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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y 03. 2022

타인의 선의에 거부감이 느껴질 때

퉁명스러운 말 vs 따뜻한 진심의 간극에서

정말 오묘하게 기분 나쁜 대화들이 있었다. 실제 대화할 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대화가 끝나고 나서야 "이게 뭐지?" 싶은 그런 대화. 대화 자체에는 크게 기분 나쁠만한 요소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지는 대화.


그런 일이 있으면 나는 속으로 곱씹는다. 이 말은 상대의 의도가 불순했어... 이런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는데? 아니, 대체 이런 말은 왜 하는 거야!! 참나, 자기가 뭐라고 되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그리고 나면 깨닫는다. 사실 내가 기분이 나쁜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의 대화에 말렸다.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나의 모습으로 해당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가 흐를 때, 거부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빼앗겼다.


대화 상대 때문에 내 기분이 잡친 게 아니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건전한' 토론 문화라면서 내가 하는 모든 말에 반박한다면? 아니, 나는 애초에 친목 자리에서 토론하기도 싫었는데? 갑자기 "자, 네가 얼마나 잘 알고 있나 한 번 보자. 어디 한 번 나를 설득해보시지." 이런 태도로 나온다면? 너의 정당성을 나에게 증명해보라는 식의 대화에 갇혀버렸다면?


'특별한' 기념일이니까 영상통화 한 번 하자! 하면서 안부인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 대화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보내고 있었다면? "네가 더 잘했어야지, 네가 하는 생각은 좀 이상하지 않니?" 너만 고치면 되는데, 너만 참으면 되는데 왜 문제를 만드냐는 꾸중을 듣고 있다면?


그 순간 바로 거절했어야 하는데 대화를 한~~~참 하고 나서야 그런 대화였다는 걸 내가 깨달은 거다.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이란... 짜증? 화남? 더러움? 치사함? 억울함? 하, 그래 뭐 어쩌다 보는 사람들이니 다음부터는 정신 차리고 잘 대처해야지 했다가도...




또 다른 일화로는 매일 봐야 하는 회사 직원이 있다.

 

'친근함'의 표시라면서 나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타인에게 전달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차라리 뒤에서 자기들끼리 얘기하지 면전에서 타인에게 밝히기 싫은 개인사를 자기가 들먹거린다면? 내 이야기를 왜! 나도 거기 있는데! 자기가 하고 있냐고!! 이미 말은 던져졌고 긍정도 부정도 못하고 있던 찰나에 부글부글 끓었다.


'선의'로 내가 맡은 일을 도와준다며 생색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제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업무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가르쳐주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궁금한 게 생기면 여쭤보겠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 너 생각해서 도와주는 건데 대체 왜 그래? *^^* 우리 팀워크 최고! >_< 난 진짜 좋은 동료고 난 너를 정말 좋아해~❤




침착함을 유지하고 싶어도 나도 모르게 인내심이 끊기는 순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면 이런 순간들은 내가 심적 여유가 없었던, 그래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내가 마음이 태평양처럼 컸다면, 그래서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를 넓게 두고 멀리 볼 수 있었더라면...


아, 저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뽐내고 싶었구나.

아, 저 사람은 그 상황에서 누군가라도 탓하고 싶었구나.

아, 저 사람은 팀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고 싶었구나.


이렇게 너그럽게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내가 우아하고 기품 있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으로 잘 대처할 수도 있었겠지. 넉넉한 마음으로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 결국 나에 대한 문제였다.




<언프리티랩스타>





부지불식간에, 무의식 중에, 지속적으로, 주입식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하게 들리는 말들이 있다.


너는 몇 점이야, 너는 몇 등급이야, 너는 이 정도밖에 안돼, 네가 하는 선택은 잘못됐어 이것만 하면 된다니까, 네가 하는 생각은 틀렸어 이게 정답이야, 어련히 알아서 해줄까 너는 시키는 거나 해...


뭐 좋은 의도로 시작했겠지만 사실 이게 모두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듣는 지적이 있다. 바로 외모 지적. 아무래도 오랜만에 만나거나 처음 만난 사이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보이니 그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뭐 자연스러울 수 있겠지.


작년 한국에서, 친구와 친구 애기와 셋이서 놀이공원을 간 적이 있었다. 애기를 쫓아다녀야 하니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나타난 나에게 해준 친구의 첫 말은 바로 "완전 등산복 차림으로 왔네?" 나는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애기랑 같이 다니려면 편하게 입어야 하니까..." 그랬더니 "응 잘했다고."


나는 왜 그 순간 감정이 상했을까? 애석하게도 나는 친구 애기랑 놀러 가준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친구도 좋고 친구 애기도 예쁘지만, 한국에 있을 며칠 안 되는 시간에 친구의 육아를 도와준다는 마음.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그런 마음이 옷차림 지적으로 평가당한 기분이라 말문이 막혔던 것 같다.


어쨌든 친구도 잘 입고 왔다고 했으니 표면상으로 보면 별 문제없는 거니까. 그런 걸로 꽁해 있는 내 모습도 웃겼다. 오래된 친구이자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인데,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마음 편히 살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뭐만 하면 즉각적으로 피드백이 오기 때문. 그래 몇 천만 원짜리 관리받고 스타일리스트에 코디에 매니저도 있는 연예인들한테도 외모 지적을 하는데, 뭐 나라고 어쩔 도리가 있나.


앞머리 기를까 자를까 고민하다가 내 손으로 잘라 망쳐버리면 "앞머리 쥐 파먹었네."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에는 "치아 교정 좀 해야겠다." 바닷가나 하이킹이나 비치파크에서 재밌게 놀다 왔다고 하면 "피부관리 좀 해. 선크림 발랐어야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2년. 밀레니엄 해가 뜨고도 12번은 더 떴던 그 해, 나는 어떤 연합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거기서 나는 민소매 입은 애였다. "어, 민소매 입었네."가 만나는 사람마다 듣는 인사였다. 내가 끈나시를 입은 것도 아니고 노출을 한 것도 아니고, 소매만 없지 어깨를 가리는 블라우스를 입었더랬다. 21세기에 그게 그렇게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킬지는 몰랐지;;;


그때는 별생각 없이 더우니까 입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들으면 스트레스받았을 것 같다.




단점을 보는 건 본능이지만 장점을 보는 건 능력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말에 내가 흔들리는 것도 타인의 평가에서 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자존감이 높고 나에게 당당했다면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을까?


앞머리 만들고 싶어서 한번 잘라봤어~

이때 기분 좋아서 정말 환하게 웃었지!

바닷가에서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 ㅎㅎㅎ


하면서 부드럽게 넘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괜히 뼈 맞아서 어떡해 미용실을 갈까 피부과 좀 갈까  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 자체게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팩폭 당해서 기분 상한 걸까? 결국 자격지심?




한국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나도 정확하게 정해져 있다. 확실한 정답이 정해져 있어 그 밖의 다른 모든 행동들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타인의 눈에는 '내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눈에 띄고 가장 먼저 언급한 것 아닐까? 예를 들어 당시에 민소매는 입지 않는 것이어야 하는데 내가 입었고, 머리는 깔끔해야 하는데 내 머리는 지저분해 보였고, 피부도 희고 밝아야 하는데 내 얼굴엔 주근깨에 기미가 가득했던 것.


그 사람의 생각에는 나를 '옳은' 길로 '정답'의 길로 안내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까? 내가 그 마음을 몰라준 것일까?




2022년 한국에서 찍은 안내문




나도 한국인이지만, 한국인과의 대화에서 보이는 습관이 있다. 정말 특이하게도 우리는 거의 비슷한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 해외에 사는 한국인이든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든 정형화된 대답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경미한 차사고가 있었다고 근황을 전하면 10명이면 10명 "합의해주지 마라. 병원 가서 전신 검사 한 번 받아라." 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물론 괜찮냐 많이 다쳤냐 하는 안부도 있었지만... 이렇게 반응이 똑같다니 조금은 놀라웠다.


농담인 줄 알고 넘기려 했지만, 얼른 병원 가서 검사받고 운전자 고소(?)하라는 식의 조언과 후유증이 있을 거라는 예언을 계속해서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진짜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에 가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어떤 분께서 자신이 예전에 사고가 났을 때 보험처리와 합의를 한 경험담을 공유해주시며, 당시 병원에서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에게 합의해주지 말라는 사람들의 조언이, 사실은 내가 혹시나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는데 놓칠까 봐 나에게 알려주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의 생각에 보험이나 합의 등을 통해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게 정답일 수도 있으니까.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취하지 않는 것이 손해라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한국에서 선불폰 번호를 신청하러 통신사 대리점을 갔을 때의 일이다. 작년과 올해 두 번, 다른 년도 다른 대리점으로 갔지만 직원분의 응대가 똑같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선불폰 만들려고 왔다고 인사하면 두 번 다 "알뜰폰이 더 싸요 그거 사세요 편의점이나 다이소에서 팔아요~" 라는 대답을 들었다.


선불폰은 어차피 수익이 많이 없는 손님이니 귀찮아서 돌려보내는 건가? 아니면 더 저렴한 곳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려주시다니 이게 궁극의 친절인가? 흔히 말하는 그 츤데레인 건가? 고객을 호갱으로 보지 않고 가성비 좋은 대체 상품을 추천하는 정직의 끝판왕? 아니면 선불폰 샀던 사람들이 더 싼 알뜰폰의 존재를 알게 되어 컴플레인 걸었던 적이 있는 걸까?


 


한국에서는 택시를 탈 때에도 차도 방향까지 신경 쓰면서 잡아야 한다고 한다. 유턴하거나 일방통행이라 거리가 나면 요금이 오르니, 기사님께서도 손님들이 최저 가격으로 타길 바라는 마음(?), 아니면 컴플레인 듣기 싫어서 미리 방어하는 마음(?) 일수도...


우리는 왜 돈을 지불하면서도 서비스 제공자의 눈치를 봐야 할까? 이해가 안 되다가도, 오죽하면 그럴까. 사람들이 컴플레인을 하도 많이 했나 보다. 싶기도 하다. 최저가가 정답이니까. 가성비가 옳으니까.







한국에서는 정답이 무엇인지 모두 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안내판이나 뉴스에서 또는 법으로 서면에 쓰여있어도, 우리는 안다.


"코와 입이 보이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심리를 겨냥한 안내문


"정류장에 정차하기 전에 절대 일어서지 마십시오." 빨리빨리 타고 내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반하는, 마십시오 라고 쓰고 십시오 라고 읽게 되는 안내문.


"지하철에서 다치시면 저희가 달려가도 상처는 남습니다." 탑승자가 다치거나 상처입지 않기를 바라는 간접적인 표현(?)의 안내문.




해방 클럽의 규칙 : 조언하지 않는다. 위로하지 않는다.


어제 정주행 했던 드라마에서 나온 2가지 규칙이 떠오른다. Let it be. 내버려 두기가 미덕이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나도 할 말 안 할 말, 들을 말 안 들을 말을 구별하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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