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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26. 2021

4. 법을 어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2)

3) 아는 것이 힘이다? 4) 모르는 것을 아는 것


3) 아는 것이 힘이다?


정말 정말 중요하게도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각 선택에 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지은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불법은 누가 하던 불법이고 나에게 그런 어려운 상황이, 나의 선택의 결과이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하게, 닥쳤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나의 선택인 것이다. 나의 기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에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적정한 선을 지켜서 나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느 국가에 살던 기본적으로 지킬 건 지키자. 상식이나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도는 개인차도 있고 다 다르니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최소한으로 알건 알고 살아야 한다. 성매매, 도박, 복권, 마약, 낙태, 동성결혼,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공공 음란죄, 요즘에는 마스크 착용 의무, 거리두기, 자가격리 등등.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내에서 기본적인 상식을 존중하면서 지킬 건 지키자. 내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 해야 할 건 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은 하지만 극단적인 생각이나 선택까지 가지는 않는 것. 나는 왜 음주운전을 했을까? 내가 미쳤지, 난 범죄자야. 벌을 받아 마땅해. 난 살아갈 자격도 없어. 이렇게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음주운전을 한 사실을 충분히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런저런 판결을 받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나의 최선의 선택이다 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어떤 상황이나 사건 또는 사람에게 화가 난다면, 그 화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분노가 느껴진다면, 내가 화가 나는 이유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화를 표출하려는 대상이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해야지 화만 내고 있으면 실제로 해결되는 일은 전혀 없고 대부분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상황이 또는 형사소송에서의 형량협상이 또는 민사소송에서의 합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을 대변하는 변호사에게 말해야 한다. 물론 변호사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지만 어쨌든 그 변호사를 고용한 것도 자신의 선택이니 변호사가 마음에 안 들면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르면 변호사에게 물어보자. 아무도 안 알려줬다는 건 변호사가 안 알려준 것이고, 변호사는 당신을 변호해야 하고 재판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려줄 의무가 있으니, 내가 상황을 몰라 화가 난다면 변호사에게 문의해야 한다. 왜냐면 그러라고 비싼 돈 주고 고용한 거니까.


변호사한테는 아무 말 못 하고 쩔쩔매면서 자신의 형량을 채울 수 있도록 성실히 도와주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소리소리 지르면 대체 뭐가 나아질까? 원하는 게 뭘까? 그게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지 자신도 알아야 한다.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면 벌금을 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인데 나는 돈도 없는데 벌금을 왜 이렇게 많이 내냐고! 화가 난다면, 1차적으로 불법행위를 한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2차적으로 변호를 이만큼만 해준 변호사에게 화가 날 수는 있겠으나 수납을 도와주는 직원에게 내가 왜 이 돈을 다 내야 되냐고 화를 내고 있으면 강남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하는 꼴이다. 돈이 없으면 봉사활동 등으로 변제할 수 있도록 협상을 다시 하던가, 지불능력 평가를 받아 면제를 받던가, 돈을 벌던가 등등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4) 모르는 것을 아는 것


나는 모른다고 배 째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반대로 나에게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도 굉장히 예의 차려서 매너 있게 대화하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표현하는 그런 사람도 있다. 자신의 상황을 -100에서 100까지의 경우의 수를 알고 있으면서 왜 그랬는지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가장 효과적일지를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상황을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 줄 알며, 보는 나까지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도와주고 싶게 만든다.


자신이 무죄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알고 차분하게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결을 받아들이고 달게 벌을 받는 사람, 합법적으로 항변을 준비하는 사람 등등. 이런 사람들이 정상이고 다수여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또는 모든 방법과 전략을 활용해서 재판을 질질 끌며 유죄 판결을 미루기 위해 몇 년을 끄는 경우도 있다. 누구의 입장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천차만별로 해석될 수 있으니 그것 역시 자신의 상황에서 할 거 다 해보고 최대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하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감옥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이나 사회적 편견과 같이 심한 압박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치료를 받거나 수업을 듣거나 지원 단체에서 서로 의지하는 등 여러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상황이든 해결책을 찾고 모든 선택지를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나 제대로 할 수 있는 다시 한번의 기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실수에서 배우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몰라서 그랬으면 이제 알고 있으면 된다. 잘못했으면 그 행동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된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다. 따라서 인간이 잘못을 저지른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잘못을 저질러도 그 잘못을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잘못을 안다고 해서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절망하기에 충분하다. 마치 논어에서 “잘못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잘못이라고 부른다”(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한 것처럼.


인간은 무지한 존재다. 따라서 인간이 뭘 잘 모른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뭘 잘 모르더라도 자신의 무지를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무지를 안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을 채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절망하기에 충분하다. 마치 논어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한 것처럼.” - 한겨레 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97093.htmlcsidx70cb25ddc478557bbbdd1b076750b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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