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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25. 2022

낄끼빠빠, 어디까지 해봤니?

빠질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pexles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줄임말로 분위기 파악을 하고 융통성 있게 행동하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신조어.


내가 다른 사람들과 공감을 제대로 못했던 이유, 내가 공감받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이유, 사실 그냥 간단했다. 우리가 자란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부모님 덕분에 굉장히 좋은 교육환경과 배경이 나에게 주어졌으며 그 상황에서 내가 상당히 많은 특혜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걸 쿨하게 인정하고 당당하면 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튀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평범한 게 제일 좋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면 나를 깎아내리며 겸손을 떨었다. 사실 나는 너와 같은데 단지 환경이 좋아서 그랬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잘한다는 칭찬에도 아, 제가 석사 복수학위로 입학해서요. (GRE 보고 정시 입학한 사람들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영문과 졸업해서요. (전공도 따로 있고 언어도 잘하는 사람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입학해서요. (수능 봐서 정시로 입학한 학생보다는 부족하죠.) 아, 제가 고등학교를 해외에서 외국인학교로 졸업해서요. (해외 연수 없이 한국에서만 공부하면서 영어 잘하는 학생보다는 부족하죠.) 변명이 줄줄이 땅콩으로 나왔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될 걸. 굳이 내가 평범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다른 길로 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비슷한 상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데 나는 운이 좋아 쉽게 왔으니까... 나는 경쟁자가 아니며 우호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입시경쟁 학과 경쟁 학점 경쟁 취업경쟁이 너무너무 심각하니까. 나의 부족함을 왜 드러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사실은 실력은 없는데 환경이 좋아서 운 좋게 뭐든 잘 됐다고 무의식적으로 내가 나를 낮췄었나 보다.


자기 홍보와 자신감이 능력인 사회와 겸손과 동화가 미덕인 사회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에서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다. 한국에서 쭉 지냈으면 뭐가 옳은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나마 눈치가 생겼을 텐데, 나는 뭔가 불편한 마음에 계속 왔다 갔다 했으니 적응이 더 느리고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자라온 환경이 어차피 달라 내가 아무리 같아지려 해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자꾸 해외로 도망갔다가 다시 한국이 그리워 돌아왔다가 도망갔다가 돌아왔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했던 것 같다. 내가 도피로 삼았던 여러 기회를 원해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뭐든 쉽게 쉽게 하는 내가, 충분히 감사하지 않는 내가, 큰 노력을 들이지도 않는 내가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운이 좋았죠 하는 모습이 얼마나 얄미울까. 내가 그 집단에 끼기 위해 했던 노력이 결국은 나 스스로를 모난 돌로 만들었다. 그래 이제는 알겠다.


그래. 인정하자 나는 원하는 것들을 비교적 쉽게 이루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음을 다해했던 노력과 간절함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나보다 더 간절하고 나보다 더 열심이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노력을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나의 노력은 그것대로 충분하다. 내가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환경에 있다. 그리고 나도 충분히 노력했다. 그리고 나도 힘들 수도 있다. 나의 모든 감정은 실재하며 타당하다. 다만 나의 상황과 그에 따른 어려움을 이해해주고 위로해 줄 줄 아는 사람과 내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에게 힘들다고 고백하면 복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꼴불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들의 상황을 잘 모르므로 속단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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