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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y 05. 2022

남편의 여사친, 우리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트라우마로 남은 그날을 좋은 기억으로 서술을 바꾸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애, 결혼 문제는 정말 복잡하고 어렵다. 치매에 걸려도 정신질환이 생겨도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정말 그 트라우마는 엄청나겠지...?




출처 : 인터넷




내가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그만큼 그 사람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 우리 남편이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우리 강아지는 안 물어요. 사실 이건 그럴 리가 없다는 나의 믿음일 뿐이지 상대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만약에 내가 그 사람을 믿고 싶지 않았더라면 역시 여자의 촉은 사이언스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겠지.




결혼 전 봤던 영화 <건축학개론> 서연과 승민도 친구사이겠지? ^^ 하하.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은채였다면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두 사람 사이에서 당당하게 허리 딱 펴고 앉아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갈팡질팡하는 남친에게 그리고 그의 여사친에게 교통정리 확실히 해줄 수 있었을까? 우리가 결혼할 사이임을 대내외적으로 공고히 하며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당연한 나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한 채 숨어만 있었는데... 불청객 앞에서 남편의 첫사랑이 "쌍년이었다며~^^" 를 시전 할 수 있었을까?


어렸을 때 본 영화와 지금 보이는 영화는 차이가 정말 크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환경이 사람을 만들고 입장이 사람을 만드는 거 같다.




<건축학개론>




끔찍한 일이 일어난 시기. 그때의 날씨며, 냄새며, 촉감까지, 그리고 그 장소와 그 안에 우리가 있었던 위치, 우리가 나눴던 한마디 한마디, 그 살벌했던 분위기며, 서로를 향해 내뿜는 에너지와, 그 눈빛... 너무 생생한 기억들에 압도당하게 된다.


2020년, 코로나 창궐로 심지어 재택근무를 했던 시기. 그 당시 뭐라도 해보겠다고 들었던 수업들 중에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다.


https://www.affairrecovery.com/newsletter/founder/surviving-infidelity-discovery-part-1


여기서 알려줬던 내용 중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 그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 매년 돌아오는 그날 D-Day anniversary 를 어떻게 보내야 할 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업에서는 진실한 대화를 해보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확신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교훈을 준다.




내가 상처받은 이유는 남이 나에게 상처 줘서가 아니다. 남편 때문도 아니며 남편의 여사친 때문도 아니다. 남편에게 여사친에게 사과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고 내 기분이 나아질까? 절대 아니다.


내가 상처받은 이유는 내가 나의 가치와 존엄성을 스스로 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그 일은 벌어졌고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은 아무에게도 없는데.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태로 버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의 가치와 존엄성을 스스로 깨닫고 그에 맞게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우리의 기억은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로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과거의 일들을 다시 추억해보며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 내가 직접 선택할 것이다. 가장 슬픈 일이 있었더라도 그 뒤의 행복한 순간으로 인해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처럼. 내가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




<인사이드 아웃>




만물이 소생하는 봄,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봄, 살랑이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있는 봄, 나의 봄을 되찾기 위한 나만의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바로...


4월을 다시 쓰기.


매년 돌아오는 4월을 다시 쓰기. 나를 위해, 내년의 4월을 위해, 미래의 4월을 위해, 나의 4월을 위해!




나는 사실 그 기억 자체를 사실 아예 묻어버리고 모르는 척했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맴돌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문득문득 생각나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울컥하는 마음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갔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그리고 여전히 용기 없는 나는 그 시간을 그 장소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매년 4월 한국으로 갔다. 매일매일 외출하고 친구 만나고 쇼핑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4월은 연말정산 기간이라 텍스 리턴까지 해야 했기에 4월 달의 지출이 어마 무시하게 나갔다. 그래도 돈이 아깝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있었으면 얼마나 더 무너질지 몰랐으니까.


한국에 가면 그 속도에 정신을 못 차린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발걸음으로 걷는다. 그렇게 눈 감으면 코 베일까, 서울 탐방 온 시골쥐처럼, 문명을 처음 보는 천둥벌거숭이처럼, 정신없이 있으면 4월이 훌쩍 지나간다.


작년에는 한국에서 피부과 레이저를 세트로 맞고 올해는 쌍수를 했다. 그러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렇게 4월마다 다시 태어나며 봄을 다시 썼다. 나는 4월을 한국의 봄으로 기억할 것이다. 벚꽃, 따뜻한 공기, 꽃샘추위, 봄비, 바쁜 지하철과 버스, 매년 갈 때마다 좋아지는 시설들, 그리고 매일매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도시 풍경. 이제 그 기억으로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미드에서는 정말 상상 초월하는 일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중에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내연녀가 혼외자를 출산할 때 도와주는 장면. 그래, 내연녀랑도 친구 하는 세상에 여사친이라고 친구 못할까? 하다가도 너무나도 한국적인 내 안의 유교 걸이 뒷목 잡고 쓰러진다.


다자간 연애건 열린 관계이건 결혼이란 제도에 묶여있지 않고 상대를 존중(?)해주는 게 인간관계 양상에서 진화의 끝판왕인 걸까? 아니면 무질서한 야생으로 돌아가는 동물의 왕국인 걸까?




그분이 이사 가기 전, 남편과 알고 지낸 수년의 시간 동안 나에게 연락 한 번 없이 나 몰래 내 뒤에서 둘이서만 친하게 지냈다는 데에 나는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새로 알게 된 다른 친구분은 남편과의 일을 시시콜콜 알려주시는데, 나는 또 그게 그렇게 불편하다. 되려 그 이야기들 때문에 남편이랑 내가 싸우고 있다.


참 그냥 듣고 말면 되는데...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지난 일을 생각하면 그것도 그거대로 싫고. 말을 해줘도 안 해줘도 난리인 내 마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술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모음



1. 언제 - 날짜


트라우마로 남은 그날을 좋은 기억으로 서술을 바꾸기


2. 어디서 - 장소


지상낙원에서 신의 직장이란

하와이에 살어리 랏다 

N년 전 오늘 날짜로 보는 하와이 


3. 누가 - 인물


미운 놈 하나 더 줄 떡 레시피


4. 무엇을 - 사건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오늘 쓰는 어제 일기


5. 어떻게 - 대화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6. 왜 - 자존감


남미책 그 후의 이야기

여차하면 캐리어 하나로 떠날거야 

물은 셀프 감정도 셀프 우울증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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