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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06. 2021

사과를 받는 방법 -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내가 기억하려고 쓰는 대화법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패러디




커플싸움 최악의 멘트 1위, "뭐가 미안한데?" vs "그냥 다"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3/11/1086082/


한 설문조사에서 연인들 간의 말다툼 중 최악의 멘트를 조사하였다. 


남성들은 화가 난 여자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미안한 기색을 보여도,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왜 자신에게 미안해야 하는지를 반복해서 물어볼 때 최악이라고 답변하였다. 그 이유로 끝없이 악순환으로 말꼬리를 잡는 싸움이 이어진다, 잘못한 것도 없이 사과하게 되어 억울하다,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등을 들었다.


여성들도 비슷하게 남자 친구가 그 상황만 모면하기 위해 무성의한 사과를 할 때 최악이라고 답변하였다.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 없다, 나중에 똑같은 실수(잘못)를 또 한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인지를 못한다 등의 이유이다.


기사에서는 "진정성이 부족한 태도가 갈등을 더 키우게 된다"며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이 결과만 봐도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여자들은 남자 친구에게 이해와 존중받기를 원하고 남자 친구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남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문제인 상황인 것이고, 남자 입장에서는 여자 친구가 자신을 몰아세우며 있지도 않은 잘못을 떠넘겨 받아 억울하게 사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조금 더 고민해보면 사실 이런 상황은 연인 간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회사에서, 어느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물론 요즘은 상명하복 수직구조 등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져서 안 그런 곳도 많다지만, 옛날에는, 80년대 생인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그런 대우가 어디서든 정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었다.


학교에서 숙제를 안 해가거나 준비물을 안 가져와도 몇 대 맞을래? 가 먼저 나왔고, 세게 한 대 맞을래 살살 세 대 맞을래 라는 질문도 들었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해서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체벌을 받았고, '사랑의 매'가 공공연하게 활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돼도 무조건 잘못했어 안 했어? 뭘 잘못했는지 알아 몰라? 를 들었고 모르면 모른다고 혼나고 알면 알고도 그러냐고 혼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갇힌 적도 많았을 것이다. 직장에서는 보고서 내러 가면 상사가 이걸 일이라고 해왔냐며 보고서를 뿌리는 장면도 하도 흔하니 드라마나 만화에서도 종종 등장했다. 


그렇다고 죄송합니다 하면 그게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야? 그게 진심으로 미안하긴 한 거야? 하며 진정성을 추궁받거나 죄송하면 죄송할 짓을 하지 말던가 하며 비꼼을 당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당연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연인관계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한쪽은 사과를 해도 문제가 되고 안 해도 문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고, 다른 쪽은 잘못을 알아도 몰라도 사과를 받아도 안 받아도 문제가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아이러니하고 악순환의 다툼에 빠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나의 경험에서는 사과를 받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아는 대화법은 미안해하면 괜찮아하고 사과를 받는 대화법뿐이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에도 미안해 하면 괜찮아 세트로 배우고,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에도 암 쏘리 하면 잇츠 오케, 뛔부치 하면 메이꽌시, 데졸레 하면 드 히앙, 로 시엔또 하면 에스따 비엔 세트로 암기하니까.


나는 지금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괜찮다고 말하면 이 상황이 끝나버리고 상대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은데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나는 너무나도 상처인 상황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서, 상대가 자존심보다 나를 위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상대가 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우리는 어쩌면 그래서 사과의 진정성을 따지고 잘못의 당위성을 따지는 지도 모른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대화법은 바로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이다.

(V) 미안해 -> 괜찮아 

(V) 미안해 -> 뭐가 미안한데? 

(V) 미안해 -> 나도 미안해

(O) 미안해 ->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상대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노력을 했을 것이다. 왜 미안한지 제대로 알고나 사과하면 참 좋겠지만, 일단 몰라도 나를 위해서 사과한 것이다. 게다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잘못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면 정말 좋겠지만 또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게 마련이니까. 내 마음처럼 딱 맞추는 사람이 많지 않다.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해줘서 고맙다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도 엄청난 용기를 내서 뱉은 말이고 억울함과 서운함과 답답함과 억눌린 감정들이 쌓여 있을 때, 사과를 먼저 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상대의 그런 감정도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도 아니고 사형당할 만큼 죽을죄를 지은 범죄자도 아니라면 그래 안하무인 격으로 나오거나 그래서 어쩌라고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지 않고, 미안하다고 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일단은 미안하다고 하긴 했으니까 그것은 팩트니까. 미안하다고 해서 잘못이 자동으로 용서되는 것도 아니고, 미안하다고 해서 내가 화를 풀어야만 한다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미안해하고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한 다음에 내가 서운했던 이유나 내가 상처 받았던 상황에 대해 설명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대에게 나의 입장을 말해줘야 한다. 상대는 말해주지 않으면 어차피 모른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를 때가 있는데 상대라고 매번 알아차려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다니 치사하게 느껴지고 쪼잔하게 보일 수도 있어서 말하기 싫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원하는 상황의 우선순위를 두어서 내가 더 원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내가 답답해서 속 터지지만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는 상황을 원하면 그냥 말을 마는 것이고, 내가 족집게처럼 자세하게 왜 그런지 설명하고 그것에 대해 직접적인 사과를 받기를 원한다면 말하면 된다.




상대가 나에게 사과하는 것을 원한다 -> 미안해라고 이미 사과했으면 받아준다. 


상대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기를 원한다 ->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나는 이러 이런 부분이 잘못이라고 생각해하고 설명해준다.


상대가 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을 원한다 -> 상대에게 나는 이러이러한 부분이 상처였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설명해준다.


상대가 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 내가 원하는 상대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상대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일 때에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가 완벽하진 않지만 좋은 사람이라면 당신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아니라면 함께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상대이던 나던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상대를 조종 통제하려고 하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이므로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것이 좋겠다. 


그러고 나서 내 마음이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그 사과를 깔끔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고, 만약 내 마음이 풀릴 가능성이 없다면 그때까지의 상대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서로 갈 길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다만 나의 감정은 나만이 결정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으니, 나 스스로 건강하게 해소해야 할 것이다.


나는 사과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몰랐다. 진심어린 사과를 해줬는데 내가 좁디좁은 마음에 그것을 몰랐다. 보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나와 남편이 오랫동안 악순환을 돌고 돌면서 싸우고 나서 우리의 말다툼 시간을 반의 반으로 줄일 만큼 효과적이었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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