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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l 16. 2022

어쩌다 (한국인 와이프를 둔) 외국인 남편

문화 차이를 경험하며 알게 된 내 속의 한국인

우리가 세상이 떠나가라 뜨겁게 싸울 때도 그렇고, 싸늘하게 식어 냉전이었을 때도 그렇고, 사이가 좋아 헤헤 웃다가도 문득 그렇고, 화해하려고 얼싸안고 엉엉 울고 나서도 흠칫 그럴 때가 있다. 아직도 그런다. 아마 앞으로도 많이 그럴 거다.


그러니까 이 글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렇게 뼛속부터 다른지 깨닫게 된 경위를 적어보려 한다. 나중에 내가 다시 읽고 상기받기 위하여.




이 사람은 도!대!체! 왜!!!!! 그러지????? 미국인이라 그런가? 유럽계 어디라 그런가? 미국 본토 어디 출신이라 그런가? 혈액형이 무슨 형이라? MBTI가 뭐뭐라? 남자라? 몇 년생이라? 사주팔자가 그런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한국 사람들이 나와 똑같지 않듯이, 남편도 세상에 알려진 미국인에 특성에 국한되지는 않겠지. 그냥 그 사람이 그랬던 것이고, 그런 남편을 안고 가느냐 각자 갈 길 가느냐,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라는 걸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이 인간은 왜 그럴까 정말 많은 공부를 했다. 미국인이니까 영어 자료로 검색하고 이해하려고 했는데 사실 이론적으로는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행동으로 옮기고 문장 표현을 고치고 표면적으로 변화할 수는 있었다.


그러니 이 인간이 좋아한다? 이게 남편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나에게는 어색하고 이해가지 않는 이 행동들이, 이게 남편에게 편안하게 다가오는 거였다? 정말로? 왜?! 어떻게?




그러다가, 반문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러지? 한국인이라 그런가?


내가 해외생활을 학생 때부터 일찍 시작했던, 외국인 친구가 얼마나 많던, 사고방식이 얼마나 열려있든 간에 나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외국에서 살면서, 외국 방식과 부딪히면서, 외국인과 갈등을 경험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 사실이었다. 밖에서만 보이는 그런 차이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보니 알게 되는 속 깊은 차이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속 터지는 자잘한 사건들.


사실 우리 가족과 다 같이 해외에 나가 살아도 그만큼의 타격이 없었다. 남편과 연애할 때만 해도 문제 되지 않았다. 우리가 동거를 했다면 그 차이점을 조금 일찍 발견했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결혼을 선택했을까? 결혼이란 게 그렇게 심오하다. 정말 지독한 사랑을 해야 함께 살아가는 거구나.


나의 세상,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믿었던 삶의 방식과 그 믿음을 바탕으로 했던 존재적 가치를 끊임없이 시험당하지 않으면 몰랐을 이야기.

타인에 의해 부정당하고, 정당성을 의심받지 않는다면 존재하는지 인식조차 못했을 내 신념과 그 핵심 가치들.

갈등이 휘몰아치고, 최소한의 상식선이 무너져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본능적인 방법과 그 접근성에 차이들.


그렇게 내 온 세상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 안에 있는 나의 근본에 다다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있는지도 몰랐던 심정,

생활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문화,

그동안 내가 상당히 의지하고 나를 지탱해줬던 그 정서.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아, 그랬다 나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유레카 같은 깨달음을 준 책과 강연 <어쩌다 한국인> 찐 한국인이 적은 찐 한국인 이야기.


나에게 너무나도 당연해서 나의 생각이나 감정이 나에게는 기본값인데, 그게 정답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성질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책. 복잡하고 오묘하고 애매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한민족 종특을 여러 가지 예시와 시대상을 통해 보여준다.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그런데 한 가지 함정은 나는 이 강의를 결혼 전에 분명히 봤다는 것. 그때도 피상적으로 이해는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다시 이 강의와 책을 접했을 때의 희열이란! 진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컥함, 뒤통수를 세게 치는 대 반전!!! 타 죽을 걸 알고도 불길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나였나? 그러니까 결국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것이다.




1. 주체성 2. 가족 확장성


한국인 빨리빨리! 안되면 되게 해라! 정신일도 하사불성! 


내가 남편을 답답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내가 보기에 빨리빨리 할 거 하고 빨리빨리 이직하고 빨리빨리 이사 가고 하면 될 텐데 그걸 안 한다고 한심하게 본 것이다. 뭐 하는 것도 없어 그렇다고 와이프랑 시간을 보내지도 않아 대체 뭘 하냐고 원망한 것. 


앉으면 삼천리 서면 구천리가 보이는데!!!


그리고 나는 남편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나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더 잘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수면 패턴을 약간만 조정하면 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조금의 의지만 있었다면 산책이라도 갈 수 있을 텐데, 그런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남편으로 인해 나는 매일 하루에도 열두 번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정당화될 수 없는 좌절의 연속으로 분노가 쌓였던 것 같다. 정당화되지 않는 남편의 행동, 핑계만 대고 농땡이 부리는 남편의 행동, 분명 시간이 많았는데 잘 거 다자고 놀 거 다 놀고 쉴 거 다 쉬고 남는 시간에 일하는 그 행동... 나에게는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남편의 변명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이 나를 떠나 남편이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 이 됐다. 그렇게 실제 남편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내 기준에서 '더 나은 판단을 주체적으로 내리기'보다 상대의 판단을 존중해줘야 할 때이다.




3. 관계주의 4. 심정중심주의


우리는 신혼 초반 정말 많이 싸웠다. "한국에서는 안 그래!!!" "미국에서는 그래!!!" 


그런데 사실 한국 안에서도 다르고 미국 안에서도 다르다. 그냥 서로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하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친 것일 뿐... 


그런데 이 불통에서 나의 원인을 알겠다. (남편의 원인도 골백번을 말하겠지만 어차피 그는 안 들으니까) 나는 '상호반응적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남편이 하는 말은 이성적으로 보자면 대부분 맞는 말이다. 실제로는 더 부드럽고 꿀발라서 말했는데 내용에 충격받아 뭐라 말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요점은 이거


"네가 이민 오기로 선택했다. 너의 선택에 대해 나에게 보상을 바라지 마라"

"너의 행복은 너의 책임이다. 네가 스스로 행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의 외로움은 네가 해소해야 한다. 내가 책임져 줄 수 없다. 나가서 친구라도 사귀어봐라"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결혼했다고 나라는 사람을 억지로 바꿀 수는 없다." 


내가 바란 건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외롭게 해서 미안해"

"내가 더 노력해볼게"


그러니까 나는 감정을 호소했는데 남편은 이성으로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감정은 그렇게 무시했(다고 느끼게 만들었)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꼭 말해야 하고 거기에 내가 반응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감정적인 독립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부부라면 일심동체 서로 마음이 통하고 서로의 감정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남편은 '교류'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감정을 표현만 하는 것.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기대 없이 표현만 하고 끝. 


그런데 나는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었다 상대의 반응을 종용한 것. 내가 이제까지 알던 관계는 감정적으로 상호의존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남편에게는 내 감정을 자신에게 덤핑 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자신에게 불필요한 책임과 의무를 지우니 그게 부담일 수도 있겠지.




보통 행위 자체를 중요시하는 서양에 비해서 한국은 행위보다 마음을, 그 행위의 진의를 더욱 중요시한다.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이 책에서 나오는 예시도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형식적으로라도 사과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우리 남편도 "미안해" 한 마디만 하면 덮고 넘어간다. "야 미안하다 됐냐?" 이래도 넘어간다.


그런데 나는 남편이 "네가 그렇게 느꼈으면 유감이야." 이런 식으로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면 그게 그렇게 듣기가 싫고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이 꼴도 보기가 싫어진다. 네가 그렇게 행동해서 내가 상처받았다는데! 그딴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는 받기 싫어하고 거부하기도 했다.


상대가 설명하는 그대로 표면적인 의도만을 인정하고, 보이는 행동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어떤 의도가 깔려 있는지', '다른 진의가 있는지' 그만 고민하기.




https://brunch.co.kr/@kim0064789/36




5. 복합유연성 6. 불확실성 회피


우리는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 포기를 싫어하고 선택을 회피하면서 오히려 선택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래서 모든 걸 두루두루 잘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한국인의 복합 유연성 때문이다.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사회에서는 야근이나 회식이 하나의 직장 문화로 자리 잡았고, 일개 직원에게는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실제 업무가 아니고 수당을 받지 않더라도 업무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도 가정을 위해 일하는 거니 

"어이구 술 좀 그만 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와"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미워도 하고 싶지만 고마운 마음도 드는, 희생도 하고 싶지만 인정도 받고 싶은, 나를 위해서는 안 하겠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 해줄 수 있는... 그런 양가감정. 그런 '모순되는 감정'이 나는 사실 모순된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남편이 일도 잘했으면 좋겠고 나에게도 좋은 남편이었으면 좋겠다. 만약에 남편이 "우리"가 미래에 더 잘 살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라고 "우리"를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했으면 나는 받아들이기가 더 수월했을 것 같다.


내가 이민을 온 것도 우리를 위해서이고, 내가 직장을 다니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이고,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개인주의 남편은 일을 해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이다. 남편의 하루 시간은 24시간인데, 남편 입장에서는 한정된 시간 안에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남편은 나와 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 개념'인 걸까? 


문제는 나는 남편이 의지만 있다면 더욱 '조화롭고 유기적으로' '보완적이고 의존적인 관계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의 일에 '도움'을 주고 싶어 이리저리 나선 적도 있었는데 남편이 정말 싫어했다 ㅋㅋㅋ


나와 일 둘 다 '두루두루 잘' 하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하는 나

하나를 정확하게 선택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나는 인지부조화인 걸까 




우리 남편이 나에게 바라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긍정적인 피드백. 


그게 이 책에서는 미국 학교와 한국 학교의 독서 권장 시스템의 차이로 설명된다. 미국 학교에서 책을 읽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이 있는 반면, 한국 학교의 필수 도서 제도에서 안 읽으면 점수가 깎이는 처벌만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계속 "결혼했으니 이거 하면 안 돼 저거 하면 안 돼" "이러면 이혼사유야" 하는 설명을 할 때마다 남편은 당황했던 것 같다. 


"결혼했으니 월세 살기 싫어. 얼른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 가고 싶어"

내가 이걸 원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그 행간의 숨은 뜻이 무섭다. 

"네가 얼른 이직을 해야 우리가 이사를 가지. 아직도 뭐 하고 있냐 언제까지 그럴 거냐."


그런데 너무나도 한국적인 나는 남편을 칭찬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ㅜㅜㅜㅜ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생각을 해보자 장점이 너무 많은 남편이다. 배울 점이 무한한 사람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러고 보면 참 남편도 안 바뀌고 나도 안 바뀐다. 헤헿ㅎㅎㅎㅎㅎ 그래도 나는 이제는 안다. 이제는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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