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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Dec 22. 2022

현타 오는 장거리 결혼 생활

하와이 지박령의 하소연

우리 부부는 가끔 2-3주, 또는 한 달씩 장거리가 된다. 내가 친정에 가거나, 남편이 시댁에 가거나 할 때.


작디작은 스튜디오에서 남편이 떠나면 내 세상이 된다. 그 자유! 그 해방감!


남편 때문에 속상하거나 짜증 날 일도 없고!

기분 상해 한 공간에서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 일 없고!

혼자서도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혼하고 혼자 살면 이런 느낌일까?


출근하고 퇴근하고 주말에 친구 만나고... 남편과 함께 할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이지만,

아니,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을까?


어쩌면 난 혼자 있을 때 더 나다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이혼인가?


이혼하면 더 행복할까?

행복해지기 위한 이혼이 아니라, 덜 불행하기 위한 이혼?


이혼만 하면, 나는 자유로워질까?

훨훨 날아 어디든 갈 수 있을까?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현타가 온다.


현실 자각 타임.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


내가 이러려고 이혼하나...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이혼한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닐텐데 말이지. 장거리 연애는 절대 못한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나는 어쩌다 이혼을 고민하고 있을까?




Sex and the City                                                                      Bridgerton




우리가 매일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남편과도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행복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쩌면 이상만을 쫓고 있는 걸까?




우리는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굳게 닫힌 마음을 무너뜨려도,

가슴에 사무치게 슬펐던 감정을 표현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 맺힌 한을 풀어내도,


괜찮다. 그래도 된다.


엉엉 울어도,

대성통곡을 해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려도,


괜찮다. 그래도 된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마음도,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모두 괜찮다. 그래도 된다.


내가 그래도 괜찮고, 남편이 그래도 괜찮아야 한다.


가슴 치게 억울하고 눈앞이 깜깜하게 절망적이어도,

남편이 할 말이 있다면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행복은 불행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불행을 받아들이고 언제든 회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우리의 결혼생활도 위기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위기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하던 나의 선택이다.







한결같은 남편은 여전히 한결같다.


남편이 없을 땐 남편이 잘해준 일만 생각난다.

<우리 이혼했어요>에 나왔던 지연수가 했던 말처럼, 그때는 정말 행복했었던 것 같다.




내가 쪽지를 써달라고 하면 아침마다 쪽지를 써주고,

내가 기념일 선물로 편지를 써달라고 하면 편지를 써주고,

과일을 깎아주고 내가 어디 있던 와서 한 입씩 주고 갔던 남편.


회사 안 간다고, 때려치울 거라고, 조퇴하고 집에 간다고 해도

항상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던 지지 한다고 했던 남편.


서로 유치한 농담을 주고받아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이.

마음에 드는 개구리 사진을 찾는 3분,

농담을 알아듣는 데 걸리는 18분도

지금은 귀엽게 느껴진다.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내가 해달라는 건 해주는 사람.


내가 우편으로 엽서를 보내달라고 하면 엽서를 보내주고,

내가 불안해할 때 노래를 불러달라 하면 전화로 동요를 불러주고,

빨리 잠들 수 있도록 책을 읽어달라 하면 전화로 책을 읽어주기도 하는 다정한 사람.




남편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에 집중한다면... 지금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결국엔, 결혼이나 이혼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더 원하는지에 달린 문제.




https://brunch.co.kr/@kim0064789/412




https://youtu.be/QfmYJW4Y0C4 

출처: 침착맨 "어? 지박령이다!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을 하셨죠?"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상황도 불편한 상황도,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회복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누구보다도 먼저 이사 갈 줄 알았는데, 하와이 지박령이 되어버린 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 굉장히 바른 속도로 변하는 그 위치를 귀신이 따라가는 지박령...

그 어려운 일을 우리 남편은 해냅니다.


왠지 내년에도 하와이에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ㅠㅠ




https://brunch.co.kr/@kim0064789/381

https://brunch.co.kr/@kim0064789/388







몇 년 전, 아니 작년 이맘때, 아니 불과 몇 달 전과 비교해도

나는 조금 차분해진 것 같다.


곧 남편이 돌아온다.

남편이 좋아하는 유기농 마트에서 남편이 주문 부탁한 과일과 우유를 사두었다.



남편은 갑자기 사랑꾼이 된 것 같다.

나도 남편이 보고 싶기도 하다.








어제 여기까지 작성해 두고...


남편이 돌아왔다.

다시 갔으면 좋겠다ㅠ


간사한 내 마음...







https://brunch.co.kr/@kim0064789/294

https://brunch.co.kr/@kim0064789/295

https://brunch.co.kr/@kim0064789/339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plus/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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