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최선을 다하는 방식 4)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이곳의 직원분들도 정말 다양한 성격과 배경을 가지고 계시다. 물론 내가 그분들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함께 일하면서 느낀 점. 어떤 직원은 대체 뭘 하자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쓸데없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다. 일을 하자는 건지 문제를 만들자는 건지 뭐 어쩌라는 건지 진짜 그냥 자기 일이나 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반면에 어떤 직원은 진짜 강철멘탈인지 아무리 민원인이 진상에 진상을 부려 나 같으면 공황장애 왔을 텐데 하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좋은 예시와 나쁜 예시를 동시에 보면서 내가 느낀 점은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모든 직장인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진상을 부리는 민원인을 만나면 당황하거나, 인신공격하는 경우 당연히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잘하려면 내가 하는 업무의 목적을 기억하자. 민원인이 우리 사무실로 찾아온 이유는 뭔가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민원인을 도와주는 일이기 때문에 민원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직원은 그거는 우리 부서에서 하는 일 아니니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욧! 라고 퉁명스럽게 응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이런 사람들 때문에 직원 전체 싸잡아서 욕먹으면 진짜 할 말 없게 만든다) 어떤 직원은 민원인의 우려에 정말 공감하고 그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곳은 이러저러한 업무만을 처리할 수 있는 사무실이기 때문에 그 민원을 접수할 수는 없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식적인 방법 어느 어느 기관의 어느 어느 부서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거에요. 라고 응대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민원인이 불친절하게 말했다고 내가 불친절하게 나가면 그냥 서로 기분 나쁠 뿐이다. 그리고 그 기분 나쁜 경험으로 인해 그 민원인은 우리 사무실을 싫어하고 나는 내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 직원분처럼 성난 민원인을 진정시키고, 공감해주고,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지 그냥 너가 화내면 나도 화낼 거야 하면 이 사무실 공기는 화로 가득 찰 듯
같은 환경 같은 상황 같은 조건 같은 시간 장소 공간에서도 사람마다 정말 다양하게 반응한다.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을까 한 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들을 정확하게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척척 해내는 능력 있는 직원이고 싶다. 그러면서도 유하고 부드럽게 친절하고 누구든 나에게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동료였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단순 업무라고 느껴져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뭐가 잘못되면 단순하게 clerical error로 치부해버리는 것도 안타까웠다. 물론 우리 부서에서 큰일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모든 것이 문서로 기록되기 때문에 그 양도 엄청나게 방대할 테고 그 과정에서 서류 작업에서 사소한 실수가 많이 나긴 하지만, 이 단순한 업무를 하면서 디테일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더 강박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만약에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면, 이곳은 어느 정도의 실수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기에 더욱 편하게 일했다면, 오히려 능률이 더 올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시각을 갖는 것이었다. 내 코앞에 닥친 일만을 보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시스템을 보기.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찾기.
내가 일하는 곳은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어느 사회든 범죄가 없을 수는 없다. 크고 작은 범법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법을 어긴 사람들도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이다.
그래, 나도 이 사무실의 일원으로 그래도 나름 정의로운 일에 일조를 한다고 믿자.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잘렸을 테니까. 내가 일이 없을 때 가만히 대기하고만 앉아 있어도 월급 줄만큼 중요한 일인 것이다.
내가 열심히 시청했던 미국 범죄 수사드라마 중에서 정말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나왔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체포되었을 때 초반에 신원파악이 어려웠던 상황이 드라마에 나왔었는데 그 이유가 그 사람의 이름이 루이스였는데 어느 주에서는 Lewis로 어느 주에서는 Louis로 범죄기록이 등록되고 뭐 이름도 바꾸고 주에서 주로 옮겨 다니면서 제대로 파악이 안 되었던 배경을 설명했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분이 일했던 사무실에 쌍둥이 고객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쌍둥이의 이름을 똑같게 지어주고 미들네임만 다르게 지어줬다고 한다. 쌍둥이 인지도 모르고 성이랑 이름만 확인하고 일하려면 누가 누구인지 엄청나게 헷갈릴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는 일란성 쌍둥이었는데 경찰에 잡히자 자기 쌍둥이 형제 이름을 대고 체포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형제 이름으로 계속 재판도 받고 범죄기록에도 올라갔다가 나중 나중에 체포영장인가가 나와서 엉뚱한 사람 체포하고 오해를 푸는 데 엄청나게 복잡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내 일은 드라마에 나오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 미드를 보고 나서 나도 전화 응대할 때 이름 스펠링을 꼭꼭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실제로도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같은 발음의 영어 이름이라도 스펠링은 제각 가인 경우가 많다. 캐 Ca Ka 서 th tha the 린 ryn ryne rane rene rin rine rina이나 리 Lee Leigh 앤 Ann Anne, 또는 조이 Joy Joey Zoy Zoey 도 그렇고 니콜라스도 그렇고.
진짜 영어 이름은 스펠링도 다양하게 쓰고 미들네임도 지어주는 대로 두 개든 세 개든 열개든 있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내 선에서 최대한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나도 열심히 확인하긴 한다. 그리고 영어권 국가가 아닌 경우 발음도 어렵고 스펠링도 유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신원확인은 어쨌든 확인해야 하니 서로에게 좋은 것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한다. 물론 상대가 귀찮아하거나 싫어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한다. 내 위치에서 내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내가 알아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