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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l 11. 2022

나쁜 남편을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무엇이 남편을 나쁘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생각하게 하는가

By all means marry; if you get a good wife, you'll be happy. If you get a bad one, you'll become a philosopher.
 - Socrates




연휴 후 첫 출근. 버스를 탔는데 한국인 남녀 세 쌍이 나란히 타 있네 ㅜㅜ 놀러 왔나 보다 부럽다. 나도 남편 있는데 우리 남편은 집에서 주무시고 계시는구나...


무엇이 내 남편을 그렇게 악인으로 만드는가?


나는 돈 벌러 출근하는데 집에서 곤히 자고 있어서? "아이고~ 잘생긴 우리 남편 쌔근쌔근 잘도 자네~ 불면증 있어서 괴로운 것보다 낫지!"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민까지 와서 적응하려고 애쓰는 자기는 자기네 나라에서 살면서 내 어려움을 몰라줘서? "그래도 적응하고 있다. 새로운 경험 많이 했어! 스펙 쌓았다"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결혼해도 외로움에 몸서리치는데 자기는 자기 일이 더 중요하니 와이프는 나 몰라라 해서? "매일 밤 귀가하는 남편, 그래도 혼자 살 때보다 누군가가 있으니 좋다"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행성인 우리 남편 귀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그 음악을 속삭여주고, 새벽같이 아침 햇살 눈부심에 깨워준다면, 남편은 행복할까?


어느 작은 우체국 앞 계단에 앉아 있는 나에게 푸르지아 꽃 향기를 남편이 안겨준다면 행복할까? 아니 애초에 우체국 앞에 앉아 있을 일이 없지 ㅋㅋㅋ




<오은영 리포트 결혼 지옥>




10대에 50대 아저씨와 결혼해서 아들 셋 낳고 20년 넘게 살 수 있을까? 늙고 못생기고 누더기 입고 광장을 떠돌아다니는 남편에, 독박 육아, 독박 살림, 독박으로 돈까지 벌어와야 한다는데 불만 없을 아내가 있을까? 나이 서른에 남편의 재판에 옥살이에 뒷바라지하며 소신을 위해 기꺼이 사형당하는 그를 지지할 수 있을까? 갓난아이를 들쳐업고 뛰쳐나가 남편을 위해 통곡할 수 있을까? 방황에 외도에 불륜에 동성애에 소아성애까지 온갖 추문을 달고 다니는 남편, 집에도 안 들어오고 밖에서는 호인인 척 나를 악처로 만드는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의 친구 손자와 정략결혼, 나의 외모에도 만족하지 못하지만 착해서 아무려나 같이 산다는 남편, 나의 이름에도 만족하지 못해 개명까지 시켜주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했을까? 나에게는 무심하고 이야기도 안 해주지만, 외도를 일삼는 사람. 경제적 실패와 사회적 무력감에 알코올 중독이 된 남편 대신에 딸 둘 아들 셋 건사하며 살기 힘들었겠다. 나와 혼인상태에서 남편이 헤어진 전 연인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가 문학으로 인정받고 교과서에 실리고 수능 문제에 나와 전국 방방 곳곳 대대 손손 외우는 작품이 됐다면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천재적인 수학자, 제2의 아인슈타인, 희대의 난제를 풀어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서 불안과 정신 분열을 앓고 있다면 그래도 남편 곁을 지킬 수 있을까? 경제적 사회적 차이가 난다며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전 연인을 버린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대화도 안 통하고 감정적인 교류도 없고 정서적인 지지도 못 받으며 수 십 년의 인생을 그렇게 외롭게 살 수 있을까? 그러다가 노벨상 수상할 때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모든 이유는 당신이오. 감사합니다." 해준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래, 노벨상이라도 받으니 다행인가?


결혼 전부터 부부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며, 도박, 문란한 성생활, 사생아 등을 고백하며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라고 강요한다면 파혼하지 않고 결혼할 수 있을까? 외도와 불륜이 끊이지 않았으면서 금욕을 설교한다면 그 이중성을 보며 남편을 존경할 수 있을까? 여자란 남편의 행복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존재라는 둥 사유재산을 반대하면서 아내에게는 돈돈돈 거리는 둥 내로남불 남편과 함께 살 수 있을까? 남편은 글 쓴다며 처박혀서 나 혼자 집안일 바깥일 8명의 자식까지 일평생 뼈 빠지게 건사했는데, 나보다 젊은 청년, 그것도 남자에게 혹해서 돈이고 마음이고 갖다 바치고 유언장까지 고치고 가출해버리는 남편 때문에 내가 신경쇠약이 왔다면? 그래도 사후에 남편을 명예롭게 하는 데 헌신할 수 있을까?




역사는 참 가혹하다. 결혼은 그렇게 잔인하다. 그 어느 대인배 보살님 성인 박사님이라도 이혼하라고 할 듯.




<결혼과 이혼 사이>




<우리 이혼했어요> <돌싱글즈> <결혼 지옥> <결혼과 이혼 사이> <체인지 데이즈> 매운맛 리얼 예능 마니아.


그래도 많은 경우 이별보다는 사랑을 택한다. 결혼을 유지하기로 선택했다.


이별이, 이혼이 쉽지 않은 결정인 것은 당연하겠지. 그리고 사실 여전히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들의 문제를 구차하게 위안 삼을 필요도, 타인의 불행에 비판할 자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기로 한 그 마음을 응원하고 싶다... 어쩌면 나의 모습일지도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든 연인에게는 모든 관계에서는 그 만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없을 수가 없다.


매운 라면 맛인데, 신라면 맛인지 진라면 맛인지 너구리 맛인지 육개장 맛인지 핵불닭 맛인지 차이. 우리가 일 평생 라면 하나만 먹지는 않으니까. 이 문제 저 문제 겪으면서 계속 살아가는 거다.




http://mbtisaju.cafe24.com




아니 이거... 결국엔 데스티니...? 내가 어느 누구와 결혼을 하든 첫 결혼은 불리한 형세였을 라나?


그러면 이게 누구의 잘못인가? 누가 나쁜 사람인가? 우리 남편은 그냥 나의 첫 남편이 되어 악인으로 누명을 쓴 걸까?


남편이 비슷한 성향의 사람과 결혼했다면 아무 문제없이 살았을까?

남편이 남편보다 더 바쁜 사람과 결혼했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고 해주지도 않는 남편의 행동이 고마워지지 않을까?

남편이 나보다 더 잘 표현하고 더 잘 대화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면 평화롭게 싸움 없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지 않았을까?


나는 남편을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남편을 어제보다 오늘 덜 미워할 수 있을까?


아, 남편아! 부르다가 내가 죽을 너의 이름이어!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서도 설움에 겹도록 내가 부르노라








p.s.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의 의도는 좋은 거였어

이게 왜 내 잘못이 되는지 이해가 안가

네가 상처받을 필요 없어

상처받은 네가 잘못된 거야


-> 너의 상처받은 마음은 잘 알겠어

-> 네가 상처를 받았더니 나도 마음이 아파

-> 나는 네가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너에게 괜찮았으면 좋겠지만 네가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겠어

-> 다른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구나


-> 그리고 네가 지금 나에게 이러이러한 걸 원하는 것도 알아

-> 하지만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기는 싫어

-> 내가 당장 너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려고 진심이 없는 빈말로 너를 위로한다면 지금 당장은 넘어갈 수 있겠지.

-> 하지만 나중에 내가 선택을 해야 될 상황이 왔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선택이 네가 바라는 상황과 다를 수도 있잖아.

-> 그러면 너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더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

->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

-> 너에게 상처 주는 건 더 싫어

-> 나는 단지 나의 선택을 존중받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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