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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29. 2021

8. 외노자의 애환

1) 작고소듕한내 월급 2) 퇴근하겠습니다

2019년 7월 말 입사하여 2년 근속 중인 나의 첫 정규직. 그동안 한 직장을 오래 못 다니고 이리저리 방황했었는데, 이제까지 내가 일한 것들 중에서 최고로 길게 일하고 있다. 물론 이직의 열망이 샘솟았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덕분에 각성했다. 이 직장은 현재 내가 다닐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다! 



1) 작고 소듕한 내 월급


공무원이 박봉인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최저임금 정도인 나의 월급으로는 나 혼자 딱 한 명 먹고 살만큼 밖에 되지 않는다. 나에게 딸린 식솔이 없으니 그나마 생활이 가능하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수준이라 만약 영주권 신청비 같은 수백만 원이 깨지는 무조건 지출을 해야만 하는 경우 등을 대비하려면 상당히 절약하며 살아야 한다. 퇴직금이나 보험 등의 공무원 혜택도 많지만 추가적인 수입이 없이 월급만으로 순수하게 생활한다면 비상금을 만들기도 어렵고 저축을 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분들의 걱정과 조언을 한 몸에 받는다. 최저임금 받고 그거로 생활이 되냐, 집도 없고 박봉인데 월세는 내냐, 차 없으면 불편하지 않냐, 원룸에서 어떻게 사냐 나 같으면 못 산다. 왜 전공이랑 관련도 없는 다른 일을 해? 너 정도면 더 나은 직장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럴거면 석사 공부는 왜했어? 등등. 투자이민도 많이 오시는 주이기 때문에 애초에 부자인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내 인생인데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오롯이 내 힘으로 찾은 내 직장이다. 나는 매일매일 출근할 곳이 있고 퇴근해서 돌아갈 집도 있고, 내 하루를 생산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그래, 그거면 됐다. 충분하다.


지금 나의 삶을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내가 헬조선의 국민으로 살던 천조국의 이민자로 살던 어디에서 뭘 하던 내 마음을 천국으로 만들면 된다.


코로나로 인해 지역경제가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에서도, 정부 예산 감축에도 일시해고나 월급 밀리는 일 단 한 번도 없이 잘 넘어간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게다가 나는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반년 늦었지만 진급까지 받았으니 엄청난 행운이다. 더해서 코로나로 인해 미뤄진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부서에 엄청나게 많은 업무가 들어왔지만 잘 처리했고 그 덕분에 부서 공로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열심히 일한 사실도 인정받으니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일생일대의 행운임에 분명하다. 


목요일은 사무실 청소기로 바닥 카페트 청소해주시는 날이라 좋고, 금요일은 캐주얼 데이라 청바지나 평상복 입을 수 있어서 좋고, 수요일은 단골 한식 음식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점심 도시락 메뉴를 판매해서 좋고. 매일 아침 출근길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직원들과 인사하며 안부 묻는 것도 좋고, 퇴근길에는 일부러 나의 힐링 스팟인 도심공원 쪽으로 돌아가면 강아지들 산책 모임 하는 시간이라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긍정적인 면만 보고 밝은 생각만 하면 나에게 좋은 일이 계속 생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퇴근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내가 처음 채용되었을 때에는 나는 미국 시민권도 없었고 심지어 영주권도 나오기 전이라 오직 취업허가와 여행허가만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미국 시민들을 위하여 일을 하게 되다니. 이것이 진정한 블라인드 채용인가. 오로지 나의 능력만을 보고 채용을 해주신 것에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만약 한국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작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장에 중국인들이 개표사무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 중국인들은 다문화 의용소방대라는 소방 업무를 보조하는 기관 소속에서 추천되어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거에 내국인이 아닌 사람이 참여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두고두고 논란이 될 만한' 일이라고 소개되었다.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지금 내가 이민자로서 내가 거주하는 사회에서 이만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상기되었다. 이민자의 나라인 덕분에 귀화한 내국인이 아닌 외국국적의 거주민에게도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이 사회도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역량이 있다는 증거이다. 


물론 나도 영어 원어민도 아니고 시민권자도 아니니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짜증 내는 사람도 많다. 뭐, 나라도 그러겠다. 내가 예를 들어 한국에서 공공기관을 갔는데 웬 외국인이 어색한 발음으로 져기여 셩햠이 오또켸 대셰여 하면 깝깝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직원들 대상으로 차별방지 교육, 직업윤리교육, 안전교육 등의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불합리한 일들이 고객에게도 직원에게도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런 노력이 효과가 단기적으로 봤을 때 미미하더라도 우리가 뭔가를 인지하고 있는 것과 아예 무지한 것과의 차이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심지어 사회 전반적인 일들에 대한 찬반 투표도 참여할 권리는 없지만 그래도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사회에는 시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민자, 유학생, 여행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속해있으니까. 그 모두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분들이 사무실에 한국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정말 안심이라며 나에게 고맙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더욱 자부심을 느낀다.


이민자라서, 이민자이지만, 이민자니까... 이민자라는 신분에 나를 구속하지 않고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더욱더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민자이기에 다양한 배경과 문화, 언어를 활용할 수 있고, 외부인의 시선으로 객관적인 상황판단이 가능하고, 여러 가지 접근 방법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국적의 재외국민이기에 한국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도 소중히 여기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나 국위선양까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의 가치와 능력을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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