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May 19. 2023

프로 과거미화러의 현생

바람이 분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의 심리가 있다. 바로 현재를 살지 못하고 나는 항상 미래를 기대하거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행복을 추구하도록 진화된 사람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현재의 상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장점과 단점 모두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타인에게도 똑같은 존중을 줄 줄 아는 사람들. 진정으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고 고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강점보다는 약점을 보고 완벽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사람, 충분히 좋은 상황임에도 더 좋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착하여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단점과 약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참 쉽지 않다.


그리하여 우리 남편은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남편의 그런 모습 하나하나를 문제 삼아 자신의 무능력함을 콕 콕 찝어 드러내는 사람과 결혼했고, 나는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사는 사람인데 성장과 발전이 너무나도 여유로운 사람과 결혼했던 것이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내가 나의 이런 상황을 깨달은 시점은 내일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을 때 즈음이었다. 이곳에서의 나의 하루하루는 너무나도 똑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이미 지나간 어제도 포장되고 오늘도 결국 어제가 될 텐데... 그리고 내일도 오늘이랑 똑같을 것인데. 아무리 과거를 미화해보려 해도 미래의 꽃길을 그려봐도 희망이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무의미했던 그 순간, 그제야 현재가 눈에 들어왔다. 궁지에 몰려 더 이상 도피하지 못하고 나에게 지금 현재만이 남았을 때.


그리고 그때, 남편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겪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깨달음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현재를 살아가는 이 사람이 신기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바로 코앞에 있었던 현재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작은 일에 전전긍긍하며 큰 그림을 놓치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결점에도 마음을 닫고, 아주 하찮은 이유를 대며 눈을 감았다.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추억은 아름다워라... 이미 결말을 알고 있으니 두려워하거나 회피할 필요도 없고, 고통도 지나왔으니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 힘들었던 순간도 사무치게 외로웠던 순간도 이미 끝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수없이 다독였는데 진짜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또 다른 어려움이 다가왔다. 나에게 현재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가 많았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고 항상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지금 상황 전체를 부정해 버렸다.


내가 이미 지나가버린 그 순간이 그리워진다. 그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행복한 기억이 떠오른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나는 행복하겠지, 또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이 부분은 좋았는데 하며, 현재를 놓치고 있었다. 무드셀라 증후군, 기억 왜곡을 동반한 일종의 도피 심리, 향수에 젖어드는 일종의 퇴행 심리라고 한다.


나는 여전히 지금, 여기, 이 순간을 탈출하고 싶어 한다. 허상의 무언가, 불가능한 어떤 상태, 존재하지 않을 그 어느 날을 쫓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완벽한 환경,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상황, 현재를 감내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쩌면 그게 지금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 지금 나의 상황에서 아주 작은 불만이나 아주 작은 유감이 미래로 과거로 회피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이런 나의 상황이 나의 최선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지금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오늘의 나를,

오늘의 행복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며,

벌써 추억이 될 기억들을...




<바람이 분다> 이소라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추억>입니다.


▶ 팀라이트 글쓰기 클래스 & 공저출판 정보

☞ 팀라이트 소개 및 클래스 정보

▶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따뜻한 작가님들의 레터를 받아보고 싶다면

☞ 팀라이트 레터링 서비스 정기 구독 신청

▶ 팀라이트와 소통하기 원한다면

☞ 팀라이트 인스타그램

▶ 팀라이트 작가님들의 다양한 글을 모아보고 싶다면

☞ 팀라이트 공동 매거진 구독하기

▶ 놀면 뭐쓰니, 인사이트 나이트 오픈 채팅방!

☞ 팀라이트 인나 놀아방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되면 진짜 친구를 못 사귄다는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