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Jul 13. 2022

개 같은 사랑

있는 그대로, 지금 너의 모습을 사랑해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는 시방 외로움에 사무치는 멍멍이다. 사람 좋아해서 쫓아다니다가 발길질당해도 꼬리 흔드는 개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서로를 쳐다보며 같이 대화한다거나 일주일에 한 번 산책 가거나 외식하거나 같이 외출만 나가도 행복해할 사람. 강아지 산책시키듯이 하루 10분 만이라도 관심 주면 꼬리 치며 좋아할 사람이다. 


예를 들어서 매주 금요일마다 와이키키에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집 앞 공원에 그거라도 보러 같이 나가는 게 소원인... 주말에 어차피 일 할 거라면 같이 노트북 들고 카페라도 가서 앉아있기라도 했으면...


무심한 남편과 살면서, 아는 언니가 뒤통수 예쁘다며 머리 쓰다듬어주기만 해도 설레고, 한 시간 전에 연락해도 부르면 나가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잘하고 있다 힘내라 하는 위로에도 울컥한다. 완전 주책. 




그런데 우리 남편은 그걸 안 해주는 사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바란 것도 아닌데 고작 그것도 못 해주는 사람. 


각자의 인생, 개인의 선택 그리고 책임, 독립된 감정, 분리된 인격체.


그래서 내가 불꽃놀이가 보러 가고 싶다면 언제든 흔쾌히 "잘 다녀와~ 재밌게 보고 와~" 해줄 사람. 내가 한국 가느라 한 달을 떠나 있어도 "잘 다녀와~", 내가 뜬금없이 여행을 가도 "좋겠다~ 잘 다녀와~" 해주는 사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너가 원하는 삶을 살아"

"나는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연락이 없으면 없는 대로 본인이 생각날 때 연락을 남기고, 연락에 집착하면 집착하는 대로 본인이 시간 날 때 답장해주는 그런 사람.


주인으로 치면 방목형 주인. 목줄을 채우지 않는다. 머나먼 산골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처럼, 마음껏 돌아다니도록, 보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도록 놔두는 스타일. 배고플 때 먹도록 음식은 채워놓지만, 한두 달 집에 안 들어오더라도 굳이 찾아 나서지는 않는, 그러다 어느 날 짠 나타나면 너무너무 반가워해주고 예뻐해 주고 사랑을 주는 그런 반려인.




반면에 나는 내 목에 셀프로 목줄을 건 강아지. 산책 줄을 물고 주인에게 가서 헥헥거리며 기다리는 중. 영원히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중.


그런데 나는 내가 목줄을 걸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계속 목줄을 못 푸르고 스스로를 속박하는 상태이다. 왜냐하면 내가 알던 일 평생의 삶은 목줄에 걸려 있는 그런 상태밖에 없었으니까. 산책 줄이 길든 짧든 어쨌든 나의 행동반경이 정해져 있긴 했으니까. 사회라는 앞마당에서 직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정이라는 집에서.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줄을 끊고 뛰쳐나가려 하질 않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염원하던 완벽한 자유가 아닐까? 


나는 사실 행복한 게 아닐까? 그런데 내가 프레임을 쓰고 나의 인생을 보고 있는 걸까? 나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천천히 이뤄가는 데도, 남편에게 불만일까? 


차라리 남편이 이런 글 쓰지 말라고 속박한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이런 글 따위 안 쓸 테니까 금요일마다 산책 나가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건 남편과의 시간이니까... 


"글도 쓰고 산책도 가고 싶으면 가~" 혼자서 하면 할수록 혼자라는 사실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그만큼 남편이 바빠야 할 상황이라는 걸 아니까, 그게 저 사람의 최선이라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글들은 내가 스스로 목줄을 빼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그런 마음의 준비.

그래 내가 너를 견뎌내야 하는 만큼 너도 나를 참아내야 하겠지.




사진: 구글 검색 시고르자브종




우리 남편은 정말 솔직하다. 자신의 진심을 표현한다. 


"너의 감정은 너의 책임이야" (자신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미안하지 않음 왜냐면, 감정의 원인은 상처받기로 선택한 나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뜻)


"네가 이민 온 건 너의 결정이야" (자신의 일 때문에 선택지가 없었지만 이별하지 않고 결혼과 이민까지 모두 나의 선택, 즉 자신에게 보상심리를 바라지 말라는 뜻)


"자신의 행복은 자신만이 충족할 수 있어" (결혼했다고 남편이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무조건적인 의무는 없다는 뜻)




그래 맞는 말이다만... 사람이 어디까지 솔직해야 좋을까? 




어떤 사람은 결혼 이민을 준비하며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예비 남편이 수천 만원의 빚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결혼 직전에 예비 남편에게 전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을 왜 숨겼냐고 한국에서는 혼인취소사유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과거니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신이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상대에게 상관이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 기록은 삭제됐고 수입이 훨씬 더 크니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을 수도 있고, 그래 미국인이라 개인적인 일들은 프라이버시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도 경제적인 상황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민까지 온 아내가 자신의 나라에서 아직 크레딧를 쌓지 못해, 가족카드로 신용카드를 같이 만들자고 해도 거절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각자 생활비를 각출해서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니까 독립된 경제 관리를 할 수도 있지만... 그래 그만큼 재산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각자 관리를 더 잘할 수도 있으려나


어떤 사람은 차려주는 밥만 먹고 집 안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남편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가게 경제를 책임지니까 철저하게 분담하여 전업 주부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집안일이 적성에 맞아 하고 싶어서 할 수도 있고, 내조를 잘해주고 싶은 아내의 마음일 수도 있고...




우리 남편은 결혼생활에 충실할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바꾸면서까지 아내가 원하는 대로는 해줄 수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선을 그었다. 


생활비를 각출해도 저녁에 남편 밥 차려주러 집에 들어가야 한대도 시댁과 마주칠 일이 많아도, 아내랑 시간을 더 많이 보내주는 남편, 나는 그런 생활이 더 좋을까?


차라리 처음부터 가족사 등을 자연스럽게 숨기지 않고 다 얘기하는 게 더 나을까? 오히려 그게 더 구김살 없고 열등감에 자격지심 없는 행동일까? 


차라리 밥이라도 자기가 알아서 해 먹고, 물건은 제자리에 갖다 놓고, 깔끔한 성격이 나을까?  집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치워야만 하는 상황이 나을까, 넓은 집이라 조금은 어질러놔도 괜찮은 상황이 나을까?


차라리 가난을 모두 오픈하고 솔직하게 설명하며, 지금은 돈이 없지만 이런저런 준비하는 과정에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이미 비전 있는 일을 하고 있어서 빚도 자산으로 잘 관리하고 융통하는 게 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유지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니까. 사랑은 위대하니까.


사실 이런 비교가 불필요하다. 사람일은 모른다. 냄비 뚜껑 열어보면 다 끓고 있을 것. 각자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나도 다 알고도 선택했다. 




다 그렇게 산다. 알면서도 모른 척 잘못하며 살아간다.
-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하얀 마음 백구>




추신. 강아지는 사랑입니다. ❤️


강아지는 주인이 자기를 버려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가 주인을 잃어버렸다고 자기 탓을 한다던데 ㅠㅠ 주인 찾아 삼만리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 찾아다니는 강아지도 있고 오죽하면 게임까지 ㅜㅜ 


그런 무조건적인 신뢰는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아직 나는 강아지만 못하다 남편 탓을 이렇게 하고 있으니. 


개 같은 사랑.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마음. 항상 곁에 있어주고, 울고 있으면 가서 안아주고, 뭔가를 하고 있으면 옆에서 지켜봐 주고, 나가면 하루 온종일 그리워하고, 같은 보폭으로 걸어가는 그런 관계.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남편을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