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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Feb 09. 2023

남편발 어닝쇼크와 하락장

서학개미, 눈물의 장기투자




주식은 도박과 같다 했던가, 나도 조금씩 중독의 길을 걷고 있다. 조금만 더하면...! 이것만 넘기면...! 다음에는 진짜...!!!


'어닝쇼크'란 기업이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여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일컫는 경제용어다. 


나는 항상 최소한의 실적, 최대한의 손실을 예상하는데... 우리 남편은 심지어 그 예상보다 훨씬!!! 훠어어어어어ㅓ어어ㅓㅓ얼씬 저조하다. 하락세 중의 하락세. 벌써 8년 가까이 하락장.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 우리 남편에게도 한 방이 있을까? 나는 왜 손절하지 못하고 이 파란 그래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가!




바보야 너 또 호구 잡혔어. 10분 정도 도와달라는 줄 알고 갔더니 10시간을 일 시키는 게 정상이니?  너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하루종일 일하고! 그게 친구야? 그것도 새벽 1시까지? 으이구 답답아 네가 거기서 그거 하고 있을 때야? 니 일이나 해, 제발 호구 잡히지 좀 말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10시간을 무슨... 우리 돈 필요 없고 그런 일도 필요 없어. 니 일이나 잘해!!!


몇 주 전에는 외국에서 손님 오셔서 하루종일 의전(?)처럼 모셔드리고 왔더니, 그다음 날 그분 SNS에 “현지인”이 관광시켜 줬다고 ㅋㅋㅋ 멍충아 너 호구야 사람들이 너 이용해 먹는 거야 너를 친구로 생각했으면 현지인이라고 부르겠니? 니가 가이드야? 왜 가이드 취급하는 사람을 따라다녀... 진짜 사람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참.


몇 년 전 어떤 분 개.인. 프.로.젝.트.를!!! 회사 일도 아니고 개인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준다고 몇 달을 허송으로 보내더니. 그때 그분이 너한테는 영원한 친구라고, 너를 만나서 정말 행운이라고 그러셨으면서, 나한테는 너랑 한 번도 친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고 부담스럽다고 그랬다고. 호구 잡혀서 단물만 쪽쪽 빨리고 버림받은 거야 너.


하긴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 나도 너한테 호구 잡혀서 집 밖에서 돈 벌어 와, 집 안에서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고 있는데. 딸은 엄마 팔자 따라가고, 아빠 같은 남편을 만난다던데, 우리 아빠도 혹쉬...? 하지만 똑똑한 내 동생은 제부와 잘 타협해서 공동의 이익을 향해 가고 있는데... 동생은 어떻게 저렇게 잘하지? 타고난 걸까?




개인주의 남편의 최대 단점은 본인에게 납득이 가면 사과도 정말 잘한다는 거. 진짜 치명적인 단점이다. 안하무인으로 나오면서 사과 한 번을 안 한다면 바로 손절할 텐데. 말은 또 어찌나 청산유수로 잘하는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다. 왠지 그게 더 싫다.


어제는 남편이 나에게 도와달라고까지 했다. 너무 후회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럽다고. 자기는 항상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큰 그림을 잘 못 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약하다고. 본인의 장단점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해 주며 채워질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이상적일 텐데 ㅠㅠ




나는 진짜 평가하고 판단하는 거 제일 싫어하는 사람인데, 남편을 보면 음... 오... 아... 에... 가 절로 나온다. 그러니까 남편은 말이쥐... 언제나 한결같고 꾸준하다. 하나를 알려주면 그 하나를 매일매일 실천한다. 나에게 부족한 끈기, 지구력, 인내심, 버티는 힘으로 채워진 사람.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하나도 몰라서 매번 알려줘야 하는 게 답답하다. 속 터져 죽겠다. 하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인생 평생을 비효율적으로,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왔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남편이 나고 자란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배경 때문에 정말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안 가르쳐 줬으니까. 자신이 배운 방식으로 그렇게 천천히 꾸준하게 살아왔다. 어머님 아버님, 왜 남편을 이렇게 키우셨나요! 하지만 연로하신 시부모님께서는 정말 최선을 다하셨겠지...


그러니까 그게... 시험 점수 낮은 아이들이 시험 공부한다고 시험 범위를 확인도 안 하고 1단원에 1번부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면서 공부해서 시험 날짜까지도 1단원 공부하고 있는 꼴이다. 1단원의 앞부분은 완벽하다. 속도는 느리지만 본인은 완벽하게 이해하고 만족하는 학습법.


그런데... 시험에서 고득점 하려면 시험 범위 전체를 공부해야 하는 게 문제다. 시험 범위와 준비 기간을 계산해서 1단원부터 10단원까지 전체적으로 훑어보면서 큰 흐름을 읽고, 그 후에 1회독 2회독 하면서 중요한 거 위주로 꼼꼼하게 공부하고 모르는 거 보충해야지...




내가 평생 듣던 엄마의 위안은 나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한다고 ㅠㅠ 엄마 나 머리도 나쁜가 봐요 ㅋㅋㅋㅋㅋ 나는 쉽게 여러 가지에 도전하지만 열쩡도 금방 식어서, 공부도 하고 싶은 거만 하고 그것도 끝까지 한 게 많지 않다. 남편이랑 정 반대. 남편은 차곡차곡 돌을 쌓아 단단하게 땅을 만들어 딛고 올라가는 사람이라면, 나는 풍선을 타고 새를 타고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스타일.


우리 엄마는 효율성 최고에 사주도 문제해결사이신데, 만약 우리 남편이 우리 엄마를 선생님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우리 남편은 정말 열심히는 하는데 결과가 안 나온다. 전형적인 삽질만 하는 스타일. 게다가 꿋꿋한 노력형이라 삽질도 너무 한결같고 꾸준하고 끈기 있다. 이런 남편이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우리 엄마에게 어렸을 때부터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벌써 뭘 하더라도 열두 개는 했을 듯.


남편이랑 나랑 이케저케 잘 협력해서 꿈을 딱 이뤄서 막 행복하게 그렇게 좀 잘 살 수 있을까? 남편을 위해 맞춤형 계획표를 직접 만들어서 인쇄해 가야겠다. 




우리 남편은 밤 12시에도 내가 계란이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만들어 준다. 김이 폴폴 나는 뜨겁고 달짝지근한 오믈렛... 내 이상형이 요리 해주는 남자였는데, 이상형을 만나긴 했는데 ㅠㅠ... 







블라인드          김소월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The History of Love>

“나는! 평생! 동안! 불행하지! 않았다!”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https://class101.net/plus/ko/products/DCNO3sPxKUBstRcB0u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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