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May 05. 2022

내가 계속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

우리가 채워질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구질구질 안 버리고 모아놨던 물건들을 휙휙 버려버리고, 갑자기 냉장고 정리를 슥슥 해버리고, 화장실 벽이랑 바닥 곰팡이를 박박 닦고 싶고, 다 내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그런 날.


나에게 일상의 환기가 필요한 날. 무엇을 위해 아껴뒀는지 모를 자잘한 물건들을 꺼낸다. 화장품 통 새 거에 새로 담고, 과자도 모양 좋고 큰 거 제일 먼저 먹고, 좋은 펜으로 글을 써보고. 안 쓰면 똥 되는 걸 뭘 그렇게 고이고이 모셔둔 걸까? 그렇게 아껴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나? 너무나도 자잘해서 생활 수준을 드라마틱하게 올리지도 못하는 것들을 뭘 그렇게 아꼈나?




이 세상 전부를 다 아는 줄 알았다가, 내가 일 제일 잘하는 줄 알았다가, 기세 등등하게 맞는 말만 해대는 줄 알았다가... 사실 그런 나를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그만큼 성장했고, 그리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달았다. 나는 더 배우고 더 깨닫고 더 듣고 더 고민해봐야 한다.


여전히 내가 맞다고 우기고 싶을 때도 있고, 여전히 졸렬한 마음이 떠오를 때도 있고, 여전히 아무 이유 없이 꼬라지가 나버릴 때도 있다. 순식간에 떠오르는 생각들에 마음을 다잡아보는데, 가끔은 너무 늦을 때도 있고 너무 이를 때도 있고. 이래나 저래나 후회되는 것 같다.  







내가 계속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를 알았다.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건데 나는 오로지 받기만을 원했던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하고 진심을 표현하고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할 때 채워지는 거였는데!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된다는 걸까? 내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겨서? 자존감이고 뭐고 다 버리고 아이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서? 치사하고 더러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힘이 되어주니까? 아이를 낳으면 그런 마음이 들까?




나는 남편을 못 믿고 자꾸 계산하고 재고 있었다. 내 사랑을 줄까 말까? 이 인간 믿을까 말까? 이 사람한테 내 마음을 배팅해도 괜찮을까? 나한테 상처 줄 사람인가 아닌가?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서도 계속 의심했다. 나는 내 남편에게조차 조건부 사랑을 하고 있었나 보다. 니가 날 사랑해주는 한, 니가 나에게 상처주지 않는 한, 니가 날 배신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헤매고 있었다. 감정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다니며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을 하고 있었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른 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아직도 파도처럼 울렁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기분.


대체 왜? 내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은 뭘까? 내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뭘까? 행복의 파랑새는 내 안에 있다는데 밖으로 돌아 돌아 결국 내 안에서 찾을 행복은 무엇일까? 우리가 이사를 가면 내 생각이 바뀔까? 그냥 장소만 다른 것 아닐까? 우리가 헤어지면 내 생각이 바뀔까? 소중한 것은 잃어버린 후에 깨닫는다는데. 지금도 소중하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나에게만 집중했다. 내가 원하는 거, 내가 바라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원 없이 다 했다. 내가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주는 듯했다.


받기만 하는 사랑으로는 채워지는 데 한계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받아도 받아도 여전히 더 받고 싶은 야속하지만 그게 사람 마음이니까. 나는 그렇게 응원받고 축하받고 관심받고 해도 부족하고 불안해했다.


왜냐면 내가 원하는 건... 과거의 그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었으면 하니까. 불가능한 일이니까. 나도 안다.




“It’d be better if Joel had died, then she’d be a widow. At least there’s dignity in that.”




연애 때부터 꾸준한 사람. 한결같은 우리 남편. 그런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온갖 갈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곁에 남기 위해 했던 노력들. 


서로의 바닥을 보고 난 뒤에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만큼 관계도 성숙해지는 걸까? 서로를 더 잘 알고 어느 정도 선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줄 정도로 타협하고 상대가 그 선을 놓치지 않게 도와주는... 그게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의미일까?




그 공허함을 채워지기 위해서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 중심이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남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어가 나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또다시 깨닫는다.


녹색지대도 말하지 않았는가,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을 하라고.


모든 것을 주는 그런 사랑을 해봐. 받으려고만 하는 그런 사랑 말고. 너도 알고 있잖아 끝이 없는걸. 서로 참아야만 하는 걸. 사랑을 할 거야 사랑을 할 거야.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