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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an 14. 2022

프로 과거미화러의 현생

별 거 없는 하루의 기록

모든 관계가 그렇겠지만 나와 남편은 참 많이 다르다. 혈액형이며 MBTI며 별자리며 띠별 궁합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 신기하게 사주나 신점을 보면 결혼 잘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까 완전 상극인 사람 둘이 만나서 서로를 사랑하고 보완해가며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기만 한다면 찰떡궁합이겠지만...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단점과 약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쉽기 않다.ㅠㅠ


단지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된 사람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현재의 상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장점과 단점 모두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타인에게도 똑같은 존중을 줄 줄 아는 사람들. 진정으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고 고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강점보다는 약점을 보고 완벽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사람, 충분히 좋은 상황임에도 더 좋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착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


그리하여 우리 남편은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남편의 그런 모습 하나하나를 문제 삼아 자신의 무능력함을 콕 콕 찝어 드러내는 사람과 결혼했고, 나는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사는 사람인데 성장과 발전이 너무나도 여유로운 사람과 결혼했던 것. 서로가 서로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다른 면에 괴로워하고 불행해졌다.


우리가 정말 천년의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서로 이렇게 상극이면서까지 옆에 붙어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편하고, 함께 하는 모든 순간들이 자연스러운 그런 사이가 맞는 게 아닐까? 서로 눈치보면서 행동 하나하나에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있어도 충분한 그런 관계가 옳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보다, 힘을 빼고 아무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마음에 안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더 좋지 않을까? 그게 운명이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 다른데 왜 굳이 굳이 결혼까지 했을까? 연애 때는 몰랐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때는 이런 차이점에 서로에게 이끌렸던 것 같다. 남편은 매번 전전긍긍하며 작은 일에도 쉽게 휩쓸리는 나를 안정감 있게 붙잡아주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는 그런 진취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테니까.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현재를 살지 못하고 나는 항상 미래를 기대하거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도 우리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의 심리였다. 나에게 현재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가 많았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고 항상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지금 상황 전체를 부정해버렸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나는 행복하겠지, 또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이 부분은 좋았는데 하며, 현재를 놓치고 있었다. 무드셀라 증후군, 기억 왜곡을 동반한 일종의 도피 심리, 향수에 젖어드는 일종의 퇴행 심리라고 한다.


내가 나의 이런 상황을 깨달은 시점은 내일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을 때 즈음이었다. 이곳에서의 나의 하루하루는 너무나도 똑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이미 지나간 어제도 포장되고 오늘도 결국 어제가 될 텐데... 그리고 내일도 오늘이랑 똑같을 것인데. 아무리 과거를 미화해보려 해도 미래의 꽃길을 그려봐도 희망이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무의미했던 그 순간, 그제야 현재가 눈에 들어왔다. 궁지에 몰려 더 이상 도피하지 못하고 나에게 지금 현재만이 남았을 때.


그리고 그때, 남편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겪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깨달음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현재를 살아가는 이 사람이 신기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바로 코앞에 있었던 현재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작은 일에 전전긍긍하며 큰 그림을 놓치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결점에도 마음을 닫고 , 아주 하찮은 이유를 대며 눈을 감았다.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모른채.


나는 여전히 지금, 여기, 이 순간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 허상의 무언가, 불가능한 어떤 상태, 존재하지 않을 그 어느 날을 쫓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완벽한 환경,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상황, 현재를 감내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그게 지금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 지금 나의 상황에서 아주 작은 불만이나 아주 작은 유감이 미래로 과거로 회피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이런 나의 상황이 나의 최선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지금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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