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Sep 26. 2021

4. 법을 어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1)

1) 너 자신을 알라 2) 모르는 것이 약이다?

코로나로 인해 법원에서 수천 건의 재판이 거의 1년 가까이 미뤄지면서 공소시효 만료 이전에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정을 했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 건은 운전 과실로 형량을 조정하는 협상을 제안하여 불항쟁의 답변을 제출한다면 선고유예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것도 뉴스에서 불공평한 대처라고 말이 있긴 하던데 유죄임이 분명한 음주운전 건이 공소시효 만료로 사건 종결돼서 음주운전자들이 벌을 안 받고 사는 것보다는 재범방지를 위해 보호관찰을 받으며 벌금이라도 내고 사회봉사나 수강명령을 이수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1) 너 자신을 알라


정말 정말 단순하게 -100에서 100까지 행복지수가 있다고 치고 최악의 경우가 -100, 최고의 결과가 100, 당연한 결과를 0으로 놓고 보자.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할 때 최악의 상황부터 최고의 상황까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순간 이성적인 판단을 하긴 어려울 듯, 아니 거의 불가능할 듯하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 알고 있는 것과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일만 일어나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피고의 입장에서 음주운전을 한 상황으로 예를 들자면,

-100  교통사고로 인해 내가 즉사하거나 누군가가 사망한 인명피해

 -50  상해, 후유장애, 정신적 고통, 재물파손 등의 상당한 피해

     0  큰 피해는 입지 않은 상황 + 법대로 했을 때 당연한 결과

  40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운전면허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경우

  80  형량 조정 협상을 하여 사건 종결 후에 음주운전 판결이 남지 않는 경우

100 유능한 변호사를 만나 법정싸움을 통해 사건이 기각되는 경우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을 때 내가 죽을 수도 있거나 남을 죽일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인지했다면 음주운전을 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음주운전을 해버린 상황이라면 그리고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황(0)이라고 해도 자신이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사고가 나서 누군가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100)은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미 법에 정해진 대로 벌금형, 음주운전 기록, 한시적 면허정지, 음주운전 재발 시 가중처벌 등의 판결(0)을 받는 것이 당연할 것.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사망자도 없고 피해도 없었는데 뭐가 문제냐며 이제 자신의 상황을 0~100으로 재설정해버린다. 자신이 당연한 결과로 유죄판결(0)을 받으면 최악의 상황이라고 분노하거나, 자신이 적어도 50 이상만큼의 혜택을 받아야만 한다는 믿음을 너무 쉽게 갖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신의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일일 것이다. 누구든 최고의 결과를 바라면서 살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깨끗한 범죄 기록을 갖고 싶다면 무죄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재판으로 갈 경우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자신이 유죄임을 알면서 무죄를 주장한다는 것도 양심에 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음주운전이 아닌 운전 과실로 판결받고 보호관찰 종료 1년 후 범죄 기록도 삭제 신청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정말 코로나 팬데믹에 얻어걸린 최선중의 최선에 해당하는 운이 좋은 케이스가 아닌가!



2) 모르는 것이 약이다?


당시 민원응대를 하면서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듣는 말이 있다. 자기는 몰랐다고 아무도 자기에게 말해주지 않았다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왜! 벌금을 내냐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나를 범죄자 취급하냐고! 그런 무지가 마냥 권리인 것처럼. 그리고 범죄자 맞긴 하지. 자신의 재판에 자신의 형량을 협상하고 자신이 사인까지 했는데 그 내용도 모르고 자신이 결정했으면서 뭘 결정했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혹시라도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뒤집어쓰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조금 안타깝긴 하다. 물론 내 상관할 일은 아니고 그분의 선택이니 뭐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말이다.


재판은 정말 길고 힘든 싸움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점부터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재판만 지속될 수 있다. 비용 시간 등 만만치 않게 들고 그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할 일도 너무 많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위법행위를 했다는 사실도 잊히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가 자초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정해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격을 요구하면서 그것들을 얻지 못하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긴다면, 여기서 가해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간혹 가다 자신이 피해자라면서 나는 전혀 몰랐다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내가 악의를 갖고 행동하지 않았다 해도, 아무리 내가 결백하다고 믿어도, 아무리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고 하더라도, 보증을 서든 사업자를 빌려주든 핸드폰 번호만 주든, 나는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무해해 보여도 그 결정은 결국 자신이 내린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자신이 넘어간 것이다. 돈을 벌 수 있을 줄만 알았지 잃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내 돈을 원치 않게 잃었기 때문에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그 순간에는 당연히 돈을 벌 거라는 생각에 한 선택이겠지만 만약 돈을 벌었다면 그게 불법이라고 신고했을까? 그렇다면 내가 돈을 잃었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또는 자신은 영어를 못한다면서 노 잉글리시 아돈노 그러면서 자신이 이 사회에서 소수의 입장이며 보호받아야 된다는 희한한 논리를 주장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영어 못한다고 못 알아듣는다고 자기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렇게 상황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법원에서는 이런 분들을 위해 무료로 각종 언어에 대한 동시통역사를 대동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몰랐으니 자기는 잘못한 거 없다고 모르는 게 무슨 권리인 양 반성도 안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아무리 몰랐다고 해도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적어도 미안한 마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는데, 그 사람 말대로 진짜 몰랐다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참 어려운 문제다.


그 상황에서 그러고 싶을까? 싶다가도 그래 그러고 싶으니까 그랬겠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들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자기가 생각하는 게 있는데 그거대로 안되니 상실감을 느꼈겠다 자기가 원하는 게 있는데 되는 게 없으니 절망감을 느꼈겠다 싶다. 나는 본국에서 살던 그대로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경찰에 잡혀서 구치소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수백만 원 상당의 벌금을 내라니, 내가 여유가 있어서 그 돈이 수중에 바로 융통할 수 있는 금액도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데 갑자기 체포되고 보석금까지 지불해야 하며 변호사 상담료며 재판이며 몇 달을 시간과 돈이 줄줄이 새는데 일도 제대로 못하고 범죄자 딱지까지 붙다니 그 상황이 정말 나를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