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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l 08. 2022

남편은 남의 편도 아니고, 큰 아들도 아닙니다

To me. 이거슨 나에게 하는 말

우리 남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 겨우 어느 정도 안정됐나 싶은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인간.


누군가라도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싶다.

어딘가에라도 정착하고 싶고, 어딘가로라도 돌아가고 싶다.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랬나. 그래 차라리 남이 낫다 남이 나아, 싶은 순간이 있다. 서럽고도 서글픈 그런 날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게 최선이겠지 하다가도 울컥하는 마음.


이혼 당시 법원에 조차 나오지 않아 서러웠던 지연수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까지 이동거리며 시간이며 비용이며 한국에 오지 않았던 일라이 마음도 이해된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공감받고 싶어서 자꾸 과거 이야기를 꺼냈던 지연의 마음도 이해 가고, 과거는 잊고 미래를 위해 좋은 이야기만 하자던 일라이의 마음도 이해 간다.




그래 결혼기념일, 그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서러웠나. 그냥 1년 중 하루인 것을. 우리가 그날 결혼식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서류에 사인한 날이 아니더냐. 1년 내내 대면대면 살다가 갑자기 결혼기념일이라고 사랑이 샘솟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나는 왜 결혼기념일이 그렇게 특별해야 한다고 믿었을까? 어차피 원래도 데이트도 안 하는데 그렇지만 그날 하루는 뭔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을까? 


아침 일찍 혼자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혼자 밥 차려 먹고 혼자 잘 준비하고, 밤늦게 집에 오는 남편을 반길 줄 아는 그런 애교쟁이 아내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해보기도 하고 노력도 했지만 뭐 어쩌겠냐. 내가 바랐던 신혼생활은 그게 전부가 아닌걸.


각자 할 일 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그러는 와중에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그런 사랑이 넘치는 커플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을 수도 있긴 하지만.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시간이 안 날까. 아니 결혼기념일까지 따로 보내면 대체 언제 시간이 날까?




와이프가 교통사고가 나도 연락이 안 된 걸 어쩌겠냐. 미안하다고 했는데 거기서 더 뭘 어쩌리. 그 뒤에 다친 사람 지극정성으로 잘 보살펴 줬으면 된 건가? 그럼 나는 서운해할 것도 없는 걸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기 때문에 이민까지 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외지인으로 살고 있는데! 내가 교통사고 나서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이 망망대해에 아는 사람 자기밖에 없는데!!! 내가 여기서 객사한다고 해도 우리 부모님조차 며칠을 모른 채 지나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래 늦게까지 일하고 겨우 잠들어서 핸드폰 꺼놨을 수도 있겠지. 불가능한 건 없다. 이미 벌어진 일.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며 여기 있는데!!


아 맞다 우리 남편은 나를 너무나도 존중해줘서 내가 내린 선택, 나의 감정이므로 나의 책임이라고 하는 분이시지...


참 나 같으면 남편이 한국 와서 산다면 적어도 교통사고 날 때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거기로 갔을 텐데. 그래 가상현실과 비교해서 무엇하리.


그러네, 나는 왜 여기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냥 갈라 서는 게 더 나을까? 나는 그러면 더 행복할까? 차라리 혼자가 덜 외로울까?





You can't spell smother without mother in it.




결혼 초, 나는 남편이 그날그날 입는 옷에 불만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정말 같이 다니지도 않을 만한 옷들, 어디 좋은데 못 데리고 갈 옷들... 그 후줄근한 옷차림이 신경 쓰여 자꾸 새 옷을 사주고, 좋은 옷을 입으라고 잔소리했다. 


그렇다고 내 눈이 높냐, 그건 절대 아니다. 나도 패션이나 유행은 잘 모른다. 그냥 정말 기본적으로 낡은 옷은 골라서 버리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라. 구멍 난 옷은 외출할 때 입지 마라. 사이즈 안 맞는 옷은 버려라. 이 정도.




나는 왜 남편이 거지같이 하고 다니는 게 싫었을까? 내 남편이라 멀끔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을까? 그래 옷차림이 그렇게 중요할까 


하지만 눈이 펑펑 오는 날에 반바지 입고 맨발에 슬리퍼 신고 다녀도, 한겨울에 입을  옷이 없다고 린넨 바지를 입어도, 구멍이 뿅뿅 뚫린 옷을 입어도, 아무 말도 안 하고 너의 패션을 존중할 수 있을까?


남편은 남편의 선택권이 있는데. 자기가 입고 싶은 걸 입을 자유가 있는데. 내가 옆에서 다섯 살짜리 아이 옷 입히듯 참견하면 잔소리로 들리겠지. 그럼 결국 남편은 내 큰아들이 되고 나는 잔소리하는 엄마로 스스로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남편은 나의 큰아들이 아닙니다. 나는 남편의 엄마가 아닙니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아들일 뿐입니다. 멀쩡히 살아 계시는 시어머니 자리를 내가 빼앗을 필요는 없습니다. 남편의 엄마는 시어머니입니다. 나는 시어머니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남편을 아들처럼 대하면 안 됩니다.


나는 남편에게 아내로서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지, 어머니로서 사랑받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모성애는 내 자녀를 위한 마음이지, 남편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편의 역할을 해낼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내가 엄마 역할을 자처하며 남편이 나를 연인으로 사랑해달라는 건 불가능하다. 엄마를 연인의 감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는 애초에 정상이 아닐 테니까.


내가 나의 감정에 대한 설명도 없이 혼자 실망하고 상처받아 있으면 사이가 더 멀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 나는 지금 뭘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걸까? 




남편이 남편이 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남편이 내 편이 될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한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보내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잘 보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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