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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Dec 23. 2022

남편과 여사친 사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년 전 네이트판에 올린 공개심판, 그 후기

남편이 거짓말을 들켰다.


나는 남편이 거짓말한 것 자체가 바람이라고 화를 냈다. 남편은 그게 어떻게 바람이냐고 대꾸했다.

나는 그러면 왜 거짓말을 했냐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고 분노했다.


나는 남편이 "정신적 외도"를 하고 있다고 따져댔다. 남편은 절대 아니라고 치부했다.

나는 남편이 "오피스 와이프"와 선을 넘었다고 몰아세웠다. 남편은 나를 의부증 취급했다.

나는 남편이 "특별한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라며 울부짖었다. 남편은 나를 무시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희 둘이서 바람피운다고 생각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남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네이트판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 남편은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라고 했다.

나는 시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 시부모님께서는 나보고 진정하라고 하셨다.


나는 남편의 "영원한 친구"이신 선생님께 직접 연락을 했다. 선생님은 맹세코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하셨다가, 그런 일이 있긴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모두 "친구" 사이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당장 그만두라며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자리를 피했다.

나는 자해까지 하게 됐고, 남편은 그런 나를 쳐다보았다.



네이트판에는 오늘도 수많은 글들이 쏟아진다.


"부부 같이 봅니다. 누가 맞나요?"

"누구 잘못인가요?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세요."

"이게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요?"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네이트판에 글을 쓴 이유는, 남편이 잘못을 인정하고 나에게 사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한 만큼 나의 신뢰를 얻기 위해, 나에게 더 따뜻하게, 더 친절하게, 더 배려있게 대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잘못을 지적받아 남편이 부끄러운 줄 알면, 적어도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남편이 나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혔는지,

남편의 행동이 얼마나 부적절했는지,

남편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불특정 다수의 의견에 공개심판을 연 것과 같았다.




그런데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자신의 의견을 바꿀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도 않았으며,

애초에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남편은 자신을 피해자라 생각했다.

자신이 더욱 상처라고 주장했다.


나는 바람은 인격 살인이라고, 너는 살인자라고 비난했다.

남편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게 내버려 두라고 했다.




나는 사실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남편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었다.


그런데 무의식 중에 상처받았다고 나의 약한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는 것보다, 화를 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또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남편에게 화를 냈을 때, 나는 남편도 똑같이 고통스러워하길 바랐다.

내가 상처받은 만큼 남편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 그게 공평하니까.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그게 정당한 거니까.

남편이 진심으로 사과할 때까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게 상황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벌을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자유와 선택을 행사하며,

여전히 자신의 의견과 감정이 우선이고,

여전히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주장했다.


나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서 나는 엄청난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꼈다.




남편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상처를 치유하는 일.




남편을 아무리 비난하고

남편에게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해도

상대 여자에게 연락을 해봤자


결국 내 상처의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이미 난도질당했는데 그 상처를 찢어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더욱 고통스럽게 나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부위를 남편에게 들이댄 것이다.


내 주변의 모든 일들을 세세하게 통제하려는 욕구는 결국 나를 더 곪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통제 욕구의 근원은 두려움이라고 한다.


그 두려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는 것처럼, 그 아픔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내게 두려운 것이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나는 남편과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최우선으로 하는 결혼생활을 원했는데,

남편이 친구를 우선적으로 대하는 태도에 내가 상처를 받았구나.


나는 남편과 서로에게 충실하고 정직하게 지내는 결혼생활을 원했는데,

남편이 나에게 거짓말하는 태도에 내가 상처를 받았구나.


나는 남편과 평생을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게 될 줄 알았는데,

남편과 이혼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내가 상처를 받았구나.


나는 내가 노력한 만큼 남편도 나에게 잘해주기를 바랐는데,

남편이 나의 노력에 고마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내가 상처를 받았구나.


상처받은 마음... 그 서린 심정을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상처를 준 남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상대 여자도 아무 생각조차, 죄책감조차 없을 수도 있다.

오로지 나만이 알 수 있는 일...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다


사실 내가 남편에게 원한 건, 내가 불편하다고 했을 때

즉각적인 사과나,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래를 위한 약속...

그냥 그런 것이었다.


서로를 비난하다 못해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욕을 먹게 하고,

좌절감과 절망감에 자기 자신을 해하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단지 남편에게 받는 비참한 대우를 참거나,

앞으로도 서로 냉랭하게 살던지 이혼하던지 결정하거나,

또다시 반복될 불상사를 막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거나,

행복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과를 해야 하는 건 내가 나에게 해야 했다.

부드러운 말을 건네는 건 내가 나에게 할 수 있어야 했다.

미래를 위한 약속 역시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어야 했다.


스스로를 위하고, 스스로를 보살필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갈 때, 더 큰 용기를 내야 한다.

나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존감을 지키고, 행복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억지로 받아내는 사과보다,

억지로 받아내는 고백보다도,

나에게 훨씬 더 큰 위안을 준다.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 방식 혹은 감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남편은 나에게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진심으로 사과해 주었고,

시간을 내서 내가 눈물로 호소했던 말들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남편은 내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다정한 모습의 남편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내가 꿈꿨던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진심으로 행복했다.

가끔은 힘든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매 순간 질문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가?







https://brunch.co.kr/brunchbook/kim80064789

https://brunch.co.kr/brunchbook/kim1006478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plus/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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