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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Jul 21. 2023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는 저주

그 저주가 나에게 통하지 않게

5년.


옮겨 심은 어린 나무들이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는 기간

지속적인 긍정적인 관계를 경험하며 새로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기간

내가 스스로에게 결혼생활에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정해둔 기간


그 5년이 지금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5년 전과 지금을 돌아보면 나는 참 많이 바뀌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는 남편에게 상처만 받았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실상은 남편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나를 치유해주고 있었다. 내 정서적 결핍의 근원을 채워주었다. 나의 내면아이를 사랑해 주었다.




남편과 살면서, 내가 상처받았다고 또는 상대가 나에게 상처 줬다고, 상대에게 치유를 기대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감정적 독립과 개인의 선택이 중요한 남편은, 내가 상처받았다고 통곡을 해도 자해를 해도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남편에게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개인의 자유였을 뿐이었고, 나의 상처 역시 상처받기로 ‘선택’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남편은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주지는 않았지만, 자신 만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고 위로해 주었다. 결혼생활에서 최악의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그런 남편이 보였다.




한결같은 남편은...


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몇 시간을 같이 읽어주고

기념일에 편지를 써달라고 하면 몇 장이고 써주고

가만히 안아달라고 하면 한참을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안아주고

그냥 곁에만 있어달라고 하면 몸을 맞대고 있어 주고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잔잔한 동요나 자장가를 불러주고

내가 하는 말을 들어만 달라고 하면 조용히 들어주고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준다.


남편은 내가 착하게 부탁하는 것 중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준다. 남편은 최선을 그렇게 다한다.


내가 가진 자잘한 결점들, 바꿀 수 없는 나의 상황들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감싸주고,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그리고 언제든 나는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람.


그렇다. 남편이 주는 사랑은 어쩌면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사랑이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 믿음. 인정. 남편이 나의 주 양육자였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남편 덕분에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시부모님께서 아이였던 남편을 존중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모습

키워준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닌 네가 태어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웃어주는 그 표정

성적으로, 월급으로, 수치로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고 표현해 주는 그 말


심리상담가인 시어머님의 육아와 사랑을 받고 자란 남편.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내 눈으로 목격했다. 물론 그것이 이상적이라거나 완벽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냥 내가 바랐던, 내가 목말랐던, 그런 상황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에 녹아든 그 실재를 보니 그 자체로도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그 세상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나는 치유되었다. 왜냐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내가 바라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됐으니까. 누구나 다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봤으니까.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한 번 키워봐라


내가 저주처럼 듣던 말이다. 그 말은 내가 키워진 대로 내 아이를 키워서, 그 아이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주니, 내 딸도 나와 똑같이 상처받은 존재가 된다는 저주였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표현은 내가 받아본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그 행동양식을 반복하게 되는 것. 아이가 아이로서, 그 존재 자체로서 받아야 하는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른 채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다르게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다르게 키워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머리로 이론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가슴으로 진심을 쏟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다르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결국 내가 바뀌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내가 바라던 사랑을 줄 수 있는 남편에게 끌렸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줄 수 있는 사랑,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거부하고 있었다.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받아야 하는 지를 몰랐다. 


대신 남편이 줄 수 없는 사랑을 갈망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은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채워지지 않을 정서적 허기 상태. 그 익숙한 상황에 스스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다는 믿음,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었다.

그 믿음은 내가 갖는 것이지, 상대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아무리 나에게 믿음을 많이 주더라도 내가 거부하면 상대가 누구더라도 절대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넓히고 키워 상대가 받고 싶은 사랑을 줄 수도 있어야 하고, 상대가 주고 싶은 사랑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정서적으로 안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며, 상대가 안심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수동적으로 막연히 누군가에게 치유받고 싶다고만 한다면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 능동적으로 내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


결국 답은 나에게 있었다. 이 변화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서 뿐만이 아니라, 내가 변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좋은 면은 있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봐줄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내가 나에게 거는 행운의 주문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상황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졌을 때 감사할 줄 안다.

나는 현재를 인정할 용기가 있고,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선택할 수 있다.

남편이 주는 사랑을 거절하지 않고 받을 수 있고, 남편이 주는 위로에도 치유할 수 있다.

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낼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망가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았고, 고쳐지거나 맞춰질 필요도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불안정한 정서가, 요구된 적 없는 희생이 사랑과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린 시절을 모두 살아남고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은 전부 나의 책임이다. 지금의 삶도 나의 선택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모두 나의 선택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나만의 선택이다. 


과거는 모두 지나왔고,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혼하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을 유지하더라도 행복하기로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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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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