를 냈다.
나는 미국에서 직장을 다닌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몇 년을 일했어도 신입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진짜 최소한의 기준으로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의 모습을 상상했다.
0. 월급 제 때 지급되는 회사
1. 실내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에어컨이나 난방을 해주면 더 좋고.
2. 전기가 들어오는 사무실이었으면 좋겠다. 핸드폰 충전도 가능하면 더 좋고.
3. 내 자리 나 사물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4. 잘 관리된 건물에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5.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가능한 거리여야 한다.
그리고 탕비실이나 냉장고, 전자렌지 등이 있거나, 사무기기 및 사무용품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프린터, 스캐너, 전화기 등등) 회사에서 제공해주고, 정시퇴근 가능하고 회식이나 단체 활동은 자율참여가 가능한 회사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원한 자리의 직종과 업무 등을 혹시라도 연락이 온다면 바로 찾을 수 있도록 표로 만들어 정리했다.
position title, employer, location, closing date, start date, job posting, salary, employment status, supervisor, contact info, duties and responsibilities, minimum qualifications, desirable qualification, how to apply, submission date, result
이력서 준비는 지원하는 분야에 따라 종류를 여러 개 만들어놓고 강조하는 부분이나 순서를 조금씩 변형해서 작성하였다.. 예를 들어
1 사무직 : 사무직 관련 경력 강조, 담당했던 업무와 성과, 조직 내에서의 위치나 역할, 상사 및 고객의 평가, 위기대처능력 등등
2 교육직 : 가르쳤던 수업, 학생의 나이, 수업의 난이도, 시험문제, 평가방식, 교육과정 개발, 학생들의 발전 정도, 학생/학부모의 수업에 대한 만족도 및 호응도, 문제 학생/상황 해결 능력 등등
3 교육행정직 : 학기별/학년도별 학교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및 시기별 업무, 학생 개별 맞춤형 응대, 주도적 업무처리방식, 타 부서/외부기관 협력 내용, 담당 프로젝트 소개 등등
4 관광/판매 계열 : 서비스업에 대한 이해, 아르바이트 경험, 친절한 자세에 대한 생각, 진상 손님 대처법 등등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의 이런 경험이 어떻게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인지, 지원하는 직급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떠한 도움이 될 것인지도 포함하였다. 여러 질문에 대비한 다양한 답변을 준비해놓고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하면 좋다.
1 자기소개 및 나 개인의 장단점 : 성격의 유연성, 사교성, 효율성, 신속 정확, 꼼꼼한 성격 등등
2 한국인, 외국인으로서의 장점 : 문화다양성, 새로운 시각, 외부인으로서 필요한 부분을 알아채는 능력, 고객에게 공감하는 능력 등
3 면접 준비 공고에 올라온 업무에 대한 설명 +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여기에 맞춘 답변
4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이상, 포부, 5년 후 나의 모습 등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해도 사실 면접의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 내 경험상으로는 한국은 공채시기에 기한을 정해놓고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체망으로 사람을 촘촘히 거르고 걸러서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는 형식처럼 느껴졌다. 즉, 공명정대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라도 모든 사람들의 서류를 검토하고, 그중에 자격요건이 되는 사람들을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환경에서 시험도 보고 면접보고, 그 성적으로 줄 세우기 식으로 하는 것 같았다.
물론 여기도 그런 방식으로 채용이 진행되는 곳도 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전체 몇 월 며칠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집합해서 시험 보거나 면접 보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고 인사팀에서 개별적으로 스케줄을 잡아서 면접자의 시간도 배려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인터뷰를 잡는다면 예를 들어서 내가 1차 2차까지 갔는데 어느 순간 유력한 후보가 나타나면 그 사람이 임원면접 최종면접 등등 치고 올라갈 때 나는 3차 면접 연락이 갈 거예요 하고 나서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한다. 당연히 유력한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집중해서 채용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은 맞지만, 그 사람과 계약서를 사인하기 전까지는 나머지 사람들이 둥둥 떠있는 것이다.
그래서 합격소식도, 추가 면접 소식도, 탈락 소식도 없이 오매불망 기다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몇 월 며칠 3차 면접자 발표일 하면 그 날짜에 결과를 알고 다른 회사에 집중하던가 하는데, 초반에는 희망에 부풀었다가 두세 달 만에 다른 사람 채용했다는 안내를 받기도 했다 흑.
이곳은 한국보다 결과 통지를 매우 공식적으로 보낸다. 합격은 전화가 먼저 오고 나의 의사를 확인한 후 공식적인 오퍼를 편지로 송부한다. 탈락 소식도 우편으로 보낸다. 어느 소식이든 빨리 듣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우편으로 보내니 2~3일 더 기다렸다가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간간히 편지 오면 설레서 우체국 아저씨 오시자마자 내려가서 보는데 신나서 뜯어보면 탈락 통지다.
물론 지원해줘서 고맙지만 다른 사람이 채용되었다 하지만 다른 자리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잘 검토해보겠다 하는 아주아주 정중한 멘트지만, 그걸 우편으로 보낸다. 쐐기를 박는 듯이. 원래 관습이 우편 통지하는 것이겠지만 하도 좋은 소식을 못 받다 보면 유리멘탈이라 그렇게 느껴진다. 이력서 받고도 단 한마디 연락 없는 곳도 있는데 그래도 연락을 주면 감사하다. 그렇지만 이런 건 문자나 이메일로 줘도 되는데, 하도 탈락을 많이 해서 나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신입 자리에 지원했기 때문일 것 같다. 당연히 나도 미국에서 처음 취업하는 것이므로 큰 욕심 없이 지원했다. 지금 내가 일하는 직급은 학력은 고졸, 경력은 사무직 2년 정도 만을 요구하는 자리였고 어려운 시험이나 자격증을 특별히 요구하지 않았다.
당시 나의 생각은 내가 안 그래도 미국 회사문화도 잘 모르고 어리숙하게 있을 텐데 업무나 제대로 하면 다행이고 내가 너무 큰 일을 맡게 되면 부담감이 엄청날 것 같았다. 그래서 신입으로 입사하여 책임이 적은 위치에서 쉬운 일을 하며 미국의 직장문화나 업무방식 등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1 면접 후기
나는 전부 서류 광탈이라 면접 경험이 적긴 하지만, 면접에 내가 그 회사를 면접 본다 생각하고 편하게 대화하듯이 하면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면접은 인사과에서 이미 한 번 서류로 거른 후 보는 면접이고 각 부서에서 이 사람이 우리 사무실에 오면 어떻게 잘 일할 수 있을까를 면접에서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느껴졌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첫 번째 예시는 학력이나 경력 등을 볼 때 타이틀보다는 실무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민원인 상대 업무 중 벌금을 수납하는 부서에서 면접을 봤는데 사무직 경력보다는 혹시나 파트타임으로라도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캐시어나 텔러로 일한 적이 있는지 질문하셨고, 실제 업무 자체가 돈이 오가는 일이다 보니 정확한 계산 특히 암산도 가능해야 하고, 그쪽 경력이 있으면 업무에 적응하기 더욱 쉬울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인 업무 경력은 없지만 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꼼꼼한 성격이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많으니 최선을 다하겠다 뭐 이런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은데, 나의 당락이 이미 결정이 되었는지 면접이 산으로 가서 한국음식점 어디가 맛있냐 이런 시답잖은 얘기하고 온 적도 있다.
두 번째 예시는 나에게 했던 질문들 중 "만약 일이 갑자기 많아져서 네가 계획했던 대로 일처리가 안되고 슈퍼바이저가 너에게 급한 일을 준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만약 동료와 사이가 안 좋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만약 민원인이 이유 없이 화를 낸다면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 등등 실제 사례에 빚대어 나의 업무대처능력을 유추할 수 있는 질문을 받았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실제 이 사무실 분위기가 어떤지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도 있다. 간혹 가다 급한 업무도 있겠구나 팀 내에 불화도 있구나 민원인이 진상도 있구나.
세 번째 예시는 면접관에 맞춘 답변을 더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당연히 면접관도 사람이니 그렇겠지만, 내가 봤던 면접 중 한 곳은 면접관들이 나이가 지긋하시고 팀장, 부서장, 과장 급의 높은 분들이셨다. 여러 질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업무의 대부분이 서류 작업이고, 업무 특성상 대중에게 공개되는 문서들이 많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데, 어떻게 정확하게 작업할 수 있을지" 였고, 내가 답변으로 책 번역 및 영문 첨삭 일을 했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컴퓨터로 이렇게 저렇게 검색하고 첨삭하고 자동교정 등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는 식으로 설명했는데 별 감흥이 없으신 것 같길래, 마지막에는 원고를 프린트해서 빨간펜으로 수정하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확인하면 컴퓨터로는 안보이던 것들도 발견한다고 그랬더니 세 분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 해주셨다. 그분들께는 그 답안이 제일 공감이 가셨나 보다.
2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물론 내가 취업을 했다 해서 내가 했던 방법이 정답은 아니며 나보다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분명 굉장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국분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을 지" 이다. 여기서 좋은 직장이란 물론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대기업이나 번듯한 사업체, 사무직 환경, 높은 급여 등 한국에서 보기에 성공적인 직장인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화이트 칼라를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이민 오신 많은 분들도 다들 한국에서 전성기 한 번 없었던 사람들 없고 다들 잘 나가다가 미국 오니까 외국인 노동자 현실이라 받아들이기 힘드실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의 경력이 정말 뛰어나서 스카웃 되서 취업이민하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현실을 인정하고 눈을 낮출 필요도 있을 것 같다. 현지에서 아무 경력 없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큰 도박이니 멀쩡한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도 당연하니까. 조금은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차곡차곡 현지의 경력을 쌓아나간다면 내가 원하는 직장 내가 원하는 직급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다. 나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줄 직장을 찾기 어렵다면 비슷한 직종의 파트타임으로라도 내가 미국 사회에서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파트타임도 찾기 어렵다면 봉사활동이라도, 사회운동이라도, 단체 활동에서 총무라도 맡아서 내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낸다는 사실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민자로서 취업하기가 내국인보다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업무중심 차별 없는 채용 등을 외쳐도 한국과 이곳의 실정이 다르고 업무 하는 방법이나 사고방식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한 일들도 이곳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한국인에게는 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돼서 또는 언어적 차이 때문에 생긴 오해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일들도 참 많다. 그렇기에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의 차이 등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사실 을의 입장인 취준생의 경우 현지에 대한 공부가 조금은 필요할 것이다.
내가 그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질문은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하는지" 였다. 사실 그 나라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라면 그 나라 언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하다못해 중국에서 스팸전화를 돌리더라도 한국어 잘하는 조선족을 채용하는데.
그런데 유의할 점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는 것. 토플 만점 토익 만점 다 무의미하다. 내가 회사에 강조할 점은 나는 영어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인 것. 업무에 맞게, 전문용어를 사용할 줄 알고, 동료들과 의사소통이 되고, 고객들을 응대할 수 있을 정도로 등등 만 하면 된다.
하와이는 이민자가 많아서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것 같은데, 지역마다, 회사마다, 업무마다 당연히 차이가 많을 것이다. 각 분야마다 전공지식 + 실무능력 + 영어이지 영어가 다는 아니라는 점. 그리고 지금 내가 일하는 곳도 나도 영어가 완벽히 원어민도 아니고 다른 직원들도 이민자 출신도 많다. 이곳에서는 얼마나 민원 응대를 잘하는지 얼마나 팀원들과 잘 어울리고 얼마나 업무를 정확하게 수행하는지 가 우선이지 원어민이라고 뽑아놨는데 민원 응대 안 하고 침묵 수행한다던지, 민원인한테 화내고 소리 지르고 한다면 그것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농담 삼아 외노자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도 취업하기가 이렇게나 힘든데 남의 나라에서 취업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외국인 분들이나, 해외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직장인들 힘내십시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