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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15. 2021

할 말 안 할 말 - 누구를 위하여 잔소리를 하나

스피킹

그러니 묻지 말지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안부인사를 하면 항상 잘 지낸다고는 답하는데 사실 안녕하다의 기준은 애매하다. 자잘한 상황들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힘들고 설명한다고 전부 다 이해를 바라기도 힘들고 하니 속속들이 다 알수도 없다. 각자 이런저런 사정 없는 사람 없고 우리 모두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니까 남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속단해서도 안되고 억지로 개입해서도 안된다 그 사람 만의 인생 그 만의 선택 그 만의 감정을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 너무 심심해서 봤던 90 Days Fiance 라는 리얼리티 쇼에서 이런 상황이 있었다. 다섯 커플이 약혼자 비자를 받고 이민을 와서 결혼하는 실제 과정을 보여주는 쇼인데, 모두가 그렇듯 각 커플마다 각자의 문제를 갖고있다.


마지막 회에서 모든 커플이 모여서 코멘트하는 장면이 있는데, 자기 약혼녀는 이민까지 온 자신과의 결혼을 회피하는데도 불구하고 부부사이는 좋지만 남편에게 문제가 있어서 치료받고 노력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고, 아내가 출산이 임박하는데도 변변찮은 직업도 수입도 없는 사람이 약혼자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도 있고... 다들 자기 문제는 어차피 자신이 객관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 바람 한 번도 안 핀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핀 사람은 없다~ 똥차 가고 벤츠온다~ 이혼보다 파혼이 낫고 불행한 유부녀보다 이혼녀가 낫다~ 그러니 어쩌겠냐 알고도 결혼한 니탓이지~ 차라리 이혼을 하지 왜 그러고 사냐~ 라떼는 말이야~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야~


뭐, 모두 인생 교과서처럼 현명하고 뼈때리는 말이고, 냉정한 현실을 보는 것도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사실 상대방의 잘잘못을 따져가며 그 사람이 잘못했네 이혼해라 연끊어라 하는 말은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이다. 인터넷 댓글에서도 수도없이 보는 말. 생판 모르는 사람도 남 인생에 이러쿵저러쿵 오지랖을 부리며 얘기할 수야 있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혼하는 방법을 몰라서 안했을까? 그렇게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생각을 하고 또 하고 했을 텐데,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지만 내가 견디기가 힘들어서 고민상담을 했을텐데... 상대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온전히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그냥 겉으로 보여지는 일부분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일 뿐이지. 그러나 우리가 어느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니, 그게 상대가 진정으로 원한다고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의 기준에서 그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속단한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옳고 그름, 문제의식이나 해결방식, 삶의 목표나 행복의 기준 등등 모두 다르니까.


딩크문제로 이혼이나 파혼을 결정하는 경우는 만약 아이를 낳아 동동거리면서 고단한 삶을 사는 미안한 부모로 사는 것보다 더 시간적 경제적으로 더 여유로운 나의 삶을 원하는 당사자의 결정과 아이를 원하는 상대의 결정을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아이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는 경우 당사자의 절망감과 복수심을 묻어두고 부모가 두 분 다 함께 사는 가정을 아이를 위해 유지하는 자기 자신만의 결정, 서로 합의가 되어있다면 부모의 역할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그 사람의 결정...




상대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렇게만 하면 상대가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만 좀 더 하면 상대에게 훨씬 더 좋을텐데 하는 기대에 상대가 그렇게 안해서 답답한 것. 상대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내가 지나치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일에 더 집중하라고, 자식들이 공부나 더 열심히하라고, 부모님께 더 편히 쉬시라고 이런저런 잔소리 하게 된다.


회사 후배를 챙겨준다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친구를 위해준다고 이런저런 위로를 해주고, 배우자를 자녀를 위한다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주고. 그게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것일까 그들이 원하는 것일까? 그냥 충고를 빙자한 오지랖이 아닐까? 내가 주고싶은 사랑의 방식이 상대가 받고싶은 사랑의 방식과 얼마나 맞는지, 내가 얼마나 맞춰가야 할 지 고민해볼 만하다. “내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말이야” 여기서 그 ‘내가’부터가 주관적이지 않은가.


그들이 그걸 몰랐다면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한 번쯤은 언급해볼 만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자기만족으로 하는 말이 아닐까? 나는 후배를 챙겨주는 이렇게 좋은 선배야 내가 친구를 이렇게나 생각해주는 정말 사려깊은 친구야. 우리 가족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서까지 이렇게나 신경써주고 챙겨주니 현모양처 저리가라야.


뒤집어 보면 내가 그 상처와 고난과 실수를 통해 발전한 것 처럼 그 사람도 자신만의 경험을 통해 인생교훈을 얻을 수도 있고 내면적으로 더 강해질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어도 결국 그 사람에게 그 사람만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것.




만약 누군가가 길을 잃고 방황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자신만의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고 믿어주고 그 사람이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 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 조금은 느리더라도 천천히 재촉하지 않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그 곁을 지켜주기.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고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주기. 가벼운 관계가 아닌 오랜 친구 만이 할 수 있는 일.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지 아닐지를 나의 기준에서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그 사람이 원하는 방법으로 도와주는 것. 그것이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다. 그 사람이 절박한 심정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때 성심성의껏 그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 관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진심을 다하는 사이일 것이다. 그의 의견과 그의 결정을 들어주고 그가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자신도 이렇게 매일같이 변하는데 나를 대하는 나의 기준과 시각이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다른 사람이 지금 갖고 있을 생각이나 감정을 내가 감히 어떻게 이해할까.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것이다. 남의 평가에 좌지우지 될 필요도 없고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그 만의 노력 그 만의 이유 그 만의 가치 그 만의 배경이 있을텐데. 내가 다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 만의 세상에서 그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감히 속단해서도 안되고 짐작해서도 안되는 그 만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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