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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y 16. 2022

똑같은 일상의 기록과 보석 같은 순간들

5/14/22

오전 7시, 일요일이라 그런지 쓰레기차 소리도 leaf blower 소리도 없는 고요한 아침. 가끔씩 지저귀는 새소리만 들려온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어제 새벽 3시까지 술 취한 사람들의 고성방가와 자동차 경보장치 소음이 끊이질 않았더랬다. 다 재밌고 신나게 불금도 보내고 불토도 보내고 나도 나가서 놀고시프당.


한국에 다녀오고 시간이 꽤 흘렀다. 좋은 소식도 들었고 축하도 받았는데 여전히 나의 일상은 똑같다. 한국에 있었으면 달랐을까? 이곳은 언제나 정적이고 느린 전개일까? 내가 한국에 있었다고 해도 휩쓸리지 않고 중심 잡고 잘 살 수 있을까?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다시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 그리고 매일매일 일상을 기록하는 블로거님의 글을 보며 부럽고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나도 해보는 기록.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부질없는 시간만 흘러가는 게 아쉬워 쓰는 일기. 단 한 번뿐인 다신 오지 않을 30대의 나의 이야기.







자, 어디 보자. 어제는 뭘 했더라? 아침부터 일어나서 청소를 했다. 어제는 손님이 오는 날이라 미루고 미뤘던 화장실 청소를 꼭 해야 했기 때문. 물론 우리 집은 너무 낡아서 청소해도 별로 깨끗하진 않다 ^^;; 그래도 우리 집에 와주는 귀한 손님들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


토요일은 유튜브에 애로부부가 올라오는 날이다 ㅋㅋ 그래서 애로부부 틀어놓고 샤워실 곰팡이 창가에 소복한 먼지 바닥 타일까지 닦았다. 여전히 티도 안 나지만 나는 알아주는 깨끗함.


원래는 유튜브는 헬스장에서만 보기로 다짐을 했었다. 헬스장을 등록만 해놓고 가질 않기 때문에 ㅠㅠ 유튜브라도 틀고 트레이드밀에서 걷기라도 해 보려고. 나름의 헬스장에 가기 위한 원동력이었는데 청소도 운동이라 치자고 합리화를 해버렸다. 다음 주 애로부부는 꼭 헬스장 가서 보기로!




https://thrive.kaiserpermanente.org/care-near-hawaii/active-and-fit

https://www.hmsa.com/well-being/active-and-fit/




한국에 다녀오고 다시 하와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 긴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다가 다시 헬스장을 등록했다. 


하와이에서 가입할 수 있는 보험 중 가장 많이 가입하는 Kaiser 나 HMSA 에서 Active and Fit 이라는 환급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가입비 200불을 내고, 1년 (1월 1일 - 12월 31일) 에 45번 헬스장을 방문해서 30분 이상 운동하면 200불을 환급받는 시스템!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운동하면 더 건강해지니까 보험회사에도 이익이겠지? 아니면 200불 내고 안 가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수지맞는 장사일까? 나도 2019년에 실패, 2020년은 성공, 2021년은 실패했다 아까운 나의 200불. 왜 헬스장을 등록해놓고 가질 못하니!!! ㅠㅠ


2020년에 성공한 것도 사실 헬스장을 잘 간 건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헬스장이 문을 닫아서 핏빗이라는 워치를 무료로 제공해주고 30분 이상 운동이 감지되면 하루치 운동으로 인정되게 해 준 덕분. 그때는 버스 타기도 무서워서 출퇴근을 걸어서 했는데 덕분에 200불 환급받았다. 


올해는 꼭 200불 받아내야지!!







우리 집에서 깜짝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바빴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주말에는 남편이 집을 비워주기 때문에 남편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요리를 해야 했다. 요리라고 하긴 거창하고 고기 넣고 시판 소스 넣고 굽거나 마트에서 사 온 레토르트 냄비에 넣고 데우는 게 다였지만. 그래도 미역국은 어제 끓여놨다. 맛은... ㅠㅠ


아무튼 준비는 열심히 했는데 생파의 주인공이 예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서프라이즈는 너무나도 허술했다. ㅋㅋㅋ 그래도 정성만은 알아주실 것이라 믿고,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을 함께 기념한 것에 의의를 두고, 머나먼 타국에서 같이 한국어로 수다 떨 수 있는 인연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다들 바쁘게 멋지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따뜻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 집은 곧(?) 이사 가니까 살림살이들을 전부 임시로 장만해서 대부분 중고에 짝도 안 맞고 약간 볼품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곧 간다는 게 벌써 몇 년째!! ㅠㅠㅠㅠ 임시로 쓴다는 게 벌써 몇 년째ㅜㅜ 근데 고장도 안 나고 깨지지도 않고 몇 년째 기능을 너무 잘해서... 그냥 대충 다 쓴다. 그래 감사하게 잘 써야지.


처음에는 손님들께 이 랜덤게임처럼 나오는 접시나 컵들로 대접한다는 게 부끄러워서 일회용품을 썼다가, 그래도 나름 환경을 생각하기 위해 있는 거 없는 거 죄다 꺼내서 쓰기로. 국그릇이 없으면 반찬 그릇에, 주전자가 없으면 냄비로 프라이팬으로도 물은 끓으니까, 냄비받침 없으면 수건 깔아놓고, 컵도 모자라면 티라미수 들어있던 컵으로, 대충대충 하는 살림 ㅠㅠ 우리는 가스레인지가 4구짜리라 냄비도 4개만 갖고 있는데 오~랜만에 다 꺼내서 탈탈 썼다. 







일상에서 하나씩 찾는 남편의 장점. 숨겨진 원석을 찾아 보석처럼 기억하고자 한다.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썼던 것처럼 남편의 좋은 점도 기록해두고 모아뒀다가 나중에 우리가 함께여서 행복한 기억이 절실할 때 읽어봐야지.


남편이 샤워실 전구와 옷장 문, 싱크대 막힌 것을 고쳐주었다. 남편 정말 고마워!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고장 난 곳들을 손봐주는 남편이 든든해! 나는 저 커버를 열지도 못했는데 역시 남편이 기술이 좋아! 따로 수리하시는 분 오기 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역시 집에 남자가 있어야 해! 당신이 우리 집 가장으로서 이런 일들을 해결해주니까 마음이 놓여! 당신이 최고야! 당신 없었으면 나는 어떻게 살까? 사랑해! 고마워!




꽈배기에 스크류바였던 나는 남편의 이런 장점에 감사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뭐가 고장 나도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발견 못하고 지나가는 무심한 인간. 월세 계약에 공동명의로 바꾸려면 140불의 수수료가 드니 바꿔주지도 않고, 나는 계약서에 이름이 없으니 부동산에 수리 요청도 못하고! 그럼 결국 자기가 할 일인데 한 번 말해서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맨날 까먹었다고 하고!! 까먹었으면 지금 당장 해야지 또 바쁘다고 안 하고 좀 있다가 한다고 안 하고!! 비싼 월세 내고 사는데 부동산에서 고쳐줘야지 왜 자꾸 뭘 사 와서 자기가 직접 하려고 하는지 정말! 혹시라도 망가져서 보증금 다 까먹으면 어쩌려고!!!!


자, 심호흡 길게 한 번. 후~ 하~ 우리는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도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답답하니까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하면서 대부분의 집안일을 내 선에서 해결했다. 전구를 갈거나 에어컨 필터를 세척하거나 청소기 필터를 교체하거나 냉장고 성에를 제거하거나 뭐 조립하거나 등등 자잘한 것들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에어컨이 고장 나거나, 음식물 처리기가 고장 나거나, 냉장고가 고장 나거나 하는 큼직큼직한 일들은 부동산에 연락해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남편은 내가 부동산에 연락을 부탁하면 바로 메일 보내고, 싱크대도 옷장 문도 고쳐달라고 하면 뚝딱 고쳐놓는다. 




사실 남편이 고쳐졌나?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해서 완벽한 남편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럼 뭐가 달라졌냐? 하면 바로 내가 달라졌다.


신혼 초의 나는 불만이 많았다. 아니, 세면대가 이렇게 물이 안 빠진다고? 하와이 진짜 꼬졌네! 여기서 어떻게 산담! 남편이 빨리 이직을 해서 본토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 대체 우리는 언제 이사 가는 거야!! 그리고 나는 화가 잔뜩 난 채 남편이 알아서 세면대를 고쳐놓기를 바랐다.


하지만 무심한 인간은 세면대의 물이 빨리 빠지던 늦게 빠지던 세수하고 양치하고 면도하는 데에 지장이 없으니 느릿느릿 살았다. 오히려 불편한 건 나였다. 더러운 꼴을 못 보니 세면대를 락스로 세제로 빡빡 닦아야 직성이 풀리는데 물이 제대로 안 빠지니 쓸 때마다 때가 끼고 더러워진 것.


닦달에 닦달에 닦달을 해서 부동산에 연락하면 건물 관리인에게 연락하라고 하고, 건물 관리인은 그냥 하수구 뚫는 약품을 사서 부으라고만 했다. 남편은 뚫어뻥을 사서 자기가 고친다고 했고 나는 반대했다. 그러다 세면대가 주저앉기라고 하면 어쩌려고 ㅠㅠ 그건 변기 뚫을 때만 쓰는 게 아닌가 하고... 차라리 전문가를 부르자고 했고 남편은 자기가 고칠 방법이 있는데 왜 쓸데없이 돈을 쓰냐고 했다.




그러고 나서 우여곡절 끝에 내가 결혼 수업을 들으며, 남편을 하나의 개인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 남편이 나와 결혼했다고 해서 내 뜻대로 해줘야 할 의무를 지우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게 정말 말이 쉽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실천이 어렵다.  


남편은 남편의 속도대로 살고 있었고, 그것이 빨리빨리 민족인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남편은 남편의 기준대로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이 나의 기준보다 낮기 때문에 내가 항상 먼저 발견하고 청소해버린 것이었다. 남편은 남편의 방식대로 세면대를 고치고 싶어 했고, 그것이 남편을 불신하는 나의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는 남편의 나라에서 이방인으로서 계속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각박하게 대하고, 하지 말라는 것들만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씩 마음을 놓았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잘 달래서 이렇게 저렇게 하게 해줘야 한다 이런 어르신들의 말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사실은 남편을 존중하면 남편도 나를 존중해주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뜻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우리 남편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 그가 뭔가를 할 수 있으려면 시간을 넉넉히 두어야 한다. 내가 넉넉한 마음으로 오래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그만큼 관대하고 차분하고 바다와 같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나도 조급하고 신경질적이고 꼰대 같은 사람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적인 함께 있으면 편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러므로 작은 일은 일주일, 큰 일은 한 달, 중요한 일은 두세 달 정도 시간을 두고 시키기. 아, 시키기가 아니라 부탁하기.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그리고 남편이 무언가를 한다고 할 때 남편의 결정을 믿고 기다려주기. 되면 좋고, 안되면 자기가 안된다는 걸 스스로 깨달을 테니 앞으로는 쓸데없는 짓 덜 하겠지. 누구나 그럴 것이다. 스스로 깨달아야 변한다.




세면대가 막혀도 일주일 정도 불편하게 지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부탁하기. 내가 너 때문에 한국 생활 다 포기하고 이민까지 와서 이 꾸진 집구석에서 사는데 이런 건 네가 더 신경 써야지 하는 베베꼬인 마음을 쫙쫙 피고. 여보 당신이 나중에 시간 날 때 세면대 좀 고쳐줘. 하면 예전에는 일주일 요즘에는 2-3일 안에는 고쳐져 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점점 더 빨라진다.


물론 고쳐놓고 엄청 생색내긴 한다. 예전에는 당연히 고쳐야지 안 그럼 어떻게 살라고 하는 나의 쭈구리 마인드였지만 지금은 다 펴놨다. 화장실 갈 때마다 세면대 물 진짜 잘 내려간다~ 벌써 고쳤네! 이렇게 빨리 고쳐줘서 정말 고마워! 화학약품 썼을 때보다 훨씬 더 뻥 뚫린 것 같아!! 수리기사 부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야! 나도 세면대 깨끗하게 청소해둘게! 당신 덕분에 이제 걱정 없다! 예쁜 말만 입 밖으로 꺼내기.




어제와 엊그제는 샤워실 전등과 세면대와 옷장 문과 변기 청소까지 남편이 일사천리로 처리해줬다.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 할 일. 나를 위해 해준 일.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남편만의 방법.


그게 어제의 보석이었다. 예전에는 단점이었던 것을 내가 바뀌니 장점이 되었다. 옛날에 너무 싫어했던 그래서 많이 싸웠던 일들이 좋은 기억으로 덮어진다. 불안하고 예민했던 내가 조금 더 여유롭고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고슴도치 같았던 내가 함함해진다. 그렇게 나를 치유한다.










우리가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친해졌던 순간도 화장실 전구 덕분이었다. 당시 기숙사에 입실하고 며칠 안돼서 화장실 전구가 나가버렸고, 이 천하태평 하와이 사람들은 2-3주 안에 고쳐준다고. 기숙사비로 얼마를 냈는데!! -_- 야밤에 핸드폰 플래시 켜고 샤워하다가 맨 몸으로 벌레를 마주하는 그 공포란 ㅠㅠㅠㅠ 특히 플래시 때문에 그림자가 엄청나게 크게 나타났던 거의 공포영화 급 소름이다. 물에 닿으면 훨훨~~~~~ 좁은 샤워실 안이라 문도 다 닫혀있어 더 무서웠던... 


당시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남자인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때도 별 도움이 안 됐었던... 그래도 360도로 빛나 오는 손전등을 구입해서 나름 잘 썼다. 남편은 그때도 태평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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