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Feb 04. 2023

개인주의 남편에서 가정적인 남편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you poked my heart

1. 사랑은 지독하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또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한다. 어쩌면 그게 타인에게는 폭력처럼 다가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나는 평생을 이렇게 생각해 왔고,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옳다고 해도, 남편이 거절한다면 그건 우리 부부에게 옳은 방법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의 주위 사람들이 다 내가 틀렸다고 몰아붙여도, 내가 다르게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방향이다.




지독한 개인주의 남편.


개인주의 남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인정과 존중. 남편의 개인주의를 존중함과 동시에, 남편의 표현 방식을 이해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희생하면 당연히 고마워해주리라 믿는 것도 어쩌면 개인주의 남편에게는 원치 않는 호의를 억지로 받아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래, 원하지도 않았던 일로 되갚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래, 남편 말대로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었으니 그 책임을 남편에게 전가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내가 울면 당연히 위로해 주리라 기대하는 것도 어쩌면 개인주의 남편에게는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 자신은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래, 남편 말대로 나의 감정이니 오직 스스로만이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이 건강한 감정 해소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주의 남편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도... 인정과 존중. 하지만 눈길과 손길이 필요한 나에게는 거의 무관심...? 무관심도 사랑일까?


내가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울어도, 온몸에 멍이 들어도, 그 큰 눈으로 미동 하나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다가, 내가 지쳐 쓰러지면 물 한잔을 건네던 남편.

내가 결혼이고 뭐고 다 끝낼 기세로 짐을 싸서 한국에 한 달이나 가 있었을 때에도,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던 남편.

내가 우울증에 걸려 15kg 가까이 빠졌을 때에도, 자신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면서 결혼생활 밖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남편.


부정적인 감정, 우울한 감정, 도망가고 싶은 감정 등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남편. 그리고 그 감정을 나만의 방법으로 해소하도록 관여하지 않았다. 마치 남편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블랙홀이 있는 것처럼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 주는 것이 남편의 방식이었지만, 나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를 두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같이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

자기 연민을 멈춰야 한다. 이 역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2. 사랑은 중독이다.


개인주의와 정 반대 선 상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을 기쁨으로 여기고, 더 많이 주지 못해 마음이 쓰이는 그런 사람. 나를 기꺼이 희생하며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어쩌면 주는 사랑밖에 몰라 받는 사랑이 어려운 그런 사람도 있다.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나를 고갈시키도록 남에게 퍼주기만 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랑은 중독적이다.




그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 사람만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내 언어로도 번역하여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주는 사랑이 상대에게 잘 전달되도록 표현해야 한다.


내가 남편을 위해 뭔가를 해줬을 때 상대가 부담스러워한다면, 고맙다고 표현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남편에게 어떠한 의무나 책임을 지우지 않고,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라고. 그리고 실제로도 남편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강요하거나, 내가 해준 만큼 돌려받으려 해서는 안된다.


내가 울고 있을 때 위로받기를 원한다면, 나를 위로해 주는 방법을 모르는 남편을 위해 내가 원하는 위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너무나도 슬플 때 필요한 한 마디가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 만약 남편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공감과 위로를 바란다면 그것 역시 현실적으로 무리일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나를 제대로 위로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기회를 주었음에도 위로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면 그것 역시 남편의 선택일 뿐이다. 남편의 반응에 내가 어떤 결정을 할 지도 나의 선택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나도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잠시 시간을 갖고 내가 원하는 위로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탐구하여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수많은 결혼서와 이혼서, 심리학 책 등을 읽었고, 그중에서 남편과 나의 상황에 가장 비슷한 예시로 나온 대화 부분을 남편에게 읽어달라고 하였다.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그.러.나.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개인주의 남편은, 자신이 진심에서 나와 하는 말이 아니니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냥 책 읽어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이 부분만이라도 읽어달라고 했지만 한두 번 읽어주다가 결국 거절당했다. 너무나도 좌절스러웠던 나는 문자 음성 변환 사이트에서 해당 지문을 녹음하여 핸드폰에 저장하고,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큰 소리로 반복 재생하였다... 그렇게 기계음으로라도 위로받고 싶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남편은 자신이 위로해주고 싶다고 다가왔다. 내가 울고 있을 때 그냥 나를 사랑한다고, 여기에 와줘서 고맙다고만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그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으니까. 구태의연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 말고, 그냥 그렇게만 말해달라고. 그렇게 2년을 남편은 나를 위로해 주었고, 그 뒤로는 더 이상 울고불고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미안하다고 느끼지 않는데 억지 사과를 받는다면 내 기분이 나아질까?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남발한다면 내가 남편을 계속 신뢰할 수 있었을까?

어느 누구에게도 불필요한 의무나 책임을 씌우지 않는 감정적으로 독립된 상태가 나은 걸까?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3. 사랑은 고독하다.


어쩌면 너무 많이 사랑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받을 줄도 아는 마음가짐이다. 받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상대에게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할 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상대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자신의 진심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려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상대를 너무 사랑해서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사양하는 것은 상대가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으니까.




개인주의 남편에게는 무관심도 관심일까? 남편에게 받는 사랑은 나를 너무나도 고독하게 남겨둔다.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남편은 다정하다. 내가 안정적일 때에는 늘 곁을 지킨다.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와 함께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늘 한결 같이 존재한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항상 나에게도 나눠주고 과일을 깎아 냉장고에 넣어줄 때도 있다. 매일 밤 집에 돌아오면 자신의 하루 일과를 공유하고 오늘 들었던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말해주고 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이 제일 필요한 때, 그런 불안정하고 상처 입기 쉬운 순간에 딱 혼자 남겨진다. 내 감정을 목격은 하지만, 나와 함께 화를 내주지도 슬퍼해주지도 않는다. 그것이 나를 너무나도 고독하게 남겨둔다. 내 눈앞에 실존하는 저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워야 할 저 사람이, 나를 그냥 내버려 둔다. 외로움이 밀려온다.


한결같은 남편은 내가 진정되어 다시 감정 정리가 되면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아마 물 한잔을 건네며 이제 괜찮아졌냐고 물어볼 것이다. 가끔은 꼭 안아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이미 알고 있다. 남편은 내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며, 내가 타인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남편의 무관심은 장점일지도 모른다. 판단하지 않는다. 평가하지 않는다. 해석하지 않는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이러쿵저러쿵 비교하고 참견하는 행동보다는 진중하다고 볼 수 있겠지...?




그래도 개인주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고독하다.


개인주의 남편은 자신에게 납득되지 않는 경우에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자신의 자율성이나 선택,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행동은 참지 않았다. 예를 들어 "Happy Wife, Happy Life"라고 남편의 친구들이 모두 말할 때, 이는 자신의 행복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말이라며 절대 하지 않았다. 내가 정신적 외도라고 추궁했던 '특별한 친구'와의 관계도 여전히 이어갔다. 결혼했다고 해서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납득되는 경우에는 엄청난 성의와 진심을 보인다. 남편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부탁하면 대부분 들어주기도 한다. 생일 선물로 편지 10장을 부탁하면 10장을 꽉 채워 써주고, 매일 내가 잠들기 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2년째 말해준다. 내일 회사에 점심을 싸가고 싶다고 부탁하면 도시락을 싸주고, 대화 거리가 떨어졌을 때 책이라도 읽어달라고 부탁하면 읽어준다. 씻기 귀찮다고 드러누우면 나를 들쳐 매고 화장실로 데려가 양치를 시켜준다.




남편과의 대화 역시 고독하다.


이런 남편과의 대화에서는 소통이란 독립적인 영역이다. 내가 말을 하는 건 나의 자유이고, 내 말을 들어주는 건 남편의 자유인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남편에게 무조건적인 공감을 바랐다가 수없이 많이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 개인주의 남편과의 대화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남편의 반응이나 대답에 상관없이 내가 말을 했다, 발화를 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남편에게 잘 전달이 됐는지, 또는 남편이 나의 의도를 파악했는지에 상관없이, 나는 나의 의사를 표현했다는 점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남편을 조종 통제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다고 남편과 진정성 있는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부분이 어디인지, 내가 상처받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상대가 하는 말의 궁극적인 의미와 내가 듣고 싶은 말의 언어적 표현을 잘 번역하며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꾸준히, 오랜 시간, 노력하다 보면 습관처럼 서로를 위한 말을 하게 될 수 있다.




공룡 화석을 닮았다며 빵을 보여주는 남편




내가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는 기한을 5년으로 잡았다. 그 5년 동안 남편이라는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 위해 매 순간순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남편이 조금씩 바뀔 수 있도록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었다. 옛날의 남편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남편은... 그래 가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남편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실상은 이 5년 동안 남편이 환골탈태를 했다기보다는, 내가 남편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이 사람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변하게 된 이야기. 결혼은 누구와도 살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면 현 남편과도 살 수 있어야 하니까.


나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왜 저런 결정을 했는지 한심해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자신들의 상황이나 후회를 투영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이유와 나만의 고민이 있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나만의 결정이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면 되는 것. 일단 지금은 그렇다.


내일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plus/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