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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13. 2022

지킴이가 생기는 바람에 오징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선생님, 저랑 결혼 한 번 하시겠습니까?

나는 이번에는 진짜 진짜진짜진짜 우리가 이사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거의 매년 그랬다. 드디어 이사가나 했는데 또 좌절되었다.


우리의~ 소원은~ 이~~사~~ 꿈에도~ 소원은~ 이~~사~~!


이사 얘기는 브런치에도 너무 자주 썼었는데, 이제까지 내가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불현듯 떠올랐다.








남편이 이사를 또 못 간다고 한다.


나는 이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위안할 방법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활동을 등록하고, 모임에 나가고, 단골 카페와 단골 미용실을 만들고... 이곳이 참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자연 좋고 공기 좋고 회사 좋고 다 아는데 그런데도 나는 이사를 가고 싶었다.


나는 왜 이사를 가고 싶을까?


나쁜 기억이 너무나도 많은 공간이라 얼른 떠나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의 일들이 있었던 곳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뜬다. 그날의 기억에 떠오르면 나는 약을 먹을 때도 있고 조용히 넘어갈 때도 있고 감정이 요동쳐 울분을 토할 때도 있었다. 이 집, 이 도시가 진절머리 나게 싫어졌는데 남편 때문에 이사도 못 가고 갇혀있는 것 같았다. 한이 서려 죽어서도 지박령이 되어 떠나지 못할까 봐 두렵다.


나쁜 기억을 어떻게 극복할까?


나는 나쁜 기억들을 좋은 기억으로 덮어쓰고자 했다. 시간 장소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과장되게 노력했다. 물론 효과가 있긴 했다. 더 이상 공황이 오지 않았고 나는 안정적이어 지긴 했으니까. 나의 봄날을 되찾아왔고, 내가 사는 이 도시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으로 채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도 나쁜 기억마저 희석된다.





그런데도 나는 이사를 가고 싶었다. 그런데 또! 못 간다고 한다. 왜 못 가는 거지?


나는 남편이 제대로 노력을 안 한다고 생각했다. 대체 쉴 거 다 쉬고, 잘 거 다 자고, 놀 거 다 놀고, 쓸데없는 짓 할거 다 하고, 대체 언제 일을 하냐고!! 빨리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야 이직을 할 거 아니냐고!! 언제까지 이렇게 사냐고!!! 속으로는 울화통이 터지지만 겉으로는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래 네 결정을 존중할게.




그런데 나는 이제까지 잘못된 질문을 했다. 내가 물어봐야 할 질문은

"나는 왜 남편이 본토로 이직을 해서 우리가 이사 갈 것이라고 믿었을까?" 였다.


우리가 이사를 못 가는 열두 가지 이유, 내가 이사를 가고 싶은 스무 가지 이유, 지금 이곳이 좋은 백  한 가지 이유를 아무리 찾아봤자 의미 없는 질문에 의미 없는 답변이었다. 내가 이사 가고 싶은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꼭 남편이 이직에 성공해야지만 우리가 이사를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과 그녀들의 남편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나의 인지적 오류는 바로바로바로 "남편이 본토로 이직을 할 것이다" 라는 믿음이다.


즉 남편이 본토로 이직을 할 것이다

= 남편은 본토로 이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남편은 본토로 이직하고 싶어 한다

= 그러므로 남편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본토로 이사 갈 수 있다!




본토 회사들:


남편:

<쎈마이웨이>




여기서 정말 큰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같은 단어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소통에 오해가 있었다는 점이다.

나의 일시적 = 1-2년 내에 해결됨

남편의 일시적 = 10-20년 내에 해결됨


그러므로 남편은 지금 상황이 문제가 없다. 우리 남편은 출세든 연봉이든 자가든 먼 얘기라 생각하고 지금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데, 현 상황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내가 잘못 믿은 것이다.



게.다.가. 이건 사주팔자에도 나왔던 내용...... ㅎㄷㄷ 소름 돋는다 ㅋㅋㅋ





둘째는 내가 남편이 이직할 능력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단단히 콩깍지가 씌었나 보다.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남편의 오징어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얼른 본토 회사에 지원서 내봐!

그 회사 좋던데 합격하면 정말 좋겠다!

그 동네는 정말 살기 좋을 것 같아!

더 좋은 회사 갈 수도 있겠다!


나는 남편이 지원서를 낼 때마다 그 동네의 집값과 치안, 마트 위치며 한인사회를 확인하고 있었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엄청난 실망을 해왔다.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아직도) 걸고 있었고, 그런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하자 남편은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그냥 자기만의 세상에서 평화롭게 아주 잘 살고 있었는데, 나와 결혼하면서 오징어 게임에 합류하게 된 것 같은 상황이랄까. 한국인인 나를 만나 무한 경쟁사회, 능력주의, 결과주의,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 상향 평준화된 한국사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알쏭달쏭 스마트 세상에 강제로 들어오게 된 것!!!




아내가 기대하는 바람에

아, 내가 기대하는 바람에...




나는 결혼에 너무나 큰 기대를 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나의 온 세상의 전부가 되었나 보다. 그래서 그 기대가 하나씩 산산조각 날 때마다 이렇게 감정의 폭풍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나는 결혼을 하면서 남편의 나라로 이민 왔고, 남편의 피부양자로 이민 비자를 받았고, 처음 1년은 취업도 못하고 출국도 못하는 시민권자 남편의 '아내'로만 존재했고, 그 후에도 3년이나 더 총 4년을 시민권자 남편의 '아내' 라는 조건부 신분으로 존재했는데!




우리 둘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한 건 맞다. 이민을 오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세상이 좁아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이 나라에서도 나 혼자서도 존재할 수 있다. 내가 원한다면 나 혼자라도 이사 갈 수 있다. 이곳에서 계속 살 수도, 익숙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전혀 새로운 도시로 이사 갈 수도 있다.


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라면! 나는 이사를 가면 된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이사를 가는 건가? 이사만 가면 이 모든 질풍노도의 원인이 해결되는가?


그건 아니다. 이사를 가기 위해 남편과 떨어져 살거나, 이사를 가기 위해 이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사는 나에게 하나의 현실 도피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을 무능력하다고 원망할 수 있는 안전장치였다. 거봐라 (그렇게 호구처럼 이용당하더니) 너는 니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냐고. 우리의 묵히고 묵힌 여러 가지 문제들을 모아 모아 원망을 가득 담아 보낼 수 있는 아주 정당한 사유였다.


현실이 시궁창인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이 시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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