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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25. 2022

한국에 온 한국인이 또라이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어쩌면 MZ세대 선두주자?

pexles


"오케이~ 여기 환불해줘~"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건 한국의 어느 사기업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일했을 때였다. 규정에 따라 환불 불가하다는 안내를 죄송스럽게도 몇 번이나 해야 했던 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덩치 큰 미국인 남성 두 명에게 환불은 규정상 안 된다며 계산 시 동의한 내역을 보여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부장님이 나오시며 "오케이~ 여기 환불해줘~" 하시는 게 아닌가?


당시 나는 입사 한지도 얼마 안 됐을 때라 직원의 입장보다는 고객의 입장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까? 나도 환불을 물어보기는 하지만 안 된다고 하면 받아들였을 것 같아서, 환불을 못 받고 돌아간 고객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부장님께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여쭤봤다. "환불되는 거면 환불 문의했던 분들이 몇몇 계신데 그분들도 해줘도 되나요?" 돌아오는 답변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럴 필요 없다고. 아니, 이 미국인 남자 둘은 해주고 왜 다른 국적 사람들은 안 해주는지? 진상을 부리면 해주고, 쎄 보이면 해주고, 본인 맘대로 해주고? 이럴 거면 규정은 왜 있는지?


부장님은 대체 왜 그러셨을까? 자신의 권위에 대한 재량을 인정받고 싶었을까? 본인이 영어를 알아 들었다는 사실을 뽐내고 싶었을까? 그 천조국 출신 대기업 입사 예정이신 분들께 땡큐 땡큐 소리를 듣고 싶으셨을까?


근데 나는 그 당시 부장님께 관심이 1도 없었다.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곳이 내가 일할 가치가 있는 곳일까? 아니 이렇게 큰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솔직히 이게 인종차별 아닌가?) 알고 보니 공공연히 이런저런 일들이 더 많았다.  


나는 그다음 달에 퇴사했다.




"너네도 퇴근하고 싶은데 못하지?"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건 한국의 어느 공기업에서 외국인 상대로 일했을 때였다. 내가 입사한 지 몇 주 되지도 않았던 어느 날, 외국인 VIP 님들을 위한 연말 행사가 있었다. 큰 라운지에 준비된 행사장에는 핑거푸드~ 샴페인~ 풍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등이 있었다. 통유리 밖의 세상은 어둡고 추운데 라운지 안의 세상은 밝은 조명에 따뜻하고 사람들 북적북적해서 굉장히 좋아 보였다. 오 공기업 스멜~


그.런.데. 나는 그날 나의 귀를 의심하게 되는 한마디를 들었다. 그것도 외국인에게서. 행사가 사전에 공지된 시간을 넘기면서 친구와 늦은 저녁 약속이 있었던 나는 살짝 걱정됐다. 늦으면 어떡하지? 언제 끝나지? 왜 아무도 안 가지?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안절부절이었다. 그러자 어떤 외국인 한 분이 내 옆에 슥- 다가와서 하는 말. "너네도 퇴근하고 싶은데 우리 때문에 못하지? 껄껄껄!"


운명의 장난일까. 그다음 해 내가 그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행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한 가지 확실하게 했다. "정해진 행사시간 내에 끝내도 되나요?" 그리고 내가 들은 답변은 "할 수 있으면 하라"는 말이었다. 물론 "근데 그렇게 안 될걸..." 이 뒤따랐지만. 나는 할 수 있으면 하라는 말이 긍정의 대답인 줄 알았다 ^^;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행사 당일 오후 5시 45분, 나는 마이크를 들고 기념품을 나눠주며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클로징 멘트를 했다.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감사인사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평소보다 짧은 행사에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문 밖으로 퇴장하며 서로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 어디 레스토랑이라도 갈까?"


그랬다. 행사가 일찍 끝나고 더 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들끼리 더 놀 수 있었다. 만약에 오래 연회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충분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행사를 일찍 시작해서 끝나는 시간에 맞추거나, 행사 끝나는 시간을 사전에 늦은 시간으로 정하거나, 1차, 2차로 나눠서 공식 행사는 정해진 대로 진행하고 뒤풀이 식으로 연회를 계속하거나...


나에게 행사를 길게 하라고 지시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충분히 초과 근무도 할 의향이 있었다. 다만 정해진 시간은 6시까지였는데, 당연하게도 (그것도 무급으로) 상황을 봐가면서 알.아.서. 남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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