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한국에서 살았다면...
나는 이곳에서 충분히 감정적으로도 공감을 받고 또는 커리어적으로 인정을 받는데 왜 자꾸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까? 한국식으로 인정 받지 못해서 그런가?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나?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일까? 왜 나는 한국의 인정을 계속 갈구하는가? 한국식의 정의로는 내가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다. 회사, 자산, 차 배기량, 아파트 평수, 명품 등 수치화된 점수가 딱딱 나오는 성적표에서 한참 밑에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그동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외부 조건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내가 어느 곳에 소속되고 싶어서 자꾸 나를 규정지으며, 나 스스로 (불필요했을) 기준을 세우고, 또 그 안에서 굳이 사람들을 구분 지어 생각했다. 그게 나 스스로 한계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는데! 아니, 남편과의 갈등에서도 그렇게 깨달았었는데 그게 확장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대다수가 동의하는 기준이 있어서 그것만 잘하면 인정받는 사회가 나한테는 편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학생 때는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노오오력을 하면 뭔가 이루어지고 나는 열심히 하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정답이 정해져 있어서 좋았다. 정해진 일만 하면 되니까 그게 편했다.
반대로 이곳은 다들 각자의 삶을 산다. 자신이 원하는 삶.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 정확하게 모른 채로 와서 더 헤맸던 것 같다. 그리고 갑자기 생긴 시간과 여유를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동동거렸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이렇게 좋은 시간을, 이렇게 좋은 공간을 나는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마음이 콩밭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너무나도 평범한 1인이라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특별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가서 다시 정답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손에 쥐고 싶었나 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걸 잘 모르니까, 진짜 한국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진짜로 한국에 가서 내가 대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일단 대피처로 한국에 자꾸 미련이 남았나 보다. 그 아직 시도도 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에 미련이 있었나 보다.
수능, 대학,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노후준비에 부모님께 효도까지... 한국에서 인정받는 인생의 정석을 모두 훌륭하게 겪어내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 물론 최선을 대했을 것이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몇 살에는 뭐를 몇 살에는 뭐를 끊임없는 요구와 조건을 충족시키며 당당하게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내가 친구들의 인생에 단계별로 함께 발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매번 지름길을 가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아니면 완전히 우회해서 다른 길로 가서 그럴까? 그 당시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했는데, 그 길을 나 혼자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 걸까? 왜 나는 가보지 못한 길을 계속 돌아보며 그리워할까...?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게 명확해지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나서 다시 생각해봤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이곳이 오히려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정해진 틀이 있어 그 틀 안에서만 가능성을 실험해야 한다면 이곳에서는 뭘 하든 자기 맘이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들은 글쓰기 수업도 이곳에서는 교수님께서 방법론적인 가이드를 해주시지만 내가 원하는 주제로 원하는 연구로 자유롭게 작성하고 피드백도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을지 의견을 나누는 형식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 수업에서는 정해진 틀에 벗어나면 아무 설명도 없이 삭제당하는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돌아가 그 규칙에 딱 맞춰서 산다면 내가 성공했다고 느낄 수 있을까?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느길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지만 그 무한한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냥 내가 상황 파악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더더 잘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이곳에서 잘 살 수 없다고 나 스스로 축소해서 생각하다 보니 한국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