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연인들도 사랑할 수 있을까?
최근 관계에 대한 고민들을 들으면서 든 생각들.
부부나 연인이란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라, 둘이 같은 팀이 되어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이입니다.
누가 문제고 누가 잘못이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 상황에서 어떻게 한 팀으로 대응할지를 함께 결정하고 함께 해결하는 관계예요.
누가 어떤 희생을 더 해왔고 누구는 어떤 노력을 안 했는지 서로 비교하는 사이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지 방향을 정하고 협력해서 그 방향으로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야 하는 관계예요.
누군가가 이끌어가고 다른 사람이 무력하게 따라가는 상하관계, 주종관계가 아니라,
양측 의견 모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줄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입장도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그런 평등한 관계예요.
나를 위해 상대방을 고치고,
상대방이 얼마나 해줄 수 있는지 한계를 시험하고,
상대방의 밑바닥을 끌어내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대화해 보고
단 한 번이라도 평화롭게 해결한 적이 있다면 서로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 선의를 헤아려주고
고맙다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이나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끊임없이 대화로 풀어나가면서
상대가 나를 위해, 내가 상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잘 설명해 주고 의견을 나누고 실천해 나가는 것.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상대와 함께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수많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해보아요.
상대를 깎아내린다고 내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나 스스로의 품격도 높아집니다.
상대가 이래야지만 사랑한다는 조건부적인 관계보다는,
사랑에는 정답이 없으니, 다양한 사랑의 표현 방식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의 진심을 격하시킨다면,
결국 나 스스로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 되고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상대만의 사랑 표현 방법을 인정함으로써 그만큼 내가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나의 시야를 넓힘으로써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상대가 내 앞에서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존재할 수 있도록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해요.
나와 함께 있을 때, 내 눈치를 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며 불편해하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잖아요.
상대가 어떤 말을 하던 내가 차분히 들어줄 수 있어야, 자신의 진심을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상대가 싸움을 시작하려 할 때에도 내가 우아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상대도 진정할 수 있을 거예요.
매 순간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히 마음을 열 수 있는 단 한 사람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 관계는 더욱 안전하고 단단할 수 있겠죠.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왜 원하는 건지, 어떻게 충족될 수 있을지,
상대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뤄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원하는 연인의 모습이 같을 때 함께 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보고 존중한다는 다짐이 상대를 무시하고 방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상대도 언제든 자신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겠죠.
만약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면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안녕을 고할 수 있을 거예요.
제 개인적인 의견과 경험을 나누는 대화들, 물론 모두에게 정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여러 국제 커플들과의 대화, 미국 의사와의 심리 상담, 미국 본토에서 진행되는 온라인 서포트 그룹, 여러 논문과 책, 출판물을 공부하고, 제 나름대로 정리한 종합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공통된 일화도 많지만,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가장 많이 반영되어 있을 거예요.
당연히 개인 차이가 가장 큽니다. 하지만 제가 문화 차이나 정서 차이를 자주 논하는 이유는, 그 개인차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함이에요. 한 사람이 어쩌다 그런 사고방식을 갖게 됐는지, 어떤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모두 그 사람의 역사에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개인차 저변의 가정교육, 사회적 배경, 문화적 차이 등의 전반적인 환경을 고려한다면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약점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환경이 개인을 정의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환경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의 악몽에서, 트라우마로 남은 일에서,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에서...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가기는 불가능할 지도 몰라요. 그러나 분명 더욱 강해질 수는 있습니다.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도 있죠. 성인이 되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나와의 합의점을 맞춰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을 100% 이해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사고방식,
상대의 가치관,
상대의 우선순위,
온전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해요.
자신과 다른 세상 또는 문화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쩌면 내가 있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기도 해요. 그런 경우, 나에게 익숙한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나는 상대를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상대 역시 나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내가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상대의 입장을 인정만 하고, 나의 입장을 밝힐 수도 있는 것이죠.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상대를 도와주는 거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퇴근길, 매일 저와 같은 버스를 타시는 분이 계세요. 저와 같은 정류장에 내리시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배우자 분께서 마중 나와 계시죠. 그리고 두 손을 꼭 잡고 두런두런 대화를 하면서 집으로 걸어가십니다.
연세가 지긋하심에도 하루의 마무리를 함께 하는 부부를 보며, 제가 꿈꾸던 우리 부부의 모습이 이런 것 아닐까 어렴풋이 상상해 봅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아주 조금이라도 더 일찍 볼 수 있게 버스정류장까지 마중나오시는 정성이 참 감동이에요.
사랑에 나이는 없다고 하죠. (저보다) 어른이신 분의 새로운 사랑이 시작 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랑을 주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20대의 사랑과 30대의 사랑이 다르듯, 50대의 사랑과 60대의 사랑도 참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아직은 막연한 먼 미래와 같은 나이, 요즘 저는 어떻게 나이 들어 갈지 궁금합니다. 40대의 저는 분명 지금과 많이 다를 테고, 50대, 60대, 70대에는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요. 만약 저희 부부가 그때까지 함께라면,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까요?
우리는 그때도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을까요?
퇴근길에 마중 나오고, 손을 꼭 잡고 함께 집에 걸어갈 수 있을까요?
여전히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마주 보며 배꼽 빠지게 웃을 수 있을까요?
내가 바라는 우리 부부는 어떤 모습일까?
남편이 바라는 우리 부부는 어떤 모습일까?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 생각이 깊어지는 날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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