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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l 14. 2022

내가 외국인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순간

내가 남편을 선택한 이유를 항상 기억하기

우리는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 결혼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잠정적으로 헤어졌다. 사실 오늘부터 1일이라고 정해놓고 사귀지도 않았다. 연인처럼 친구처럼 그렇게 지내다, 나는 장거리는 못한다고 선언하고 한국으로 갔다. 남편은 "나는 너와 함께하고 싶지만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장거리 연애가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바로 수긍했다.


남편은 그래도 연락이 끊기지는 않았다. 한국식으로 매일 매 순간 문자를 하고 핸드폰을 붙잡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루를 시작하며 인사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전화통화를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남편의 최선이었으리라.


반년이나 지났을까, 연애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었던 이런 관계에 점점 지쳐갔고, 당시 작은 회사에서 일하느라 스트레스받아서 나는 퇴사와 이별을 동시에 질러버렸다.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는데, 잘 해결책을 찾아서 조율했으면 됐는데... 당시에는 그게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참고 참고 참다가 손절해버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기. 굉장히 미숙했다는 걸 지금은 안다.


한결같은 우리 남편은 "그게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거라면 존중할게"라고 해줬다. "친구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든 연락하라. 기다리고 있겠다"고도 해줬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정말 운명의 장난 같게도 나는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무슨 일이 생기면 남편부터 생각이 났다.

내가 얼마나 쪽팔린 짓을 해도 나를 평가하지 않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재밌는 경험이었겠다" 해 줄 사람,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일에 삽질을 해도 "괜찮아 나중에 다 의미 있는 일이 될 거야" 해 줄 사람,

내가 퇴사를 해도 "고생 많았어 네가 자랑스러워" 해 줄 사람,

그래서 내가 이직한 회사에서 만족하고 잘 다닌다면 누구보다 더 기뻐해 줄 사람.


그래서 나는 두 달도 안돼서 남편에게 다시 연락했다. 그리고 남편도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반갑게 답장해줬다. "네가 분명히 해낼 줄 알았다. 너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하는 일을 회사에서도 고맙게 생각할 거다." 이렇게 예쁜 말을 해주는 사람.


야야 다 그렇게 산다.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헬조선이다. 어차피 퇴사하러 다닌다. 월급 수혈받으면 괜찮아진다. 고객이 왕이다.

이런 자조적인 말들만 듣던 나에게 남편의 예쁜 말은 정말 신선하고 중독성 있었다.


그다음 해 초에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로 했고, 봄에 여름에 남편이 한국에 왔고 가을과 겨울에 내가 미국으로 갔다.







그렇다고 우리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로 끝나지는 않았다.


우리는 결혼 직전까지 계속 싸웠고 결혼하고 나서도 제3차 대전 급으로 싸웠다. 그렇게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과 싸울 일이 뭐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말을 예쁘게 하는 것과 정서적으로 공감의 대화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솔직한 남편은 절대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았고, 정서적으로 사랑과 관심에 목말랐던 나는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했다. 더하여 문화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 개인차이 등등 우리는 비슷해 보여도 참 많이 달랐다.




나는 남편을 만나면서 진정으로 기가 센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주위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꿈쩍도 안 하는 사람. 강철 멘탈. 외유내강.


부산으로 놀러 가는 기차 안에서 대판 싸웠던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중간 역에서 한국말 못 하는 남편을 혼자 두고 내려버렸다. 보통은 같이 따라 내려줄 만도 한데 남편은 그대로 가버렸다. 이제 와서 보면 뭐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당시 내가 내렸으면 안 된다는 건 알겠다. 내가 남편을 보러 미국까지 갔는데 남편이 기차에 나 혼자 덜렁 놓고 내려버리면 정말 세상 서러울 것 같다...


나는 왜 그 기차에서 내려버렸을까? 남편과 기싸움을 하고 싶었을까? 내 말에 남편이 따라주길 바랐을까? 나는 남편에게 무엇을 바랐을까?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이 맞춰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 내가 마음 상하면 달램을 받는다는 게 당연해서 그랬을까?







남편은 자존심 싸움하지 않고, 눈치 게임하지 않고 표현한다. 진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듣기 힘든 말도 예쁘게 해 준다.

즉, 다시 말하자면 절대로 빈말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며, 자기가 해야 할 말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뜻.


그러니까 내가 듣고 싶은 예쁜 말을 남편이 꿀 발라서 해줄 때에는 정말 듬직하고 기댈 수 있는 남편이 되어주지만, 내가 듣기 힘든 말이나 듣기 싫은 말을 할 때에는 아무리 꿀 바르더라도 직설적인 의미가 전해지면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남편은 자신의 가정사와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줬고, 전 연인에 관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남편이 하는 말을 내가 내 식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솔직하게 얘기를 하긴 했는데, 나의 한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 것. 수없이 돌려 본 미드 프렌즈에서 미국인들은 저렇구나 아무리 봐도, 실제 내 남편이 될 사람도 비슷할 거라 생각을 못한 것. 그냥 내가 남편을 유교 걸의 상식선 안에서 생각하고 그렇게 믿었다가 나의 믿음에 배신당한 것이다.


'썸'이나 '데이트'라던지, '좋은 친구' 사이라던지, '연인'이나 '부부' 관계, 로맨틱한 감정, '사랑'한다는 표현 등이 갖고 있는 의미와 무게감. 단지 내가 생각하는 정도와 남편이 생각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 더 넓게 봐서 그 단어의 뒤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감, 미래를 담보로 하는 약속, 서로에게 바라는 기대치나 희생 등 그 깊은 뜻의 유무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실제 그런 단어들이 사용될 때는 몰랐다. 서로 오해했다.




만약 한국에서 경제적으로 준비가 덜 된 상황이라면 결혼하려는 상대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는가. "내가 아직 사회생활 한 지 얼마 안 돼서 이 정도밖에 못 모았어. 미안해. 결혼하면 너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게 내가 더 노력할게" 같은 말 해줄 수 있지 않나?


남편은 "자신은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경제적이든 능력이 어느 정도이다" "나는 검소하게 생활한다" 이렇게 공개하고 끝이었다. 사실 남편이 미안해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자기는 이렇다고 솔직하게 말해주고 그런 자신과 함께 할지 안 할지 나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나은 걸까? "내가 이렇게 변할게" 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것보다 나을까? 차라리 그게 현실적일까?







남편은 내 선택에 내가 책임을 지게 만들어준다. 그동안 철없이 굴었던 나의 행동들을 반성하게 되고, 감정에 치우친 나의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만약 지금 우리 남편이 아니라 나에게 전적으로 맞춰주는 남편을 만났더라면 이러한 내면의 성장은 없었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나를 돌아보기를 거부했더라면 남편의 이런 행동은 가스라이팅이라고 치부해버렸을 수도 있다. 어차피 그냥 이혼해버리면 끝이니까 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 수도 있다.


남편은 나에게 슬픈 소식이든 기쁜 소식이든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존재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도 그런 사람이 남편에게 되어 주고 싶은데, 내 마음은 왜 이리 요동 칠까?




"몰랐으니까 결혼했지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알아도 다시 남편을 선택할 것 같다.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살아온 것보다 남편을 만난 3년 동안 나는 더 성장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남편에 대한 불만들도 사실은 원인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내가 그 불만들을 잘 소화하고 이해한다면, 나는 더 큰 사람으로 또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남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그 순간을 잘 알아채서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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