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슨 동네방네 떠들지만 나만의 독백...
무엇이 나를 키보드 앞으로 불렀는가? 분노?! 열폭?!?! 자!격!지!심?!?!?!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 (별일 아님 주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라섰다. 그런데, 그러니까... 그렇지만, 아직도 나의 마음을 콕콕 쑤시는 순간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나를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
분명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아는데도, 내가 더 우아하게 대처하고 싶다는 걸 아는데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도, 그리고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걸 아는데도...ㅜㅜ
그런 대화가 있었다. 여러 번 있었다. 아니, 거의 매번 만날 때마다 비슷하게 흘러가는 대화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잘 넘어가야지 했지만 결국 급발진했던, 그래서 조금 후회되는 대화가 있었다.
나의 베베 꼬인 꽈배기 마인드로 들으면, 남편을 뜬금없이 치켜세워 주다가 내가 사실이 아닌 부분은 아니라고 하자 나를 갑자기 위로해 주는(?) 그런 패턴. 실제로 그분의 의도는 좋은 의도로 칭찬해주시고 나에게 긍정적인 면을 말씀해주시는 것이었겠지만...
망상에~ 망상에~ 망상을 더해서~ 들으면 정말 왜 굳이 굳이 남의 남편 이야기를 꺼내서 대화의 주제로 삼는지 이해가 안 갔다.
"ㅇㅇ씨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ㅇㅇ씨 같은 사람이 남편이라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ㅇㅇ씨가 저희 사무실 동료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세요."
"ㅇㅇ씨 같은 분을 동료로 만나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정말 순수하게 칭찬하시려는 의도라는 거, 물론 나도 안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좋은 마음에 거부감을 느꼈을까? 나는 왜 나를 위해주려는 사람에게 그런 못난 마음이 들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답은 내 안에 있었다. 이미 나도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이전과 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물론 상황도 많이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나도 다르고 남편도 달라졌다. 하지만 미묘하게도 상황이 그대로 흘러간다. 그때도 그랬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때도 그랬다고 해서, 누군가가 남편을 칭찬하는 것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현상이 아닐까? 나는 남편을 욕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말 해준다는데 대체 왜 그렇게 불편할까?
나는 이번에도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회피가 정답은 아니지만 안 듣고 안 보면 내 마음은 편하니까. 나는 남편이 회사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아예 관심을 끊고 살아가고 싶었는데, 자꾸 이야기가 들리니까 불안한 감정에 휩싸인 것 같다.
남편을 믿고 싶은데 내 마음이 그러지 못하고, 상대도 믿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그랬다. 남편이나 상대의 잘못이 아니라 흔들리는 내 마음, 자꾸 부정적으로 상황을 보려는 내 마음, 100% 믿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의심하기에는 너무 힘들어지니까 회피해버린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나는 큰 탈 없이 평화롭게 지내서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그분을 만나면서 불편한 마음이 아직 노력이 더 필요한 시기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믿고 싶을까?
사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나를 믿고 있는가? 였다.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 내가 바라는 최상의 모습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사실 나도 나밖에 모른다.
작년부터 나는 내 인생의 중심을 나에게로 옮겨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나의 존재와 나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싶었다. 나 스스로 인정받기 위해. 누군가의 아내라서 이곳에 사는 게 아니라, 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장소가 단순히 이곳이라고 믿고 싶어서.
그런데 그분을 만나면 자꾸 '내'가 없어졌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노력과 고민이 흔적도 없어 보였다. 물론 내가 나를 다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내가 진심을 다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상대가 나를 다 알아줄까.
나는 왜 나의 결혼생활을 평가받아야 하는지, 왜 나의 행복을 남이 정의 내려주는지, 나의 인생을 결혼으로만 판단하는지... 왜 나를 타인이 멋대로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랜 해외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내가 한국인의 '정' 문화를 못 받아들이는 건가? 아주 미묘한 차이를 내가 너무 심각하게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걸까?
사실 이것도 내가 타인의 평가에 좌지우지된다는 반증이다. 나의 기준이 명확하고 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남이 뭐라 하던 신경도 안 썼겠지.
이것은 나의 반복되는 행동양식이다. 나는 나의 감정과 나의 의견을 너무나도 치열하게 고민한 나머지, 나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에는 나만의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작년 겨울 단톡방에서 "홍이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제 의견은 이래요~" 하면서 내 의견을 타인이 이야기할 때 나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상대에게 구구절절이 내 입장을 설명하여 갈등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그 노력 자체도 상대에게는 불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결국 단톡방에서 나왔지만 그 일이 있은 덕분에 내가 무엇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알게 된 기회였다. "제 생각은 제가 말할게요." 깔끔하게 한 마디면 될 것을 내가 삽질했다는 것도 배웠다.
지난번의 깨달음을 교훈 삼아, 비슷한 맥락의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까?
같은 단톡방에서 있었던 어떤 분의 아주 우아하고 당당한 대처법이 기억난다. 국제커플이다 보니 남자 친구와의 미래, 결혼, 이민 등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때에도 요약하자면 "남자 친구를 너무 믿지 말고, 취업비자든 이민이든 결혼이든 재고해보라"는 충고가 며칠 동안 난무했고, 내가 당사자라면 상처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상황은 정말 깔끔하게 카톡 하나로 정리되었다. 사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희의 미래는 저희가 결정할게요. 저도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 정도 판단력은 있으니까요. 단톡방은 서로의 연애를 응원하는 곳이잖아요."
당시의 나는 아... 대체 왜 그러실까, 왜 말을 그렇게 하실까, 헤어지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ㅠㅠ 하면서 스트레스받았는데. 이렇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너무 존경스럽고 약간의 동경까지 생겼다. 능력 있고 당당하고 자신의 판단력을 부드럽게 표현하시는 분이셨다.
그래, 회사 1년 차에는 10년 차의 생각이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이민 1년 차에는 해외생활 10년 차의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이 다르고 정말 모르니까. 짐작조차 안 될 수도 있다. 내가 주제넘게 기대했다. 나의 친구이기 전에 남편의 친구였는데. 그 선을 내가 못 봤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정리되니, 비슷한 상황에서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대화나, 남편의 이야기,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나를 평가하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여담.
비평가, 평론가, 논설위원, 심사위원, 선생님, 강사, 교수 등
남을 평가한다는 건,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자들의 숙명일까? 자신이 매긴 점수를 꼭 상대에게 전달해야만 하는 강박일까? 누군가를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자신이 나쁘다고 믿는 행동들을 교정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자신의 기준이 너무나도 확고한 성향일까? 그게 직업이니까?
우리 엄마도 선생님,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엄마도 선생님, 이모도 선생님, 고모도 선생님, 할아버지도 선생님이셨다고 하고... 결혼하고 나니 시아버님도 선생님 시어머님은 심.리.상.담.가?????
남을 판단하고 평가해야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평생을 살면서 나는 절!대!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지 남편은 무조건 선생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ㅋㅋ 평가당하는 게 내 운명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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