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자리들의 반란
우리나라는 ‘자격’이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절대적이다. 취업을 하려면 몇 종 스펙을 쌓아야 하고, 결혼을 하려면 자가 마련에 혼수 준비해야 하고, 출산과 육아를 하려면 아기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의 경제적인 기반이 있어야 하며, 사회초년생이 죽기 직전까지의 노후준비를 해놔야만 살 수 있다.
화낼 수 있는 자격, 상처 줄 수 있는 자격, 비난할 수 있는 자격, 먼저 지랄을 했으니 나도 지랄해도 된다는 자격, 결혼식 하면서 친구를 거를 수 있는 자격, 축의금이나 부의금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자격, 노후준비나 경제적 지원이 준비되어 있어야 임신이나 출산 육아할 수 있다는 자격, 자녀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자격...
우리나라는 뭔가를 할 수 있는, 그게 아무리 기본적인 것이라도, '자격'이 필요하다. 구체적이고 반박 불가인 그런 자격이 없으면 인정도 못 받는 것 같다. 팬도 찐 팬이 되려면 뭐뭐 정해진 활동을 해야 하고, 내가 아무리 청소나 정리를 잘해도 민간 정리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30대 정도 되면 명품백 하나는 있어야 하고, 결혼이라도 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하고... 뭐든 '찐'이 되려면 갖춰야 하는 게 많아 보인다.
이렇게 나를 증명해야 할 자격이 많아지는 이유는 그만큼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어떤 특성이 특별하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으면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라 평범한 것이니까. 그래서 취업할 때도 3종 스펙이 원래 고스펙이었는데 너도나도 3종 정도는 따니까 갑자기 5종으로 늘고 7종에 9종에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런 자격 경쟁은 한국이 아직은 비교적 닫힌 사회이기에 가능해 보인다. 정해진 인구 내에서 한국인끼리 경쟁하면 경쟁자가 분명하니까. 그리고 대기업 공기업 등은 한정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원하는 게 같으니까. 그 안에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만약 우리나라가 조금 더 개방되어있어서 대기업 공기업에도 외국인이 한국인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채용될 기회가 주어지거나 한국인도 해외 취업 등이 쉬워진다면, 불필요한 스펙 쌓기에 경쟁하기보다 각 직종별로 맞춤형 개인 고유의 특별한 경험이 더욱 빛날 수 있지 않을까?
해외 거주기간이 길어지면서 매 순간 깨닫게 되는 점이 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수호.
표면적이고 이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 우리가 행사해야 할 구체적인 상황들과 대응방식을 접하면서 그 중요성을 깊게 통감한다.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아, 저렇게 대처할 수도 있구나.
아,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
아, 내 권리를 주장해도 되는구나.
아, 나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기본권. 인간의 존엄성. 당연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보장받아야 할 권리.
개인의 자유,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선택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 되는 원칙.
그리고 그 권리의 중요성. 그 권리가 상징하는 사회 근간에 대한 의미. 누군가는 목숨을 바쳐 지켜낸 우리의 권리.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권리.
우리가 마땅히 '행사'해야 할 그 권리와 자유. 그리고 수호해야 할 그 권리와 자유.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는다는 말, 이 옛말이 진리다.
부모에게는 이래야 해. 상사에게는 이래야 해. 이런 생각이 오랜 시간 굳어져서
자식에게는 이래도 돼. 부하직원에게는 이래도 돼. 하는 합리화가 되는 것 같다.
저 사람이 발을 뻗는다고 욕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누울 자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 기회를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